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책이 각종 공급규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음에도 금융당국이 증권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규제 방안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증권업계는 대부분 증권사들의 자산건전성이 과거에 비해 크게 나아진 점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며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걸까. (CNB=도기천 기자)
공급 규제로 주택시장 불안한데도
‘부동산PF’ 제한 방침 발표해 혼란
증권업계 “순기능 외면한 탁상행정”
전문가들 “대출시장 풍선효과 우려”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지난 5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제3차 거시건전성 분석협의회’를 열어 부동산PF 익스포저(위험 노출 금액)에 대한 건전성 관리 방안을 확정했다. 금융사들의 부동산PF 채무보증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제한하고, 순자본비율(NCR)을 계산할때 PF의 위험도를 지금보다 더 많이 반영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는 사실상 증권업계를 겨냥한 조치로 해석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권의 부동산PF 채무보증은 지난 6월말 기준 28조1000억원인데, 이중 증권사가 26조2000억원으로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PF는 최근 몇년 새 증권사들의 새먹거리로서 효자노릇을 해왔다. 은행들은 2010~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 동반 손실을 입은 이후 부동산PF 사업을 스스로 대폭 줄였는데, 여기서 생긴 틈새를 증권사들이 메워 온 것이다.
증권사들은 부동산 개발을 통해 발생할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건설사(시공사)에게 사업 수행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주거나 채무보증을 서는 형태로 PF를 진행하고 있다. PF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이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마련한 자금을 건설사에 대주고, 건설사는 이를 통해 토지비·건축비 등을 감당하고 추후에 분양대금이 들어오면 증권사에 수수료나 이자를 지급하는 형태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한 해 영업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부동산PF에서 올리고 있다.
증권사들 “건전성 확보했는데 왜?”
금융당국은 증권사의 부동산 채무보증액이 급격히 늘고 있어 부실이 우려되기에 이번 규제안을 도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달라진 시장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조치라는 비판이 많다. 우선 증권사들의 몸집이 과거에 비해 커졌다는 점에서다.
실제 국내 증권사 34곳의 자기자본은 2015년말 37조원에서 올 6월말 55조원으로 약 48% 증가했다. 미래에셋대우‧NH투자증권‧삼성증권 등 자산 3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 8곳의 자기자본도 같은 기간 29조212억원에서 37조7758억원으로 30.1% 늘었다. 증권업계는 자산규모가 커져 부동산PF 또한 자연스럽게 증가한 것인데, 마치 자산건전성이 악화된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며 억울해하고 있다.
건전성을 가늠할 잣대인 연체율이 크게 줄어든 점도 금융당국의 논리와 어긋나는 대목이다.
증권사들의 부동산PF 대출 평균연체율은 2013년 13%에서 올 6월말 1.6%까지 대폭 줄었다. 고정이하여신비율(NPL)도 같은 기간 16.9%에서 3%로 낮아졌다. 부동산PF를 확장한 시기에 오히려 자산건전성이 개선된 것이다.
이에 대해 대신증권 박혜진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6개 주요증권사(미래에셋대우‧NH투자증권‧삼성증권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종금증권)의 부동산PF 실태 분석 결과, 지급보증을 제공한 물건 중 거래상대방의 신용위험이 발생하면 지급보증 의무가 없어지는 LOC약정을 체결한 계약비중이 높으며, PF대출은 신용등급 초우량 건설사가 책임준공 및 보증한 계약이 대부분이었다”며 “부실이 증권사에 전이될 가능성은 (예전에 비해) 많이 낮아진 상태”라고 분석했다.
‘규제→공급악화→집값상승’ 악순환
한편에서는 이번 조치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헤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작년 9.13대책, 최근의 12.16대책 등 고강도 규제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서울 집값은 7월 첫째주부터 이달 둘째주까지 24주 연속 상승했다. 12.16대책에는 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를 구입할 때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고, 서울 대부분 지역으로 분양가 상한제를 확대하는 초강력 수요 억제책이 담겼지만 시장 분위기는 냉랭하다.
전문가들은 주택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점을 부동산 시장 불안의 최대 원인으로 꼽고 있다. 각종 규제에도 대기수요가 여전해 공급이 전제되지 않으면 정책 약발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증권사 부동산 규제가 시행되면 공급난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통상 시행사는 부동산PF를 받기 전 저축은행 등을 통해 브릿지론(Bridge Loan)을 받고, 향후 본 PF를 받아 이를 상환한다. 따라서 증권사PF가 막히면 고금리 이자를 견디지 못해 사업을 중단해야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결국 ‘규제→공급 악화→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규제의 역설?
이는 부동산 시장 불안 뿐 아니라 금융시장 안정도 해칠 우려가 있다. 이번 규제로 PF가 원활하지 않게 될 경우, 시행사들이 위험 자금을 끌어 쓸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표적인 예가 ‘P2P대출(개인 간 거래)’이다. 현재는 개인을 중심으로 P2P 부동산 대출이 이뤄지고 있지만, 시행사들이 뛰어들면 급속하게 거래 규모가 커질 수 있다. P2P 부동산 대출 잔액은 이미 지난 6월 기준 8797억원으로 1년 전보다 62% 급증한 상태다.
P2P시장은 쉽게 자금 조달이 가능한 만큼 투자자의 원금손실률도 높다는 점에서 자칫 이번 규제가 개인의 투자 위험도를 높이는 쪽으로 전이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CNB에 “정부가 안정적인 주택공급과 수분양자 보호 등 PF 사업의 여러 순기능을 고려해서 이번 규제안 시행에 신중을 기해주기 바란다”며 “만약 원안대로 규제가 시행되면 증권사들이 수익에 큰 타격을 입게 됨은 물론 부동산·금융시장이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세현 인하대 겸임교수(경영학)는 CNB에 “금융시장 기능은 어느 한쪽만 보고 판단해서는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며 “자기자본을 넘어서는 채무보증은 무조건 위험하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금융사의 자산건전성, PF의 성격과 시행·시공사의 재무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금융위는 이 같은 우려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 12일 해명자료를 통해 “부동산PF 익스포져 건전성 관리 방안은 금융시장 안정 및 시스템리스크 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는 등 제도개선 사항들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향후 추진과정에서 업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