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은 학습이다. 배워야 살 수 있다. 지난 5월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유람선 전복 사고를 겪은 한 여성은 절체절명의 순간, 몸이 기억하는 수영 능력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사고 직후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수영 가르쳐준 게 도움 됐어”라고 했다. 이는 학습을 통해 급작스런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에 CNB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로부터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안전이 미래다>를 연재한다. 1편은 위험이 실시간 도사리고 있는 건설 현장.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현대건설 기술교육원 내 안전문화체험관에서 매달리고 떨어지고 맞아가며 ‘안전’을 몸으로 배워봤다. (CNB=선명규 기자)
건설 현장 옮긴 체험관에서
매달리고 맞으며 안전 배워
‘악!’소리 나지만 몸이 기억
꿈에서 떨어져도 양 팔 감싸
“아! 악!! 으악!!!”
“오늘 고생 많이 하시네요”
외마디 비명이 순차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날 안내를 맡은 채영호 현대건설 안전지원팀 대리(라 쓰고 조교라 읽는)는 비참한 절규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실습의 강도를 유지했다.
출발은 “아!”였다. 현장의 기본 수칙인 보호 장구 착용부터 하고 충격 실험을 했다. 안전모를 쓰고 의자에 앉아 약 1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추를 머리로 받았다. ‘딱’소리가 났다. “아프진 않을 겁니다”라고 했는데 충격 받은 골이 눈치 없이 고통의 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당연히 다치진 않았다. 만약 안전모가 감싸고 있지 않았다면 두개골에 실금이 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앞으로 남은 체험이 구만리. ‘딱’소리를 상기한 채 턱 끈을 다시 조이며 무사 완주를 다짐했다.
자욱한 연기로 인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화재 현장에서는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이론 교육은 익숙했다. ‘젖은 천으로 입과 코를 막는다. 허리를 숙이고 팔을 뻗어 벽을 짚어가며 길을 찾는다. 그렇게 전진한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라 ‘열·연기 대피 체험’ 구역 앞에서 코웃음을 쳤다. “길이는 12미터인데 빨리 나오시는 분은 1분, 보통 3분이면 탈출합니다” 기록 경신을 자신하며 입구로 들어갔다. 미세한 불빛도 없는 방에는 연기만 가득했다. 들은 대로, 아는 대로 몸을 숙여 벽을 매만지며 길을 찾았다.
보이지 않는 공포는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패닉룸’에 갇힌 것처럼 모든 논리적 사고가 멈춰버렸다. 벽이고 뭐고 다급해져 어느새 바닥을 기고 있었다. 진입 1분 만에 전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뒷걸음질로 후진하며 엉덩이부터 입구로 다시 나왔다. 밝은 실내등 아래서 금방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 어색하게 바라봤다. “우선 침착하셔야 해요….” 화재가 발생하면 당황하지 않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었다.
추락 시에는 팔을 X자로
추락은 건설 현장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사고다. ‘건설안전체험구역’에서는 떨어지는 경험을 통해 경각심을 일깨운다.
“사다리에 올라가세요. 꽉 잡으시고요”
차분한 어투에 고분고분 올라탔다. ‘꽉’이란 말을 의심했어야 했다. 이내 버튼을 누르자 사다리가 확 젖혀졌다. 야생마에 올라탄 카우보이처럼 속절없이 튕겨 나갈 뻔 했다. 정확히는 반만 나가 떨어졌다. 손으로는 간신히 부여잡았지만, 두 다리는 매트리스에 떨어져 기도드리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사다리 작업 시에는 2인1조로, 한 명이 밑에서 단단히 잡아줘야 합니다.” 사다리는 언제든 넘어질 수 있다는 중요한 얘기였지만 “곧 던질 거야”라고 얘기해줬으면 이렇게는 안 놀랐을 텐데. 단호한 그의 머리 위로 유격장에서 보던 빨간 모자가 아른거렸다.
“떨어질 때 자세가 중요합니다”
3미터 높이 철판에 서서 설명을 새겨들었다. 안전대와 보호 장구에 고리를 연결하고 낙하 준비를 마친 뒤였다. “사람이 갑자기 떨어지면 버둥댑니다. 그러다 더 다치고요. 그래서 팔을 X자로 모아 가슴에 붙여야 해요. 자, 시작합니다” 바닥이 열리면서 그대로 지면 가까이까지 떨어졌다. “악!!” 그리 높지 않아 보였는데 비명과 함께 손에서 왈칵 땀이 터졌다. 양팔이 비굴하게 퍼덕거리려는 것은 간신히 묶어두었다. 당황해서 허우적댔다면 주변 물체에 부딪혀 부상을 당하는 것은 물론 중심을 잃고 머리부터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강은 계속 됐다. 비계(飛階)에서 작업할 땐 추락 방지 고리를 걸어가며 이동해야 하는데, 그 중요성에 대한 실습이 이어졌다. 바닥에서 천천히 부양해 일정 높이에 다다른 뒤 낙하하는 게 차이라면 차이. 이번엔 올라가는 게 문제였다. 몸을 지탱하는 끈을 가랑이에 걸었는데 1센티미터씩 움직일 때마다 조이는 강도가 덩달아 상승했다. 정상에 오르자 “으악!!!” 소리가 다리 사이에서 푸시시 흘러나왔다. 손에서 촉발된 땀은 척추로 전이되어 기립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찬가지로 팔은 X자로 하세요. 고리가 없으면 그냥 떨어지는 겁니다. 반드시 걸어가면서 작업해야 해요” 이젠 키 크는 꿈을 꾸어도 팔을 가슴으로 모을 것만 같았다.
학습 통해 ‘안전지수’ ↑
반성과 깨달음으로 점철된 실습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나마 건진 위안은 하나. 유일하게 성공한 화재 진압이었다.
실내에서 실화로 불을 낼 순 없으니 가상으로 진행된다. 스크린 영상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재빨리 ‘불이야’를 세 번 외쳐 상황을 전파하고, 앞에 놓인 소화기의 안전핀을 뽑은 뒤 발화지점을 정확히 쏘면 끝. 밀폐된 공간에서 분말을 쏠 순 없으니 물이 발사되는 것만 실제와 다르다. 단순하지만 성공률은 낮다. 우물쭈물 상황 전파를 제때 못하거나 안전핀 뽑는 걸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확실한 건 이번 체험을 통해 안전지수가 한 단계 정도는 상승했다. 실전이었다면 화재 현장에서 당황해 발화 지점으로 돌아가다가, 낮은 높이일지라도 추락 중에 파닥거리다 중심을 잃고 머리부터 떨어져 유명을 달리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먼저 안전모 없이 건설 현장을 배회하다 비명횡사했을 지도 모른다. 학습을 통해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적어도 세 가지는 체득했다.
(CNB=선명규 기자)
현대건설 안전문화체험관은? 지난해 11월 문을 연 현대건설 안전문화체험관은 총 200평 규모다. 추락, 화재, 감전, 붕괴, 응급 등 특히 대형 현장에서 발생하는 주요 11가지 재해와 관련한 체험시설이 설치됐다. 몇몇 상황은 VR로 실전처럼 경험할 수 있다. 개관 전 현장 관리감독자들을 대상으로 약 한 달간 시범운영을 거쳐 보완점을 개선, 완성도를 높인 것이 특징. 현대건설 임직원과 협력사 임직원은 물론 외부 교육 희망자도 사전 신청을 통해 참여 가능하다. 현대건설 측은 “기업경영에 가장 핵심적인 가치인 안전을 더욱 공고히 다지고자 안전문화체험관을 개관하게 됐다”며 “현장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디딤돌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