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열리는 기업들의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전자투표제 확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자율지침) 등 주주권 강화가 최대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CNB는 주총 시즌에 맞춰 분야별로 주요 이슈를 연재하고 있다. 이번 편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둘러싼 논란이다. (CNB=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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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주총(1)] 올해도 '슈퍼 주총'...전자투표 힘 못쓰나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첫 주총시즌
배당 확대·오너 도덕성 제기 가능성
“경영자율성 훼손한다” 반론도 커져
정기 주총을 코앞에 둔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수백여개 기업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공단이 주총에서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기 때문. 이 제도는 작년 7월부터 시행됐는데, 이번이 첫 번째 ‘슈퍼주총’이다.
국민연금은 지금까지는 기업 경영에 특별히 개입하지 않아왔다. 하지만 보유 지분만큼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할 경우 대주주(총수 등)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
특히 국민연금은 600조원이 넘는 큰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큰 손’이다. 2018년 말 기준 국내 297개 기업에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기업들을 중점관리 대상으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주총에 임하겠다는 얘기다.
CNB가 국민연금의 투자(지분)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작년 9월 말 기준 국내 10대 기업(자산규모 기준)의 주식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삼성전자(9.25%), SK하이닉스(9.10%), LG화학(8.72%), 현대자동차(8.70%), 포스코(11.05%), 한국전력(6.43%), 삼성물산(5.70%), 네이버(10.00%), 현대모비스(9.45%), SK텔레콤(9.22%) 등이다.
10대기업 외에는 신세계백화점(13.18%), CJ제일제당(11.81%), 현대건설(11.23%), 현대백화점(11.25%), 한진칼(8.35%), SK케미칼(9.97%), 효성(7.20%), LG전자(9.34%), CJ(7.48%), 한화(6.91%), 기아자동차(6.52%) 등의 주요주주다.
금융권에도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KB금융지주(9.62%), 하나금융지주(9.55%), 신한금융지주(9.55%), 기업은행(9.41%), 우리은행(9.29%)의 주요주주이며, 삼성증권(10.97%), 미래에셋대우(9.99%), NH투자증권(11.18%), 한국금융지주(한국투자증권 지주사‧9.50%) 등 증권사 지분도 상당하다.
국민연금은 이 기업들에 대해 △배당정책 수립 △임원보수 한도 적정성 △법령위반 우려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 △지속적인 반대의견에도 개선 없는 사안 등의 문제를 살펴볼 계획이다.
국민연금發 재벌개혁 첫 신호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지가 관심사다. 증권가에서는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기업에 대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총수일가의 다양한 갑질과 월권행위로 도마에 올랐던 한진그룹에 대해서는 보다 강도 높은 지적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KCGI가 대한항공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에 대해 주주제안을 했기 때문. 이에 대해 국민연금은 KCGI와 같은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진칼은 ‘중장기 경영발전방안’을 발표했다. 오는 2023년까지 한진그룹의 매출 22조3000억원, 영업이익 2조2000억원으로 확대하고, 사외이사를 3명에서 4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사외이사추천위원회를 통해 공정성 문제도 개선하기로 했다.
임기만료가 다가오는 지배주주 이사의 재선임 여부도 관심사다. 국민연금이 발언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의하면, 대기업집단 지배주주 23명의 이사 임기가 조만간 종료된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현대모비스 비상무이사),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현대차 사내이사, 기아자동차 기타 비상무이사) 등이다. 오는 10월 임기가 끝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선임안 상정 여부 등도 거론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경제개혁연대의 지적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경제개혁연대는 의결권자문기관에서 임원 선임에 반대한 기업이 74곳(260개사 중 28.46%)이라고 밝혔다. 삼성, SK, LG,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롯데, GS, 미래에셋, 신세계, 두산, 한화, 포스코, 동국제강, 에스오일(S-Oil), 금호아시아나, 금호석유화학, 한진, 효성, KCC, 네이버, 카카오, 코오롱, 아모레퍼시픽, 영풍, 하이트진로, 대림, 동원, 하림, 한국투자금융, 농협, DB 등이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34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한 결과다.
경제개혁연대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소장을 맡았던 민간 경제단체다. 김 위원장은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재벌 저승사자’로 불렸고,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화 등에 대해 개혁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총이 성립되려면 의결정족수 25%이상 참석해야 하고, 정관 등을 변경하려면 참석자의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이를 상회할 경우 안건 처리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주총 참여가 기업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데, 주주들의 요구에 따라 배당을 지나치게 확대하고 분기별 실적에 몰입하면 과감한 투자를 하기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KB증권 공원배 연구원은 CNB에 “국민연금이 호실적에도 배당을 하지 않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연금이 설령 대주주(오너일가) 지분에 밀려 표결에서 지더라도 반대의견을 냈다는 자체로 투자자들에게 강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의결권전문기관에 맡기면 전문가들이 투자관리를 하는 만큼 그런 우려가 불식될 것”이라고 밝혔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