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도인데 담음새가 괜찮다. 현대백화점이 오는 31일까지 무역센터점에서 여는 ‘순간을 조각에 담다’전은 쇼핑공간에 문화를 심고자 추진하는 ‘아트 바이 더 현대(Art x The Hyundai)’ 프로젝트의 첫 번째 일환이다. 쇼윈도 앞, 통로, 엘리베이터 옆 등 내부 곳곳에 미술 작품을 배치했는데, 주변 환경과 동떨어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천장에서 샹들리에처럼 찰랑이는 것도 알고 보면 예술 작품. 약간의 의식만으로 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CNB=선명규 기자)
작가 6인 참여, 갤러리로 탈바꿈
눈 닿는 곳마다 예술작품들 가득
백화점의 무한변신…차별화 전략
무심코 걸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그만큼 이질적이지 않다. 지난 23일,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 1층부터 6층까지 몇번 오르락내리락 하고서야 알게 됐다. 아까 지나친 에스컬레이터 옆 화면서 나오는 도형의 움직임, 공중에서 영롱히 빛나는 물체, 거울 앞에서 긴 다리를 뽐내던 스테인리스 동물…. 이 모두 예술작품이었다는 것을.
어쩌다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만 수월한 관람을 위해 3층 먼저 찾는 것이 좋다. 작품 배치도와 설명서가 이곳에 비치돼 있다. 친절한 책자를 챙기고 보물찾기 하듯 탐색에 나서면 백화점이 미술관으로 바뀌는 착시가 일어난다.
관람의 여정은 난데없는 곤충 떼로 시작한다. 1층 정문으로 들어와 중앙에 서서 가장 높은 곳을 올려다보면 잠자리, 벌 등이 찬란한 은색 옷을 입은 책 빽빽이 늘어서 활공 중이다. 거울처럼 매끄러운 그들의 표면은 방문객과 주변을 모두 비춘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이성옥 작가의 ‘자연의 소리’이다. 인간이 훼손하는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설치작품. 사람, 사물, 공간이 곤충들에 나란히 담겨 있는 모습을 보면 ‘공존’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튀어 오른다.
쇼핑에 집중하느라 허투루 시선을 돌려도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있다. 오동훈 작가의 ‘Bubble Man’이 그런 경우다.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이라면 먼발치서도 알아볼 것이다. 구(球)의 변형이 일으킨 독특한 건축조형미로 현재 국내외 아트페어서 주목받는 그의 작품을. 비누 방울 같은 원이 이어 붙어 건장한 남성이 탄생했다. 달음질치는 듯한 역동적인 모습으로 쇼윈도 앞에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잡아끈다.
하이라이트는 3층 복도에 기다랗게 자리하고 있는 오원영 작가의 ‘헤르메스의 썰매’다. 짐짓 기운찬 짐승들이 이끄는 썰매에 두 아이가 쾌활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의문을 일으키며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등받이 뒤에 달린 날개 때문에 이들이 달리려는 것인지 날려는 것인지 궁금해지는 설치작. 혜안을 엿본 것은 뜻밖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마침 지나가며 감상평을 내놓았다. “애들은 더 놀고 싶은데 쟤들은 지쳤구먼. 그만 내려오라는 거지”
이번 전시에는 6인의 작가가 참여했다. ‘긴 여정’ 시리즈로 자연의 본질을 표현하는 정욱장, 추상회화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구성한 윤형재, 유리공예 설치작으로 해외 국제전서 호평 받는 이후창 등이 백화점을 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작품은 1층에 2점, 3층에 8점이 있다.
이혁 현대백화점 영업전략담당(상무)는 “브랜드와 상품 경쟁만으로는 기존 백화점이나 다른 유통채널과 차별화하기 어렵다”며 “백화점을 콘텐츠 체험공간으로 변화시켜 방문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자 이번 전시회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