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무기가 없는 일본의 해상 초계기가 한국 군함을 위협하고, 이에 한국 군은 “또 초계기가 접근해오면 헬기를 띄워 육탄 방어를 하겠다”고 하고….
공격 무기가 없는 초계기가 공격 무기를 갖춘 군함에 위험한 저공 비행을 하는 건, 일종의 가미카제(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 항공기가 미군 군함에 떨어져내리는 육탄 공격)식 위협이랄 수 있다. 충돌의 위험을 높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 초계기가 위험한 짓에 대해 한국 국방부가 내놓은 “군함 위에 헬기를 띄워 방어하겠다”는 방식 역시, “헬기가 초계기를 방어할 수는 없다”는 국방부의 설명마따나 육탄 방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군의 육탄 위협에 한국군이 육탄 방어에 나서는 격이다.
물론 문제를 먼저 일으킨 것은 일본 측이다. 그러나 무기 없는 초계기로 군 함정에 다가가야 하는 일본군 비행사의 입장(여차하면 군함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이나, 초계기가 저공비행으로 달려드는 걸 막기 위해 헬기를 군함 위에 띄워야 하는 헬기 조종사의 입장(일본 초계기가 가미카제 식으로 달려들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을 생각한다면, 두 나라 군 수뇌부의 입장이 얼마나 인명경시적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랍 지역에서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현지 테러 단체에 의해 억류되거나 할 때의 일본이나 한국 정부-시민들의 ‘국민 하나 죽는 게 뭐 대수냐? 그러기에 누가 가라고 하지도 않은 아랍 지역에 왜 가고 그러느냐’는 식의 냉랭한 반응에 대해 한 일본인이 “일본인이나 한국인은 참으로 잔인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생각난다. 국민 개개인의 목숨 정도는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일본과 한국의 ‘상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미카제를 존경한다고? 제대로 알고나 얘기하라
가미카제로 통칭되는 항공기 육탄 돌격을 처음 개발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아시아태평양전쟁(1941~45년 일본이 아시아에서는 중국-동남아 국가들과, 그리고 태평양에서는 미국과 싸운 전쟁) 말기의 일본이다.
패색이 짙어지자 당시 일본 해군은 육탄 공격에 의한 특공 작전을 구상한다. 아래 내용은 일본의 정평있는 출판사 이와나미가 발간한 ‘일본 근현대사 시리즈’ 중 ‘아시아태평양전쟁’(요시다 유타카 저)의 211~213쪽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1944년 2월 구레(吳)해군공창 어뢰실험부에 ‘인간 어뢰’(사람이 타고 어뢰를 조정해 목표 함정에 가서 부닥치는 어뢰)의 시험 제작을 지시했다. 이는 인간 어뢰 ‘가이텐(回天)’으로 완성된다. 이어 1944년 8월에는 특공기 ‘오우카(櫻花)’의 시험 제작을 개시하여, 10월 1일에는 오우카를 장비한 제721 해군항공대를 신설했다.
오우카란 글자 그대로 벚꽃, 일본말로 사쿠라 꽃이다.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떨어져 내리는 벚꽃처럼 비행기 채 미군 함정을 향해 자살공격을 감행하라는 게 오우카의 개발 의도이고 721 해군항공대의 창설 목표다.
흔히 일본군의 가미카제 공격은, 일반 공군 전투기로 공중전을 벌이다가 여의치 않을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조종사가 육탄 공격을 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일본군은 의도적으로 ‘육탄 공격용 비행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보자.
돌진공격은, 급강하 하는 특공기 자체에 양력이 발생하여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장착한 폭탄의 관통력과 파괴력은 폭탄을 투하하는 통상의 공격법보다 상당히 작은 것이 된다. 이 때문에 1.2톤이나 되는 폭약을 두부에 장착한 ‘오우카’처럼 특공 전문기를 개발하거나, 통상의 공격기에 대형 폭탄을 탑재하기 위해 기체를 개조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아시아태평양전쟁’ 212쪽)
보통의 전투기가 군함에 떨어지는 충격력은, 발사된 폭탄이 가서 맞히는 파괴력에 비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오우카는 1.2톤이나 되는 엄청난 폭약을 비행기 선두부에 장착한 형태가 됐다. 그래서 해체된 오우카의 모습을 보면, ‘비행기에 폭탄을 실었다’기보다는 ‘폭탄 위에 조종사 좌석을 마련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다.
오우카를 조종해 육탄돌격을 감행한 일본 해군 제721 해군항공대 파일럿들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던진’ 영웅으로 묘사하는 시각들이 있지만, 요시다 유타카의 책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특공에 대해서 가장 많이 수다를 떨고, 특공을 미화해 온 것은 특공작전을 추진하여 스스로 살아남은 엘리트 장교다. (중략) 다른 대원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하여, 동요가 심한 대원을 특공요원으로부터 떼어 놓는 등의 사례도 적지 않게 된 것 같다.(‘아시아태평양전쟁’ 213쪽)
살아남은 장교들은 수다를 떨었지만 막상 제721 해군항공대에 배치된 조종사들은 “내가 왜?”라는 질문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질린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죽음을 대기하는’ 숨 막히는 분위기 때문에 중도 탈락한 조종사도 많았다는 얘기다.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워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벚꽃처럼 목숨을 던진다’는 따위의 얘기는 21세기에는 성립해서는 안 되는, 미친 20세기의 신화일 뿐이다. ‘육탄 위협’을 가하는 일본 초계기도, 이에 ‘헬기 육탄 방어’로 맞서겠다는 한국군의 작전도 무모하고 위험할 따름이다. 두 나라의 정상과 군 지휘부는 “우리는 육탄도 불사한다”고 철지난 군인 정신을 자랑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이성을 되찾아 대화로써 더 이상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여나가야 한다.
가미카제 특공작전을 미화하는 영화(2013년 일본 영화 ‘영원의 제로’)따위나 만들고, 이 영화에 일본인들이 눈물을 흘리고, 또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비장미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가미카제 조종사를 존경한다”는 따위의 발언을 못하도록, 독일의 ‘나치 찬양 처벌법’ 수준으로 엄단해야 한다.
그야말로 이제는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워야 할 때’이다. 철 지난 전쟁 놀음에 집착하려 하는 일본의 아베 총리 등 극우파들, 그리고 한국 안의 “평양으로 탱크를” 따위나 외치는 철없는 작자들에게 이 말을 반복해서 들려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