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지 않는다.”
거대한 병마(病魔)에 맞선 산업계의 분투가 벼랑 끝에 몰린 한국경제에 작은 빛줄기가 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통상과 내수 모두 꽁꽁 얼어붙었지만, 언 땅을 깨고 솟아나는 들풀처럼 나눔의 물결이 고통 받는 서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에 CNB는 국가적 재난 가운데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모습을 업종별로 기획 연재한다. 세번째 편에서는 코로나에 맞서 업무시스템을 바꾼 기업들 이야기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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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1 “타인을 멀리하라”
업무시스템 변화의 핵심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e)다. 코로나19의 세력이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대기업집단의 사회적 거리두기 참여 양상을 살펴보면, 먼저 삼성은 모든 계열사의 임산부, 면역 취약자에게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주말에는 직원들에게 온라인 문진(의사가 환자 건강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발송한다. 이를 통해 발열이나 기침 등 증상이 있는지 체크하고 해당 사항이 있으면 자가격리를 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임산부와 지병이 있는 직원들을 중심으로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서울과 경기지역 근무자들이 자율적으로 이를 실시한다.
SK그룹도 ‘홈 워킹’을 하고 있다. (주)SK, SK네트웍스, SK브로드밴드,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이 실천하고 있다. 화상회의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필요할 경우에 혼잡한 시간을 피해서 출퇴근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LG그룹은 임산부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원이 집에서 일하도록 하고 있다. LG전자는 재택근무 인원이 늘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통화솔루션과 클라우드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와 주요 시설의 사내식당에는 가림막을 설치해 식사를 하면서 타인과 얼굴을 접촉하는 일을 줄였다.
두산, 롯데, 포스코, 한화 등도 재택근무와 공동휴가(지정일에 함께 휴가를 사용하는 것) 등을 실시하고 있다.
풍경2 이통업계 콜센터 ‘초비상’
이동통신 업계도 적극적이다. 특히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 사건 이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통업계가 타업종에 비해 콜센터 인력이 많다는 점에서다.
SK텔레콤은 희망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전체 인원의 25%가 집에서 일하고 있다. 상담사들이 집에서 PC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갖췄다.
KT는 50%의 인원이 돌아가면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콜센터 운영인력은 분산 배치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최대한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했다. 회식은 금지했다.
LG유플러스는 부서별로 임산부와 유치원생 자녀를 둔 직원들이 이를 실시하고 있다. 사이버상담사가 순차적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일반 상담사는 자택 PC에 클라우드 시스템이 설치됐는지를 확인한 후에 적용할 계획이다.
풍경3 게임·유통업계, 연장전 돌입
게임업계는 연장전에 들어갔다. 넥슨은 재택근무를 전 직원으로 확대했다. 넷마블은 기간을 연장했고, 코로나19 TFT를 통해 계속 대응하기로 했다. 엔씨소프트는 순환2부제를 선택했다. 인력을 절반으로 나눠서 이를 실천하는 방식이다. 게임빌과 컴투스, 펄어비스 등도 비슷한 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유통업계도 비상이다. 현대백화점은 홈 워킹 기간을 이달 말로 연장했다. 부서 인원이 절반씩 돌아가면서 집에서 근무를 한다. 신세계백화점은 임산부들이 집에서 일한다. 아울러 ‘육아 건강 돌봄휴가’ ‘가족 돌봄휴직’ 등 기존 제도를 활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롯데쇼핑(백화점·마트)은 연차를 앞당겨 사용하도록 했으며, 홈 워킹도 실시한다.
풍경4 면접도 화면으로
여기까지는 주로 재택근무에 관한 이야기다. 코로나19는 근무행태만 바꾼 게 아니다. 새로운 직원을 뽑는 시스템도 완전히 바꿔버렸다.
온라인 면접은 취업현장의 새로운 풍속도로 부상했다. 면접을 보는 사람이 집에서 컴퓨터로 관련 프로그램에 접속한 후 면접관이 화상으로 질문을 하면 내장 마이크를 사용해 대답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인턴십 전형에서 화상면접을 하기로 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도 화상으로 인턴을 뽑을 계획이다.
LG전자는 최근 경력직원을 뽑는 실무면접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SK이노베이션도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 CJ그룹도 일부 직군에 이 방식을 채택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온라인으로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채용설명회도 온라인으로 한다. 삼성은 대학 캠퍼스별로 열던 설명회를 줄이고 온라인으로 대체하고 있다. SK그룹은 ‘SK커리어스’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오픈해 각 계열사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롯데그룹은 유투브에 전용채널인 ‘엘리크루(L-Recrui)TV’를 만들었다. 포스코그룹도 이런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풍경5 이참에 비용 절감?
이처럼 기업들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전염병 확산을 막자는 국가적 캠페인에 함께 하기 위해서다. 보건당국과 지방자치단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예방의학회 등이 이를 권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빠르게 증가한 이유로 종교행사 등 밀접한 신체 접촉을 빼놓을 수 없다. 따라서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둬야 한다.
두 번째는 비용 절감 차원이다. 코로나가 빠르게 번지면서 경제활동이 얼어붙은 상황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영화관 등에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 실적이 크게 나빠질 전망이다. 이에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벤트, 행사, 마케팅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CNB에 “현재 우리나라는 확진자 증가세가 둔화됐지만, 세계적으로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며 “국가별로 무역과 여행 등도 줄고 있다. 수출과 투자 등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기업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