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각장애인이 2005년 21만명에서 2017년 26만명(통계청 조사)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이 주력 사업 분야에 기반한 지원 활동에 나서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는 사물을 보다 또렷이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시각 보조 앱을 배포 중이고, LG전자는 시청각장애인용 TV를 만들어 무료로 보급했다. 최근 음성인식 도서관 서비스를 시작한 LG유플러스까지, ‘세상 읽어주기’에 나선 기업들을 CNB가 들여다봤다. (CNB=선명규 기자)
대화하듯 “기사 들려줘 책 읽어줘”
LG유플러스, 소리로 보는 서비스
삼성전자, 시각 보조 앱 무료 제공
“클로바, 소리세상에서 생활경제 들려줘”
“요청하신 콘텐츠를 재생합니다”
오늘의 소식을 켜는데 목소리면 충분했다. 네이버의 AI 플랫폼인 클로바가 탑재된 스피커에 대고 말하자 그날의 ‘부동산 뉴스’가 나왔다. 여러 항목 중 하나를 찾아내어 버튼을 누르는 과정 없이, 한 마디만으로 기사를 ‘플레이’ 시켰다.
지난해 9월 LG유플러스가 네이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함께 선보인 ‘소리세상’은 시각장애인 전용 콘텐츠를 이처럼 음성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읽어주는 것은 8개 일간 뉴스뿐 아니다. 11개 주·월간 잡지, 음성도서 3000여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공지 사항 등도 ‘플레이 리스트’에 포함됐다. 이 서비스는 모든 시각장애인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 ‘읽을거리’를 대폭 늘린 서비스를 시작했다. LG상남도서관과 개관한 ‘책 읽어 주는 도서관’이다. “클로바, LG상남도서관 시작해줘”라고 말하면 소설, 수필, 인문, 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도서를 바로 들을 수 있다. 음성명령어를 세분화해 제목, 저자, 출판사, 부제목 등으로도 검색 가능한 점이 특징. 읽다만 콘텐츠(5개)를 이어듣는 기능도 제공한다.
최대 장점은 방대한 콘텐츠, 즉 보유도서다. 도서관이 소장한 책 1만 여권 제공을 시작으로, 매달 30여권씩 1년에 총 400여권 이상의 신간도서를 추가할 계획이다. ‘책 읽어 주는 도서관’ 역시 모든 시각장애인(1~6급)에게 무상으로 제공된다.
빛을 되돌려주는 ‘릴루미노’
허진호 감독의 단편 영화 '두개의 빛: 릴루미노'에서 인수(박형식)는 3년 전부터 차츰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진동호회에서 만난 수영(한지민)은 한쪽 눈만 뿌옇게나마 볼 수 있다. 애틋한 감정을 키우던 둘은 뜻밖의 장치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안경처럼 생긴 기기를 수영에게 건넨 인수는 잘 보라며 손으로 점점 크게 하트를 그린다. “너무 먼가…”라며 실망하던 그때, 수영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다 잘 보여요.”
인수의 진심을 수영에게 보여준 것은 삼성전자의 시각 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다. 삼성 기어 VR을 착용하고 앱을 실행하면 왜곡되고 뿌옇게 보이던 사물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기술이 담겼다.
윤곽선 강조, 색 밝기·대비 조정, 색 반전, 화면생상필터 기능이 백내장, 각막혼탁 등의 질환으로 인한 고도근시나 굴절장애를 겪는 시각장애인이 글자 등을 또렷이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전맹(시력이 0으로 빛 자각을 못함)을 제외한 1~6급 시각장애인이 쓸 수 있다. 앱은 오큘러스 스토에서 무료로 다운 가능하며, 기어 VR과 호환되는 갤럭시 S7 이후 출시 기종에서 작동한다.
‘릴루미노’는 라틴어로 ‘빛을 되돌려준다’는 뜻이다. 삼성전자가 창의적인 조직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실시 중인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Creative Lab)’에 참여한 임직원 3명이 개발했다. 이들은 “비장애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삶의 즐거움을 돌려준다는 의미를 담아 과제명을 정했다”고 했다. 영화 맥락에서 보자면 수영이 받은 것은 소소한 기쁨, 그 이상의 감정이다.
LG전자, 음성·자막 강화한 TV 공급
‘화면은 32인치로 크게. 방송에서 나오는 말(자막)은 화면과 상하로 분리해 겹치지 않게 노출’
LG전자가 지난해 말까지 1만5000대를 무료 보급한 시청각장애인용 TV의 몇 가지 특징이다. 세부적으로, 사용자에 따라 자막 위치, 글씨 크기와 배경색 등을 조정할 수 있게도 했다.
모든 메뉴 사용 방법을 들려주는 등의 음성안내 기능도 강화됐다. 일부 방송 장면은 말로 묘사도 해준다. 키워서 볼 수도 있다. 화면 중 특정 부분을 간단한 리모콘 조작을 통해 최대 300%까지 확대 가능하다.
이 TV는 방송통신위원회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저소득층, 장애등급, 나이 등을 고려해 선정한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전해졌다.
한편 기술 발달과 함께 시각장애의 불편도 조금씩 덜어지는 추세지만, 더 많은 기업들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시각장애인 수가 2005년 21만9551명, 2008년 22만61명, 2011년 25만6841명, 2017년 26만2381명으로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시각장애 인구 증가세를 감안해 보다 보편적이고 접근성과 편의성이 뛰어난 기기가 개발될 필요가 있다”며 “일부 기업뿐 아니라 많은 관련 개발업체들이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