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미세먼지의 공습까지. 새해가 밝았지만 공기는 냉랭하고 눈은 텁텁하다. 온통 잿빛인 2020년의 시작을 감각적으로 보내는 방법 중 하나는 좋은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마침 스산한 심신을 정화시켜줄 전시가 잇따르고 있다. 북유럽에서 날아온 일러스트, 어린이들의 상상력으로 빚은 자동차 등 보는 눈이 즐거운 네 가지 전시회를 CNB가 소개한다. (CNB=선명규 기자)
‘어린이 상상’ 구현한 현대차
관람은 물론 타볼 수도 있어
롯데아트홀은 북유럽으로 변신
외형이 거대한 우주선과 같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차량 6대가 들어섰다. 상용차와는 모습부터 확연히 다르다. 둥근 풍선이나 우주선, 심지어 동물의 얼굴을 닮은 차도 있다. 디자인이 천차만별이라 대규모 양산 의지가 없어 보이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현대자동차가 실제 모형으로 제작해 선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DDP 살림터에서 다음달 16일까지 개최하는 ‘제4회 브릴리언트키즈 모터쇼’는 체험과 관람이 어우러진 전시다. 보는 것은 물론 탑승해 볼 수도 있다. 전시에 앞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그림 1만100여건을 접수 받았는데, 본상 수상작 150점 중 특별상에 해당하는 6점이 전시장에 나왔다. 싱그럽고 기발한 발상이 실제 소형차량 크기로 구현됐다.
그중 ‘길거리 동물 케어 자동차’가 인상적이다. 기획 의도가 따뜻하고 참신하다. 유기견과 길고양이들을 돌보기 위한 차로, 내부에 먹이통과 침실, 캣 타워(cat tower) 등을 갖췄다. 오갈 데 없는 동물들이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동심은 연료의 한계도 뛰어넘었다. 공기를 충전하면 움직인다는 ‘두둥실 풍선 자동차’, ‘소리에너지 자동차’ 등 재밌는 아이디어가 즐비하다. 타면 마음이 바뀌는 ‘성격 개조 자동차’, 좁은 길도 휙휙 지나갈 수 있는 ‘납작 자동차’처럼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지게 만드는 유쾌한 생각도 만나 볼 수 있다.
이번 키즈모터쇼의 심사위원 대표를 맡은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이순종 명예교수는 “과거 대회에서는 아이들의 그림 실력이 수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었다”며 “하지만 올해는 상상력과 스토리를 바탕으로 우수작들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빌딩에 나타난 경주차
도로에서 볼 수 없는 차(車)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트랙 위라면 이 차는 달릴 수 있다.
KEB하나은행은 서울 을지로 본점 1층 로비에서 다음 달까지 친환경 전기 경주차인 포뮬러E 전시회를 연다. 금방이라도 굉음을 내지르며 질주할 듯한 경주용 차가 바닥에 낮게 웅크린 채 매끈한 콧날을 드러내고 있다. 포토월이 마련돼 카메라만 있으면 누구나 레이서처럼 차와 나란히 사진 찍을 수도 있다.
이번 전시는 오는 5월 서울에서 열리는 ‘내연기관 없이 순수 전기로 승부를 가리는’ 자동차 경주 대회를 앞두고 사전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마련됐다. ‘2020 포뮬러 E 챔피언십’ 경기 중 제 9라운드인 ‘SEOUL E-PRIX 2020’이 봄날, 잠실 종합운동장 올림픽 주경기장 일대에서 진행된다.
KEB하나은행 측은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 확산과 더불어 곧 열리는 대회 역시 많은 홍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롯데·현대백화점에서 만나는 동화
지난달 28일 롯데백화점 잠실 에비뉴엘아트홀. 북유럽일러스트레이션展 ‘My Winter Story, 숲길을 걸으며’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 초입에 단층 양옥 모형의 설치물이 걸렸다. 창문으로는 부녀처럼 보이는 이들이 두런두런 대화하는 모습이 비친다. 전시 공간을 따라선 통나무 의자와 나무로 지은 작은 집이 마련됐다. 관람객을 단박에 이국(異國)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들이다.
동화책 한 단락을 그대로 옮긴 듯한 이번 전시는 핀란드(마티 피구얌사, 린다 본드스탐), 스웨덴(제니 스위딘), 덴마크(안나 마르그레테키에르고르) 출신 작가 4인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 북유럽인들의 삶과 철학을 담은 일러스트, 드로잉, 나무 부조페인팅 등 150여점이 나왔다.
낯선 땅에서 날아든 작품들이나 이질적이진 않다. 동물, 자연, 사람이 주된 소재이기 때문이다. 7살 딸과 찾은 오미혜 씨는 “마치 동화 속으로 빨려 들어온 기분”이라며 “동심을 자극하는 그림이 많아 아이와 함께 보기에도 알맞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5층에 위치한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언-프린티드 아이디어’(Un-printed Ideas)의 주제도 그림책. 미술관 측이 지난 2018년부터 약 1년 간 진행한 그림책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최종 선발된 작가들이 더미북(초벌 책), 원화, 설치 등 174점을 선보이고 있다.
공간은 총 4개 주제로 구성됐다. ‘글이 없는 그림책’. ‘친구’, ‘책의 본질’, ‘자유 주제’이다. 작가들의 원화, 작업 과정을 담은 전시물도 함께 내걸렸다. 관람객은 각각의 작품과 연계한 예술 활동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종이 접기 등을 할 수도 있다. 관람료는 6000원이며, 전시는 3월 8일까지.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