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이상의 집을 찾았다. 언젠가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공간이었다. 이상은 소설가 겸 시인, 화가, 건축가로 유명한 사람. ‘날개’라는 단편소설과 ‘오감도’ 등 실험적인 시들을 남겼다. 책 삽화와 건축 도면 등으로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안타깝게 일제 강점기 때 감옥에 갇혀 27살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상에게서는 윤동주와 이육사의 느낌이 묻어나면서 더 몽환적인 존재로 승화되는 것 같다.
이상의 집은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나와서 우리은행 효자동지점 뒤쪽에 있다. 이 공간은 이상이 3살 때부터 20년 정도 실제로 살았던 곳이다. 라이엇게임즈라는 게임사에서 지원해 운영하는 서울미래유산 중 하나다. 이곳은 회색 콘크리트와 통유리, 빛을 이용한 독특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상의 초상화와 조각상, 책, 엽서, 보도 신문 등이 진열돼 있다.
한 청년이 이상의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은 엄마와 연인과 데이트를 하는 커플, 추억을 회상하는 노부부가 내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동안 지나갔다. 나는 문학을 좋아하는데, 이곳에서 잠시 꿈을 꾸었다. 그 꿈은 내가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면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현상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현재와 미래를 탐색하는 탐구활동이기도 했다.
나는 최근에 다른 게임사의 전시회에서도 이런 꿈을 읽었다. 넷마블문화재단이 인사동 아리아트센터에서 연 ‘미래의 꿈, 게임에 담다’ 전시다. 게임아카데미를 이수한 중고등학생들이 개발한 게임을 전시하는 행사였다. 나는 이른 아침에 인사동에 도착해 산책을 하다가, 한적한 전시회장 제일 끝에 있는 ‘미니게임 메이커(Mini Game Maker)’라는 게임기 앞에 서 있었다. 게임기 속으로 들어가는 영화 ‘트론’ ‘레디 플레이어 원’이 떠올랐다. 아침의 햇살이 그런 느낌을 증폭시켰다.
그때 한 청소년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작년 대상 수상자라는 이 청소년은 올해에는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했다며, ‘미니게임 메키어’를 해보라고 권했다. 이 학생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대학에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나는 내 중학교 친구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 학생에게 그 친구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스타트업에 취업했다가 사장님이 도망가서 울면서 내게 전화를 했었고, 내 방에서 며칠 같이 살았다. 이후에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 컴퓨터 보안 프로그래머로 성공해 현재는 일본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야간으로 대학도 졸업했다.
언젠가 이 학생이 내 친구처럼, 또는 넥슨이나 넷마블, 엔씨소프트, 펄어비스, 네이버, 카카오의 창업자처럼 젊은 IT기업인으로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 순간에 나는 아침햇살을 맡으며 삶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 내가 살아오고 있다는 점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어디쯤에서 내 꿈이, 누군가의 꿈이 성공적으로 발화하기를, 그런 생태계가 조화롭게 작동하기를 기도해봤다. 그것은 꿈일까. 다가오지 않는 이상일까. 아니면 우리의 응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