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진중한 고민과 쾌활한 재기가 가득하다. 현대자동차와 국립현대미술관이 차세대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기 위해 공동 진행한 첫 번째 공모 프로그램의 결과물이 나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을 통해서다. 쟁쟁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두 팀(강남버그·서울퀴어콜렉티브)이 영상, 사진, 드론, QR코드 등을 활용해 만든 작품을 선보여 실험적이고 대안적이다. 자동차 회사와 미술관이 이들을 주목한 이유는 뭘까? (CNB=선명규 기자)
차세대 예술 실험 ‘첫 무대’
작가·관객 조화가 창작기초
참여로 완성된 결과물 즐비
이 전시는 두 지역 이야기다. 강남버그가 쾌속한 개발의 상징인 강남, 서울퀴어콜렉티브가 오랜 전통을 품은 종로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다음을 비춘다. 땅의 역사이자 도시의 미래가 작품이 되어 나왔다.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야?”
강남 복판. 드론이 수직상승한다. 계속 날아오른다. 보이는 모든 건물을 싹 제친다. 도달점은 595미터. 이제 모든 빌딩이 발아래 있다. 관람객 사이에서 아찔한 반응이 나직이 터져 나온다. 강남버그의 ‘오르고 또 오르면’은 곧 삼성동에 지어질 국내 최고층 빌딩의 규모를 가늠하려는 시도로, 세 화면을 통해 강남 부동산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로 완성된 ‘강남버스’도 재미있다. 시내버스에 한 여성이 올라타 흥겨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승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유쾌한 입담도 과시하는데, 모두 불편한 기색없이 오히려 즐긴다. 지난 6월 25일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출발해 청담동, 대치동, 구룡마을 입구, 강남역을 달리며 촬영한 버스 투어 이벤트 영상의 한 장면. 노래강사뿐 아니라 배우, 워킹맘 등이 탑승해 강남과 관련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진행된다. 영상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은 어깨를 여리게 들썩이며 웃다가도 이내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곤 한다.
종로 연대기에 ‘나’를
전시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벽면에 연대표가 펼쳐진다. 대한민국과 종로의 역사적 사건들이 평행선을 그리며 나열돼 있다. 가령, 국민기초생활법이 제정된 2000년에 종로에선 제1회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됐다고 소개하는 식. 여기서 관람객은 적극적인 개입이 가능하다. 비치된 투명 스티커에 특정연도에 일어난 개인적 사건을 적어 붙이는 방식이다. 그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었던’ 같은 경험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서울콜렉티브의 ‘타자의 연대기’는 기록을 토대로 한 참여형 전시이다.
참여는 QR코드를 찍는 것으로도 이뤄진다. 벽에 붙은 코드에 스마트폰을 대면 무수한 단어가 쏟아져 나온다. ‘숨쉬는’ ‘안전한’ ‘탈출하는’ ‘사소한’ 등의 말이다. 이 대답은 ‘나의 종로3가는 OO이다’라는 물음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종로’를 정의한 단어와 말들은 스피커와 영상을 통해서도 흘러나온다.
종로에 적(籍)을 둔 적 있다는 50대 남성은 귀를 기울이다가, 또 화면을 보며 한참 서성이다 말했다. “하나하나 정확해요. 그 동네는 딱 한마디로 특정할 수 없는 묘한 곳입니다”
‘실험’을 응원하다
이렇듯 창의성으로 중무장한 차기 창작자들을 만날 수 있는 '프로젝트 해시태그(#)'는 현대차와 국립현대미술관의 장기 후원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크리에이터들이 장르, 주제에 제한 없이 협업을 통해 실험적인 창작물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개방형 창작 플랫폼이다.
2019년부터 5년간 매년 2팀씩 총 10팀을 선정해 각 팀에 창작 지원금 3000만원과 창작 공간을 제공하며, 프로젝트 결과물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선보이는 기회도 준다. 작년에 진행된 첫 공모에 총 203팀이 지원했는데 그중 기획안의 파급력과 협업의 확장성 등을 고려해 선정된 팀이 ‘강남버그’와 ‘서울퀴어콜렉티브’이다.
현대차 측은 “현대자동차는 2014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국내 문화예술계 발전에 기여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했다”며 “이번 프로젝트 해시태그가 차세대 크리에이터들에게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대표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다음달 30일까지.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