유동성의 힘이 한국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다. 시중의 넘치는 자금이 증권가로 유입되면서 코스피 지수는 상승행진을 펼치고 있고 공모주에 수조원대 자금이 몰리고 있다. ‘동학개미’를 넘어 ‘영끌개미’까지 등장했다. 터널 속 질주일까, 잭팟일까? (CNB=도기천 기자)
증시 활황에 ‘영끌’ 투자 급증
상장 대어들, 증시기폭제 역할
“실적부터 살펴야” 거품주의보
“단기 신용대출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영끌(영혼까지 끌어와 투자)에 나선 고객들이죠. 괜찮은 종목을 추천해달라는 문의도 크게 늘었구요.”
모 대형증권사 8년차 고객투자 상담 직원은 CNB에 현재 증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가라앉지 않고 최근 수도권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증권시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3년 6개월 만에 2400선을 돌파한 뒤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지난 3월 19일 1457까지 주저앉았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61%(18일 종가 2348기준)나 증가했다. 코스닥 역시 1년 9개월 만에 800선을 돌파했다.
주식 매수를 위한 대기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50조원에 달한다. 빚을 내 투자하는 이들도 늘어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사상최고인 15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대로라면 역대 코스피 최고점(2018년 1월29일, 2607.10)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대출·몰빵…‘제2 바이오팜’ 초읽기
이런 가운데 공모주 시장은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상장 대박을 터트린 SK바이오팜에 이어 하반기 상장을 앞둔 대어(大魚)들을 향해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현재 공모규모가 1조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태광실업, 호텔롯데, 크래프톤, 카카오게임즈, 교촌에프앤비 등이다.
이 중에서도 기업공개(상장)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카카오게임즈다. 카카오의 자회사 중 기업공개 첫 주자로 나선 카카오게임즈는 최근 게임업계의 급성장과 맞물려 최대어로 부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 3910억원, 영업이익 35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로 인해 희망 공모가 범위가 2만~2만4000원인데, 장외시장에서는 벌써 7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밴드 기준 상장 후 예상 기업가치를 최대 1조7569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오는 26~27일 수요예측(기관투자가 대상 사전청약)을 통해 공모가를 확정한 뒤 다음달 1~2일 일반청약을 받아 9월 11일 상장할 예정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지금 흐름대로라면 제2의 SK바이오팜 신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SK바이오팜은 지난 6월 23∼24일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청약에서 경쟁률 323대 1을 기록하며 국내 IPO 사상 최대 규모인 31조원에 달하는 청약 증거금을 모았다. 공모가는 주당 4만9000원이었지만 현재 주가는 249% 오른 17만1000원(18일 종가기준)에 이른다.
카카오게임즈 또한 경쟁률이 수백대 1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증시에 유동성이 풍부한데다, 코로나19의 최대수혜주로 언택트(비대면) 분야인 게임업이 0순위로 꼽히고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게임 빅3’인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은 최근 시장 기대치를 넘는 깜짝 실적을 기록했다.
엔씨소프트는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한 5386억, 영업이익은 61% 늘어난 2090억원을 기록했다. 넥슨 또한 2분기 매출 7301억원, 영업이익 3025억원으로 각각 20%, 106% 늘었으며, 넷마블은 매출 6857억원(30.3%증가), 영업이익 817억원(146.1%증가)이었다.
이런 호실적에 힘입어 최근 빅3의 시총은 50조원을 돌파했다. 특히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지분을 각각 5.64%, 3.94% 갖고 있는 넷마블은 호실적에다 카카오게임즈 상장 이슈까지 겹쳐 연초에 9만원 안팎을 오가든 주가가 14만8500원(18일 종가기준)까지 올랐다.
카카오게임즈 관계자는 CNB에 “증시 환경이 우호적인데다 최근 게임업종 상승 분위기와 맞물려 투자자들의 관심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카카오게임즈 다음 순번으로 기대되는 대어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보이그룹 BTS(방탄소년단)의 소속사라는 점에서 증권가에선 기업가치를 4~5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빅3’로 꼽히는 JYP엔터테인먼트(1조 1536억원), SM엔터테인먼트(8067억원), YG엔터테인먼트(8035억원)를 훨씬 능가한다.
빅히트는 최근 한국거래소(코스피)의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으며, 이르면 올 가을에 공모를 거쳐 연말에 코스피 상장할 예정이다.
공모주 청약, 기름에 불붙인 격
이처럼 증시에 투자금이 쏠리고 있는 이유는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떨어지는 환율, 사상최저 금리 등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0%로 내린 후 1년 만기 기준 1% 금리를 찾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따라 시중 자금이 은행을 떠나 증권사로 몰리고 있다.
주요국이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통화·재정정책을 펼치고 있는 점도 증시에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3월 19일 1285원까지 올랐던 환율이 이후 하락세로 돌아선 점도 긍정적이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외국인투자자들은 증시를 떠나 달러 시장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환율이 떨어지면 주식 매매로 얻는 환차익이 커지게 돼 외국인들이 증시에 유입된다. 실제 외국인은 지난 3월 이후 유가증권시장에서 점차 덩치를 키우고 있다.
특히 증시에서 공모주는 개별종목 거래보다 안정적인 투자로 꼽힌다.
SK바이오팜 공모주 청약의 경우, 경쟁률이 예상을 뛰어넘는 바람에 실제 개인투자자가 손에 쥔 주식은 얼마 되지 않았다. 1억원의 증거금을 내야 13주(공모가 4만9000원 기준 63만7000원)를 받았다. 하지만 단번에 주가가 3배 이상 올라 불과 며칠 만에 100만원 이상의 차익을 실현했다. 1억원을 1년간 은행에 맡겨도 이자가 100만원이 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꽤 괜찮은 수익이다.
이러다보니 공모주에 우회적으로 투자가 가능한 펀드 상품에도 꾸준히 자금이 몰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설정액 10억원 이상 공모주 펀드 109개 상품에 최근 3개월간 약8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CNB에 “워낙 시중금리가 낮은데다 부동산 투자 규제가 강화되면서 갈곳 잃은 자금이 증시에 몰리고 있다”며 “이렇다보니 큰 수익은 아니더라도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인 자금운영이 가능한 투자처로 공모주가 조명받고 있다”고 말했다.
“보이는 것만 믿지 마라”
하지만 리스크 요인도 분명 있다. 우선 증시전반에 있어 기업실적과 주가 간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해외 투자은행(IB)의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 평균은 -0.4%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출 실적이 크게 나빠져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실업이 늘고 있다. 그 결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이 과거에 비해 커진 상황이다.
물론 공모주의 경우 특정기업에 한정된 조건이라 상대적으로 거품 우려는 덜하지만 거래량 급증으로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어 유의가 필요하다. 실제 SK바이오팜은 지난달 2일 상장 이후 불과 한달 남짓한 기간 동안 장중최고 26만9500원과 장중최저 9만8000원을 오갔다. 추격매수하다 손실을 본 개미투자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정세현 인하대 겸임교수(경영학)는 CNB에 “코스피는 그 자체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반으로 하는 실적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공모액 규모와 경쟁률 등 보이는 것만 믿고 매수에 나서는 것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