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게임사가 포괄임금제를 없애면서 관련업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 제도가 사라지면 야근 문화가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 하지만 야근이 잦은 게임업계 특성상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CNB=손정호 기자)
장시간 ‘공짜 야근’ 포괄임금제 폐지
초과수당 늘어 실적 악화될까 우려
전문가들 “기업간 양극화 더 심할것”
메마른 잎사귀에 어느덧 녹음이 짙어지면서 게임업계에도 변화에 대한 기대가 번지고 있다. 포괄임금제를 없애자는 바람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괄임금제는 야근이나 휴일근무 등 시간외근로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서 지급하는 제도다. 근로계약서에 한 달 동안의 시간외근로 시간을 정해 놓고, 이 이상이나 이하로 일하더라도 똑같은 금액만 지불하는 방식이다.
계약서에 명시된 시간보다 적게 일할 경우 근로자는 이득이다. 하지만 이보다 오래 일할 경우에는 손해다. 그래서 노동계에서는 이 제도가 야근을 합리화한다는 이유로 비판해왔다.
일부 게임기업은 이 제도를 이미 폐기한 상태다. 펄어비스(2017년), 웹젠(2018년), 위메이드(올해 1월) 등이다.
여기에다 빅3로 불리는 넥슨과 넷마블, 엔씨소프트가 이를 없애기로 하면서,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넥슨은 오는 8월, 넷마블은 3분기 내에, 엔씨소프트는 10월에 각각 이 제도를 폐기할 계획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CNB에 “포괄임금제가 사라지면 개인별로 초과근무를 한 만큼 수당을 지급하게 되는 게 가장 큰 변화”라며 “그렇다고 야근이 얼마나 줄어들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게임기업마다 수익성과 경영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초과수당을 더 지급하면서 야근을 유지할지, 아니면 이번 기회에 야근 자체를 줄일지는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악성적인’ 야근이 사라질 것은 분명하다는 점이다.
게임사들은 신작이 출시되기 직전에 출시일을 맞추기 위해, 고강도 야근을 하는 ‘크런치 모드’(‘으드득 부서지는 소리’라는 뜻의 크런치(crunch)에 비유)라는 관행이 있다. 이 시기에는 집에도 잘 가지 못할 정도로 작업에 몰두하는데, 이로 인해 계약서에 적힌 시간보다 길게 근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던 것.
이로 인해 게임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장시간 근로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노동부가 작년 5월 발표한 바에 의하면, 조사대상인 12개 게임사의 노동자(3250명) 중 무려 63.3%(2057명)가 초과근무를 하고 있었다.
야근 자체가 사라지진 않아
하지만 포괄임금제가 사라지면, 회사는 직원들에게 야근을 많이 시킨 만큼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인건비를 고려하면 악성적인 ‘크런치 모드’를 자주 발동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게임개발자연대 김환민 사무국장은 CNB에 “포괄임금제는 그동안 ‘공짜 야근’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됐다”며 “이런 제도가 사라지면 야근이 줄어들거나, 적정임금을 지불하는 등 게임사의 근로환경이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그동안 게임사들이 매출과 영업이익이 상승한 것에 비해 임금 상승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공짜에 가까운 장시간 야근을 강요해 불만이 높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로 인해 과로사 사망사건이 발생하는 등 내부불만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야근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일찌감치 이 제도를 없앤 한 게임사 관계자는 CNB에 “이 제도가 사라졌다고 해서 야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며 “그보다는 노동에 대한 적정한 임금을 받는 문화가 조성되고, 아울러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게 이전보다 나아진 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도 공존한다. 야근이 줄어들면 게임사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이에 따라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게임사들은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넷마블은 작년 매출(2조213억원), 영업이익(2417억원)이 각각 17%, 53% 감소했다. 컴투스도 상황이 비슷하다. 매출(4818억원), 영업이익(1466억원)이 각각 5%, 25% 떨어졌다. 엔씨소프트는 매출(1조7151억원)이 5% 늘었지만, 영업이익(6149억원)이 2% 줄었다. 다만 넥슨은 매출(2조5296억원), 영업이익(9806억원)이 각각 8%, 9% 성장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야근이 이전보다 줄어들면 게임사의 실적이 더 악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으로 풀이된다.
게임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점도 부담이다. 국내 회사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중국 회사의 도전에도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CNB에 “중국은 인력이 많아서 새로운 게임을 빨리 개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기술도 거의 우리나라 수준에 육박해서 조만간 중국에 밀리는 상황이 발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한국게임학회 회장)은 CNB에 “근무제도의 변화는 비용 상승을 불러온다”며 “대기업은 견딜 수 있지만 중소형사들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