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에서 시작된 반일 감정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과거 독립운동에 기여했던 국내기업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번지면서 상대적으로 이들 기업의 제품과 경영철학, 역사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이런 흐름은 다가오는 광복절을 전후해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CNB=도기천 기자)
광복절 앞두고 반일 운동 ‘절정’
그날 항거했던 기업들에 쏠린 눈
과거 선행 공유되며 잔잔한 울림
지난 1일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에서 비롯된 일제 불매운동이 산업 전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노노재팬’(nonojapan.com)에 공개된 불매 대상 일본기업과 제품, 브랜드가 수백개에 이르며 갈수록 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각종 포털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무늬만 국산’인 일본 제품들을 가려내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다.
유니클로, 아사히맥주, 기린맥주 등 익히 알려진 일본 브랜드들은 물론 액티넘, 카베진, 알보칠, 화이투벤, 케어리브, 맨소래담 등 일본산 일반의약품 리스트까지 공유되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와 CU, GS25,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에서는 일본산 맥주, 라면, 과자 등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으며, 수입맥주 4캔을 묶어 9천원~1만원에 판매하는 행사에서도 일본 맥주가 제외됐다.
심지어 민주노총 산하 택배노조는 유니클로 제품 배송을 거부했으며,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매장에서 고객들에게 일본 제품을 안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30일에는 전국 52개 지자체 단체장들이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모여 ‘일본 보이콧’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일본 여행 예약자 수도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이 여파로 국내 빅2 여행사인 하나투어와 모두투어의 주가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20% 넘게 하락했다.
소비자들은 불매운동 차원을 넘어 대규모 집회까지 벌이고 있다. 600여개 시민단체로 결성된 ‘아베 규탄 시민행동’은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 5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의 경제 보복 행위를 규탄했다.
독립운동 마중물 된 기업들
이처럼 반일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이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국산 제품들의 매출은 호조세다. 국내기업인 하이트진로, 현대차 등은 일본맥주, 일본자동차 판매가 급감하면서 판매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주목받는 기업은 동화약품, 유한양행, 교보생명 등 일제강점기에 창업주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역사를 갖고 있는 곳들이다.
동화약품은 항일 역사가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동화약방(동화약품의 전신)은 1897년 우리나라 첫 제약회사로 설립됐다. 창업주 민강 선생은 1909년경 비밀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한성임시정부 수립과 국민대회 개최를 추진하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같은해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서울 순화동 동화약방 건물에 임정의 비밀 연락사무소였던 ‘연통부’를 설치했다. 민강 선생은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고 정보를 수집했으며,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임정에 전달하는 행정책임자로 활약했다.
그는 소의학교(현 동성중·고교)와 조선약학교(현 서울대 약대)를 설립하는 등 민족교육에도 기여했지만, 수차례 이어진 옥고로 1931년 48세 나이로 순국했다.
1937년 회사 지휘봉을 물려받은 윤창식 선생도 독립운동에 적극 나섰다. 그는 경제적 자립으로 국권을 회복하자는 목표 하에 ‘조선산직장려계’를 결성해 총무로 활동했다. 또한 빈민 계층을 도운 ‘보린회’와 '신간회'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다양한 민족 운동을 펼쳤다.
또 동화약품의 7대 사장인 윤광열 회장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일제에게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했다. 이후 중국 상해에서 주호지대 광복군 5중대 중대장직을 맡았다.
직접 총 들고 항일투쟁
유한양행은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항일투쟁으로 익히 알려진 기업이다.
유 박사는 미국 유학 중이던 청년 시절 3.1운동에 참여, 미주한인대표자대회에서 결의문 작성을 주도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현지에 식품회사를 설립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보고 귀국해 유행양행을 창립했다. 당시 서민들 사이에 만연했던 피부병·결핵·학질·기생충 등의 치료제 개발에 힘쓰는 한편 꾸준히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유 박사는 미국 전략정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s)의 한국담당 고문으로 참전했다. 한인부대인 맹호군 창립을 주도했으며, 전쟁 말기에는 한국인으로 구성된 미군 특수부대에 소속돼 50살의 나이에 총을 들었다.
오늘날 유한양행과 유한킴벌리(유한양행과 킴벌리클라크의 합작사)는 유 박사의 뜻이 이어 의약품 지원, 나무심기 캠페인, 재능기부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창업주 일가 모두 일제에 맞서
교보생명은 창업주 일가가 모두 민족운동에 기여한 사실로 유명하다.
대산(大山) 신용호 창업주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물밑에서 독립운동을 후원하다가, 민족시인 이육사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민족자본가의 길을 걸었다. 1940년 베이징에 ‘북일공사’를 설립해 곡물 유통업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이때 얻은 수익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대산의 큰형인 신용국 선생은 스무살 때 3.1만세운동에 뛰어든 후, 전남 영암의 대표적 농민항일운동인 ‘영암 영보 형제봉 사건’ 때 일본 소작인을 응징하고 항일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6개월간 수감되는 등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대산의 부친인 신예범 선생은 야학을 열어 젊은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일본인 지주의 농민수탈에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했다.
이밖에 LG그룹 구인회 창업주는 일제의 도발로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상해임시정부의 자금줄이던 백산상회에 거액의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LG그룹은 창업주의 정신이 이어받아 충칭 임시정부 청사, 서재필기념관, 매헌 윤봉길기념관, 우당 이희영기념관, 안중근의사기념관, 만해기념관, 도산 안창호기념관, 심산 김창숙기념관 등 독립운동 관련 시설들의 관리와 개보수를 지원하고 있다.
“반일의 핵심은 그들 뜻 기리는 것”
이 기업들이 주로 제약, 보험 업종이라는 점에서 식음료 회사들처럼 당장의 매출 반사이익은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일부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선행이 회자되고 있다. 관련기사와 자료가 블로그, 카페 등에 공유되면서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회사원 차모(46) 씨는 CNB에 “일본과의 대립이슈가 ‘경제’인만큼 불매운동도 중요하지만 항일운동에 동참했던 기업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싶어 아파트입주민 카페, 동문회 밴드 등에 관련 내용을 퍼나르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박모(51) 씨는 “엄혹한 시절에 기업인들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에서 후배 기업인으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때가 때인 만큼 직원들과 지인들에게 그들의 선행을 알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흐름은 오는 8.15를 앞두고 점점 고조되고 있다. 반일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광복절이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의 광복절이라는 점에서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CNB에 “최근 일본과의 갈등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기업이 한국인들을 강제로 징용한데 대한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에서 비롯된 만큼, 당시 일본기업들과 경쟁했던 민족기업들을 알리는 일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반일 운동이 다양한 주제와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