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 세 나라는 남북 간 유라시아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다. 정부는 이 나라들과 대규모 경제협력에 합의했지만, 남북경협주는 아직 내리막길이다. 이유가 뭘까. (CNB=손정호 기자)
文, 중앙아시아 3개국과 경협 본격화
건설·ICT 수혜 예상, 신북방정책 탄력
북미관계 악화로 남북경협주는 제자리
문 대통령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3개국을 지난 16일부터 23일까지 7박 8일 일정으로 국빈방문한 결과, 상당한 경제외교 성과를 거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세 나라는 24개 프로젝트(130억 달러)의 수주를 약속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우리나라 기업이 주도적으로 건설한 가스화학 플랜트인 키얀리 플랜트가 주목을 받았다. 두 정상은 이곳을 방문해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아울러 우리 국토정보공사는 지적정보 인프라 구축사업을 수주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우리나라에 12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발전소, 플랜트, 병원, 교육 인프라 등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과 샤프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5G 이동통신(ICT) 사업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무역협회는 코트라와 손잡고 ‘비즈니스 파트너십’ 행사를 가졌다. 인프라, ICT, 농업 등 우즈베키스탄 내에서 수요가 많은 비전사업을 발굴하고, 우리 기업과 연계시켜주자는 취지에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두 나라가 중장기 신규협력 프로그램인 ‘프레시 윈드(Fresh Wind)’를 채택했다. 인프라 건설, 보건의료, 농업, 문화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인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의 사업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간기업의 기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양국의 대규모 건설사업에 우리 건설사들의 몫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현대·두산·한화·롯데·GS·대우·호반건설, 금호·대림산업 등이 대표적인 수혜 예상 기업이다.
ICT 기업(KT, LG유플러스, SK텔레콤 등)과 은행(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기업·씨티은행 등)에도 향후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2~3차 협력사, 중소기업 등도 과실을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현지에서 사업수주를 추진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실제 SK건설은 우즈베키스탄 석유가스공사인 UNG와 6억달러 규모의 부하라 정유공장 현대화사업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文 순방에도 요지부동 “왜”
이처럼 문 대통령의 성공적인 중앙아시아 순방에도 불구하고, 남북경협주는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중앙아시아에서 거둔 성과가 한반도에는 별다른 파급효과를 미치지 못한 셈이다.
남북경협주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고, 아직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경협주의 대표는 단연 범(汎) 현대가(家)가 소속 기업들이다.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8년 소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남북 민간교류 사업의 물꼬를 텄고, 이후 현대아산이 대북사업을 전담해왔다.
현대아산은 2005년 현대가가 현대자동차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HDC현대산업개발 등으로 분리된 후에도 이 사업에 집중해왔다. 현재 현대그룹의 계열사로, 대북사업 7대 독점권(철도, 전력, 통신, 댐, 백두산 수자원, 통천비행장, 명승지 관광)을 갖고 있다. 현대아산은 비상장사라서 현대그룹의 유일한 상장사인 현대엘리베이터가 대신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건설은 북한 경수로와 ‘평양 유경 정주영 체육관’을 건설한 경험이 있다. 현대로템은 철도 전문기업으로, 현대제철은 철로의 재료인 철강을 생산해서 경협 수혜주로 꼽힌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도 있다. 좋은사람들, 인디에프 등이다. 금강산에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는 아난티 등도 관련주다.
이 기업들의 주가는 2차 북미정상회담(2월 27~28일)이 결렬된 후 큰 폭으로 하락했다. 3월경 최저점을 찍은 후, 현재(4월 말) 소폭 반등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 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북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라는 큰 숙제가 남아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본격적으로 강화하려면, 한반도평화사업이 재개돼야 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힘을 싣는다고 해도 그전에는 탄력을 받기 힘들다. 소규모 사업교류에 머물거나, 양국의 워킹그룹 회의가 지지부진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미국은 일괄 핵폐기와 제재 해제라는 ‘빅딜’,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와 순차적 제재 해제의 ‘스몰딜’을 주장하고 있다. 양측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등 기존의 협력사업을 재개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통일경제TF 팀장은 CNB에 “문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희망사항을 전했다”며 “남북경협주 주가와는 아직 큰 연동성이 없다”고 말했다. 북미 협상은 미국의 입장이 조금 더 강경해지고, 북한이 러시아와 대화에 나서면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