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이렇게나 길었던가. 즐겨 하던 플랭크도 끊었다. 1분을 1시간으로 만드는 마법의 운동이다. 세월이 전광석화처럼 흐르는 것 같아 시작했다. 바닥에 팔꿈치와 발끝을 대고 몸을 일자로 만들면 세상이 멈추는 기적이 일어난다. 자세만 잡았을 뿐인데 전신이 부들거리고 땀방울이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후드득 떨어진다.
문제는 시간이 안 가도 너무 안 간다는 점. 5분은 지난 듯한데 30초도 안 됐다. 내 몸은 이미 ‘각기 춤’을 추고 있는데 초시계는 그런 나를 비웃듯이 ‘째-애-애-애-깍’ 긴 호흡을 두고 흐른다. 부들거리며 참노라면 애꿎은 스톱워치에 화가 난다. 하지만 효과 하나는 확실하다. 하루를 1년으로 만드는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힌 것처럼 모든 걸 더디게 만드니까.
지난 3월 22일 시작해 45일 만에 막 내린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필요한 것은 나만의 ‘시간 순삭’ 아이템 찾기였다. 그러려면 나에 대해 알 필요가 있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좋아하고 꺼리는가, 개똥철학에 빠져들었다. 정신과 시간의 방인 집에서 면벽 수행하는 날이 길어지다 보니 본질을 파고드는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알았다. 재미는 깊은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외의 발견은 가까이에 있었다. 무언가를 계속 흥얼거리는 성대에 있었다. ‘집콕’ 생활에서 빠진 건 노래였다. 정확한 장르는 요즘 대유행하는 트로트.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를 어느새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는 오프라인이 아닌 유튜브. ‘현대백화점 TV’에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정자매쇼, 안방노래교실’의 업로드를 언젠가부터 목 빠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강사가 ‘보이는 라디오’처럼 재밌는 에피소드를 풀어놓다가 신명나는 노래를 부르면 정신이고 체면이고 다 내려놓고 따라하게 된다. ‘아재개그’를 뛰어넘는 ‘아줌개그’도 빼놓을 수없는 재미다.
언젠가 주말 아침. 여느 때처럼 책상에 앉아 봉두난발한 채 영탁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를 따라 부르며 찧고 까불고 있는데 어머니가 방문을 닫으며 말씀하셨다. “영탁이가 좋니? 그래도 노래는 영웅이지.” 어머니는 성도 떼고 부르는 임영웅의 팬. 이내 닫힌 문 사이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절절하게 새어 들어와 두 노래가 짬뽕이 됐다. “여보~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 못하다가 제3의 자아를 발견한 또 다른 ‘집콕 생활인’의 간증도 들었다. 코로나로 직장이 잠정폐쇄된 지인은 회사생활 20년 만에 새로운 길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취미로 유튜브에 요리하는 영상을 올리는 그다. 어쩌다 하나씩 올라오던 영상은 이제 하루에 두개 꼴로 확 늘었다. 실력도 일취월장한 것인지 볶음밥 맛있게 만드는 법 따위의 간단한 레시피를 소개하다가 이제는 ‘크림사리곰탕면’ 같은 기괴한 음식을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했다고 진로변경을 고민하는 그에게 두 자리인 조회 수를 상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아직은 참고 있다. 지금도 구독 알림이 띠링 띠링 울린다.
과거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어 기억해 두었다. ‘홀로 행복할 수 없다면 둘이서도 행복할 수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슬기롭게 이겨낸 것은 고립감과 불안을 수많은 ‘홀로’들이 400번 저어야 완성되는 달고나 커피 만들기와 같은 소소한 행복을 찾아 뛰어넘은 덕분이다. 이격의 시대를 딛고 일어선 것은 모두가 긍정의 슈퍼 전파자였기 때문이다.
학습은 됐다. 경험이 무기다. 아직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이제는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생활 속 거리두기(생활방역)를 극복할 때다. 공통의 행복을 위해.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