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서울 연남동 골목길, 애칭 연트럴파크에서 일본 시부야 계열의 밴드 ‘폴라리스(Polaris)’의 공연 포스터를 발견했다. 폴라리스는 일본 시부야계의 대부로 불리는 밴드 ‘피쉬만스(Fishmans)’의 베이시스트인 카시와바라 유주루를 중심으로 만든 밴드다. 피쉬만스의 보컬이자 프론트맨인 신지 사토가 사망한 후, 뮤지션들의 뮤지션으로 불리던 피쉬만스의 팬들은 폴라리스에게서 향수를 찾아왔다.
피쉬만스는 걸작 앨범 ‘공중캠프’ ‘롱 시즌’ ‘남자들의 이별’ 등으로 우주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레게와 락, 신디사이저가 적절하게 합해져 아열대 기후를 보이기도 하는 일본 특유의 나른한 산책 느낌을 주는데, 어느 순간 우주로 날아가 부유하는 듯한 이미지를 선물한다. 과다하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절제된 음의 조화가 인상적인 밴드로 기억된다.
폴라리스도 피쉬만스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폴라리스는 보다 소품적이다. 피쉬만스의 앨범들이 거대한 유니버스 플로팅 뮤직에 대한 실험이었다면, 폴라리스는 그 자장 안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산책에 대한 상상력 정도로 느껴진다. 어쨌든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피쉬만스를 좋아하던 나로써는 폴라리스의 포스터를 발견해서 기뻤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왜 뮤지션과 음악팬들은 피쉬만스와 폴라리스를 좋게 평가했을까. 그들의 음악이 새로웠으며, 자연과 함께 하는 조화로운 미래 상태의 어떤 느낌을 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것은 앞으로 음악과 인간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진지한 탐구로서의 결과물이며, 하나의 언급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피쉬만스와 폴라리스의 음악에 대한 접근이 우리나라 경제와 정치 등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대립과 진영논리 속에 갇혀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와 교육정책 등의 방향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180도로 바뀐다. 이런 변화에 대한 공포는 우리나라가 아직 분단국가라는 상황으로 인해 증폭되는 측면이 있다. 정권이 바뀌면 남북경제협력의 흐름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며, 이상적으로 보는 통일론도 변할 수 있다는 학습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민과 기업들의 현재 상황과 미래의 삶에 커다란 변동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래서 글로벌 무대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든 생각은 꼭 주식 상속이 나쁠까 하는 점이다. 자본주의 제도의 맹점 중 하나를 상속이라고 하지만,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상정한 상태에서 상속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도 지나치게 국가 중심적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외국자본의 보유 지분율이 높은 상황에서는 한국인 창업주 가족의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것도 중요하며, 그런 기업인에 대한 인센티브는 기업활동의 활성화와 경제력 향상 등 긍정적인 요소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치 기업인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처럼 인식되는 것은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해서 긍정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어 보인다. 실제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유럽 국가들 중 일부에서는 창업주 가족의 차등의결권을 보장하거나, 상속세를 낮게 하고 소득세를 높게 해 그 재원으로 복지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부자 기업인과 평범한 시민들이 큰 불만 없이 행복한 일상을 즐기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 있는 집단소송제와 높은 벌금 등은 우리에게는 없다. 또 미국 애플은 창업주인 스티븐 잡스의 자녀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이어가는 사례가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모든 기업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기업을 이어가지는 않는다. 기업의 소유권이나 경영권을 자식이나 가족에게 물려주는 경우는 충분히 많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프레임 속에서 마치 진영싸움을 하듯이 기계적으로 정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 차이에 따라 나뉘어진 정치, 사회세력이 국가와 사회의 이상적인 미래를 찾아가는 과정이리라 생각된다. 이제는 그런 플로우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문제도 많았고 잡음도 많았지만, 우리 경제와 기업이 잘한 것도 많다. 잘한 것을 무시하거나 인정해주지 않고, 잘못된 것만으로 그게 전체인 것으로 얘기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 아니고, 내가 걷고 싶은 산책길이 아니다. 평화로운 상황에서 남북이 새로운 번영을 모색하는 것, 이로부터 ‘코리아 디스카운’ 문제를 해결하고 이상적인 경제조건을 완성하는 ‘핀셋조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개혁과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으며, 조화로운 미래에 대한 탐색과 조정, 성찰의 시대가 보다 긍정적인 조건으로 우리에게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부자와 빈자, 정치와 경제, 인간과 자연, 남과 북이 조화롭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