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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거목 신격호 타계…‘신동빈號 롯데’ 앞날은

영욕의 70년 세월…혁신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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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0.01.20 14:00:24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생전 고인의 모습. (롯데지주 제공)

 

70여년전 일본에서 껌 장사로 시작해 오늘날 롯데를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가 한국과 일본의 기업사에 남긴 발자취는 크고도 선명하다. 갓 스무살 나이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롯데 신화를 일군 불굴의 기업인이지만, 말년에는 자식들 간 경영 분쟁, 기업비리 재판 등으로 편치 않았다. 그가 살아온 족적을 따라가 보며 롯데의 앞날을 예측해봤다. (CNB=도기천 기자)

‘1세대 창업주’ 마지막 거인 영면
‘껌 장사’에서 시작해 재계 5위로
‘韓日통합경영의 꿈’ 차남이 승계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은 숙환으로 입원해 있던 서울 아산병원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1922년 10월 경남 울산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난 신 명예회장은 1942년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우유배달을 하며 고학생활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 작은 공장 하나를 세웠지만 폭격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는다. 허물어진 공장에서 비누를 만들며 재기에 성공한 뒤, 일본에 주둔한 미군을 상대로 껌을 생산·공급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없어서 못 팔던 게 껌인 시절이다 보니 ‘청년 신격호’는 큰 돈을 벌었고, 1948년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세웠다. 이 회사가 ‘롯데’다.

 

50년간 한국 롯데그룹을 이끌었던 신격호(99) 총괄회장의 젊은 시절과 최근 모습. (롯데지주 제공)
 

‘롯데 신화’ 창조한 청년 신격호

이후 신 총괄회장은 초콜릿 생산에 착수했다. 당시 초콜릿 산업은 ‘중공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제조방식이 까다로웠다. 신 총괄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와 초콜릿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이후 롯데는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듭했다.

일본에서 종합제과기업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신 총괄회장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조국이 있었다. 그의 꿈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대한민국에서 과자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한·일 수교 이후 한국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한국에 진출했다. 1970년대에는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을 세워 국내 식품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어 롯데호텔과 롯데쇼핑, 롯데면세점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척박한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도약 발판을 마련했다. 또 호남석유화학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1987년에는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 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신념으로 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며 부지를 매입했다. 훗날 국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우뚝 선 롯데월드타워 건립의 시작이었다.

제과로 시작해 호텔·관광, 유통, 화학 등으로 덩치를 키운 롯데그룹은 오늘날 재계 5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고인은 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 기업인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 침통한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행했던 말년…오점으로 남아

롯데를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지만,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신 명예회장은 큰 위기를 맞았다. 장남은 신 명예회장이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면서 끝없이 동생(신동빈)을 압박했다. 그는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롯데홀딩스 주총에 수차례에 걸쳐 신동빈 회장 해임안을 제출하고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주주들은 신동빈 회장을 절대적으로 신임했고 신동주 전 회장에게 기대고 있던 신 명예회장은 2017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국내 계열사 이사직에서도 퇴임하면서 롯데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런 가운데 건강 문제가 드러났다. 법원은 신 명예회장이 정상적인 사무처리 능력이 없다며 사단법인 선을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으로 지정했다.

90대 고령에 수감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은 두 아들과 함께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12월 징역 4년 및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가까스로 법정 구속은 면했다.

2018년 6월 법원 결정에 따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레지던스에서 소공동 롯데호텔로 거처를 옮긴 이후 건강이 악화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혼외 부인 서미경씨의 최근 모습(왼쪽)과 미스롯데 시절 모습. (사진=CNB포토뱅크)

경영권 분쟁과 재판 와중에 혼외 부인으로 알려진 서미경씨(61)의 존재가 드러나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서씨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이라는 광고카피를 히트시킨 주인공이다. 1977년 ‘제1회 미스 롯데’에 뽑혀 롯데 전속모델로 활약할 당시 ‘서승희’라는 예명으로 드라마, MC, 영화, 광고까지 두루 섭렵했다.

그러다 스물두살 때인 1981년에 37살이나 많은 신 명예회장의 셋째 부인으로 낙점됐다. 당시 두 사람은 숱한 화제를 남겼지만 이후 서씨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신 명예회장과 서씨 사이의 무남독녀인 신유미(37) 롯데호텔 고문 또한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롯데호텔 직원들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지금까지 사진 한 장 공개된 바 없다.

그러다 서씨는 신 명예회장의 경영비리 혐의 재판에서 4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을 둘러싼 탈세 혐의, 서씨 모녀 회사에 대한 롯데의 일감몰아주기 의혹 등으로 수년간 재판을 받다가 2018년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현재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씨는 19일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다.

롯데그룹 측은 “신 명예회장 개인사일 뿐, 서씨 모녀와 롯데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1970년대 롯데제과 판매직원들이 거리홍보를 하고 있는 모습. (롯데지주 제공)
 

‘신동빈 원톱’ 흔들림 없을듯

신 명예회장의 별세에도 불구하고, 롯데의 혁신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신 명예회장이 사실상 은퇴한 2017년 이후 롯데는 ‘신동빈 원톱 체제’로 재정비 됐으며,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역시 신 회장의 완승으로 끝난 상태다.

롯데그룹은 2017년 10월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롯데쇼핑 등 유통·식품 부문 42개 계열사를 분할합병하는 형태로 롯데지주를 창립해 ‘뉴롯데’를 출범시켰으며, 이후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했다.

신 명예회장이 일부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영향력은 크지 않다. 신 명예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롯데지주(주) 지분 3.09%를 비롯, 롯데제과 4.48%, 롯데칠성음료 1.3%, 롯데쇼핑 0.93%를 갖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은 0.44%에 불과하다.

반면 신 회장은 롯데지주 지분이 11.71%로 총수 일가 중 가장 많다. 롯데지주는 롯데제과 지분 48.42%, 롯데케미칼 23.76%, 롯데칠성음료 26.54%, 롯데쇼핑 40.00%를 보유해 주요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신 명예회장의 지분을 가족들이 나눠 상속한다 해도 신 회장의 지배력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신동빈 회장은 선친의 뜻을 이어 ‘한일 롯데 통합경영’ 실현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1991년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 기념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와 신동빈 회장(맨오른쪽). (롯데지주 제공)

현재 롯데그룹의 숙원은 한국과 일본을 양대 축으로 하는 경영구조를 한국(신동빈) 중심의 통합 체제로 일원화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텔롯데의 상장(기업공개)이 필수적이다. 롯데는 ‘오너일가-광윤사-일본롯데홀딩스-호텔롯데-한국롯데지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의 중간지주회사 격이자 일본 롯데와의 연결고리다.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국내 일반주주의 지분율이 높이고 일본 자본의 비율을 5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워둔 상태다. 이렇게 되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일본 기업’ 논란은 저절로 사라지게 되고, 한일 통합경영의 토대가 마련된다.

이는 신 명예회장의 별세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안인 만큼, 그의 빈자리에도 불구하고 호텔롯데 상장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빈소를 찾은 한 재계 관계자는 CNB에 “롯데그룹이 한국롯데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신격호 창업주의 유지이자, 신동빈 회장의 숙원이기도 하다”며 “신 회장이 선대회장의 뜻을 잘 받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와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이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 신경숙씨, 신선호 산사스(일본 식품회사) 사장, 신정숙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이 동생이다.

장례는 롯데그룹장으로 치러진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명예장례위원장을, 롯데지주 황각규·송용덕 대표이사가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6시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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