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강남 아파트’가 위치한 서울 반포지구는 대형건설사들이 치열한 재건축 수주전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최근 삼성물산이 몇몇 구역을 독식한데 이어, 나머지 영토에서 건설사들 간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CNB가 정부의 온갖 부동산 대책에도 꿋꿋이 ‘갭투자 1번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포동 일대 개발현장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갈수록 귀한 ‘역세권 대단지 신축 초품아’
분양가상한제·실거주·보유세…백약 무효
노영민 재테크로 “역시나 강남불패” 입증
서울 서초구 반포동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핵심부로 꼽히는 곳이다. 반포자이, 래미안퍼스티지, 아크로리버파크 등 고급아파트들이 즐비하며, 반포경남·신반포3차(래미안 원베일리), 반포주공1단지, 신반포15차 등의 재건축이 완료되면 서울의 1순위 주거지역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이곳의 재건축은 영화 <강남1970>의 여러 장면과 오버랩 된다. 영화는 70년대 강남 땅 개발권을 둘러싼 건달 세계의 암투를 그리고 있다. 당시엔 조폭을 앞세운 권력층이 개발의 중심에 섰지만, 지금은 갭투자(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액으로 투자)가 시장을 이끌고 있다.
최근 이곳이 주목 받는데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몫을 했다. 노 실장은 반포동과 충북 청주에 각각 1채씩 아파트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투기 근절에 나서자, 노 실장이 청와대 고위공직자 중 다주택 보유자들에게 한 채만 남기고 나머지는 팔 것을 권유했다. 그러면서 솔선하는 의미에서 이달 초 자신의 청주 아파트를 매각했다.
그러자 “청와대가 시장에 ‘강남불패’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쏟아졌다. 지방 아파트를 매각하고 ‘똘똘한 한 채’를 유지한 재테크 전략이라는 것.
노 실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반포 아파트를 매물로 내놨다. 하지만 더 이익을 볼 기회를 놓쳤을 뿐, 막대한 매매차익을 거두게 됐다.
그는 2006년 5월 이 집을 2억8000만원에 매입했는데, 같은 아파트가 작년 10월 10억원에 거래됐고, 지금은 호가가 12억원에 이른다.
노 실장이 반포 아파트를 12억원에 팔 경우 9억2000만원 가량의 양도차익이 발생한다. 청주 아파트를 매각하지 않은 다주택자 상태라면 9억2000만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율(42%+가산세)이 적용돼 최소 4억원 이상의 세금을 내야한다.
하지만 청주 아파트를 이미 처분했기에 1주택자 혜택을 받고 반포 아파트를 팔 수 있다. 1주택자는 집을 팔 때 9억원까지 비과세 된다. 따라서 초과분 3억원에 대해서만 장기보유특별세율인 28%(8400만원)의 양도소득세를 내면 된다. 결과적으로 14년 만에 8억3600만원을 번 셈이다.
‘강남 갭투자’ 백전백승?
노 실장이 이처럼 막대한 차익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재건축’이라는 호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노 실장이 보유한 반포 아파트는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에 위치한 한신서래 전용 46㎡ 매물이다. 1987년 준공돼 414가구 12층 단지로 이뤄졌다.
지어진지 30년이 넘어 재건축이 가능한데다 방배중, 서울고, 세화고 등 학군이 우수해 재건축을 노리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실제 최근 두 차례(6·17, 7·10)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도 호가가 흔들림이 없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CNB에 “정부가 보유세(종합부동산세)를 크게 올린다고 했음에도 급매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부동산 대책의 영향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노 실장의 ‘강남 불패’ 사례는 재건축에 착수했거나 앞두고 있는 반포동 일대 단지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노 실장이 ‘역시 강남’이라는 인식을 한번 더 심어준데다 절세(節稅) 방법까지 몸소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주목받는 단지는 삼성물산이 지난 5월 공사 수주한 반포주공1단지 3주거구역(반포3주구) 재건축이다. 조합은 2018년 HDC현대산업개발을 시공사로 선정했지만 공사비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다가 지난해 12월 시공 계약을 해지했고, 이에따라 대림산업, 롯데건설, GS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무려 6곳의 대형 건설사가 경쟁을 벌여왔다.
삼성물산은 건설업계 최상위 신용등급(AA+)을 바탕으로 통상적인 후분양과는 다른 ‘100% 준공 후 분양’을 제안해 최종 낙점됐다. 삼성물산은 이곳에 지하 3층~지상 35층, 17개동 2091가구의 아파트와 부대복리시설을 지을 예정이다. 총공사비가 8087억원에 이르는 매머드급 사업이며, 노 실장의 한신서래와는 불과 2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재건축이 완료되면 시세가 평당 1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반포동 일대 아파트 시세가 전용84㎡ 기준으로 30억원 정도다.
“규제 피하자” 재건축 속도전
이미 분양 일정이 확정된 단지도 있다. 최고 35층, 6개동, 641세대를 신축하는 신반포 15차 재건축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이달 28일 전까지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한 후 이르면 오는 9월 일반분양에 나설 예정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시공사 선정 총회가 네 차례나 연기된 끝에 지난 4월 조합원 총회에서 삼성물산이 대림산업과 호반건설을 압도적 표차로 꺾고 시공사로 선정됐다.
신반포3차와 반포경남 아파트를 통합 재건축하는 ‘래미안 원베일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9일 서초구청에 관리처분 변경안 신청 접수를 마친 상태며, 분양가상한제 유예 기간인 오는 28일 전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일반분양가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단지는 기존 2433가구를 허물고 최고 35층 높이 2990가구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올 가을 분양이 점쳐진다.
재건축 최대어로 손꼽히는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사업은 아직 뚜렷한 윤곽이 나오지 않았지만 거래는 꾸준한 편이다. 반포동 810번지 일대 37만596㎡ 부지에 지하4층~지상35층 아파트 5388가구 및 부대시설을 건립하는 대형 개발사업이다. 일부 조합원들이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비대위를 구성해 1심에서 조합에 승소하는 등 잡음이 계속되고 있지만 재건축을 노리는 투자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까지가 ‘노영민 효과’로 고무된 반포동 이야기다. 하지만 범위를 더 넓혀보면 반포동은 강남의 일각일 뿐이다.
강남 재건축의 대장주로 꼽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4424가구)는 ‘갭투자’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1979년 지어진 이 단지는 강남 요지의 입지여건과 매머드급 규모 덕에 집값을 주도하는 재건축 선두에 서 있다.
강남구 압구정3구역(구현대아파트) 재건축사업도 연내 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분주하며, 지난해 조합추진위 구성 승인을 얻은 강남구 개포주공5단지와 6·7단지도 꾸준히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는 곳이다.
“당신 같으면 팔겠나” 그나마 노 실장은 양반
강남불패는 앞으로도 계속될까? 대부분 전문가들은 강력한 부동산 규제책에도 불구하고 공급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불패 신화는 이어질 것으로 본다.
통계청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총주택수는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2015년 360만 채에서 2018년 368만 채로 늘었다. 하지만 1인가구 증가로 주택보급률은 95.9%로 되레 낮아졌다. 일반적으로 주택보급률이 100~110% 정도 돼야 ‘안정권’으로 본다.
특히 신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지만 신축 보급률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주택학회에 따르면 서울에서 지은 지 30년이 넘는 구축 아파트는 32만 채에 이르며, 연평균 3만채 가량이 이 대열에 추가로 합류하고 있다. 하지만 집들이를 하는 아파트는 연평균 2만 채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학군과 교통, 편의시설을 모두 갖춘 강남의 대단지 아파트는 ‘부르는 게 값’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노 실장이 반포 아파트 처분을 망설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단 노 실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실련이 지난달 3일 발표한 제21대 국회의원 부동산 재산 현황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의원은 다주택자가 43명으로 가장 많았고 통합당은 41명이었다. 비율로 보면 민주당 24.4%, 통합당 39.8%다. 시민단체가 이들의 주택처분을 촉구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반포동에서 21년 된 한 중개업소의 대표는 CNB에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로 집값을 떨어뜨리려했지만 결국 로또 분양만 양산한 셈이 되지 않았나”며 “보유세를 올리고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는 등 규제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공급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인서울 역세권 대단지 신축 초품아’ 선호현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