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대기업들이 신년사를 통해 던진 화두는 ‘혁신과 도전’이었다. 미중 무역 분쟁과 신흥국 금융불안, 환율·금리·국제유가의 불확실성, 내수침체 등 나라 안팎으로 위기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변화를 통해 위기를 정면 돌파하자는 것. 특히 올해는 세계경제의 중심축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마저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재계는 ‘생존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이에 CNB는 기업·산업별로 신년사에 담긴 의미를 분석해 연재한다. 네 번째는 증권업계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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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주식시장, 최악의 겨울
IB·글로벌·디지털…신년사 키워드
일부 증권사는 신년메시지 보류
새해 증권업계는 ‘투자은행(IB)’과 ‘글로벌’을 화두로 꺼내들었다.
증권업계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 미중 무역분쟁, 기업실적 악화 등의 여파로 주식시장이 침체되면서 실적이 크게 악화된 상황이다.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 수익이 작아지면서 전체 순이익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도 코스피가 반등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분쟁이 계속되는데다, 기업의 실적이 좋지 않다는 실물지표가 조금씩 발표되고 있기 때문. 중국은 우리나라 전체 무역규모의 25%를 차지하고 있는데, 중국과 미국 간의 무역분쟁으로 중국의 미국 수출이 줄어들면, 중국에 원자재를 수출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 증권업계 대표들은 신년사를 통해 사업 다각화에 방점을 찍었다. 기존 주식 중개 업무에서 벗어나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증자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는 IB 사업을 확대해 위기를 극복하자는 얘기다. 글로벌 영토 확장도 증권사의 위기극복 노력 중 하나로 풀이된다.
자기자본 기준 증권업계 1위인 미래에셋대우 최현만 수석부회장은 “IB 상품의 경쟁력이 자산관리(WM) 채널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 것”이라며 “자기자본 8조원, 해외법인 자기자본 3조원을 갖춘 투자전문회사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부회장은 글로벌, 투자자문, 연금, 디지털이라는 4개의 큰 축을 토대로 경영해왔는데, 이를 넘어서 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IB와 트레이딩 직원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데이터 기법을 도입하고, WM 직원이 시장예측 기법을 활용하는 등 융합비즈니스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본 셈이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는 디지털금융과 해외법인을 통한 글로벌 확장을 새해 목표로 제시했다. 초대형 IB 증권사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IT기술을 보유한 증권사의 대두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디지털 금융 지원체계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생존수단”이라며 “홍콩 현지법인은 본사와의 협업을 통해 아시아 최고의 증권사로 성장할 수 있는 해외 토대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수익사업 다각화’ 최대 화두
‘IB 대부’로 불리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는 금융시장이 중요한 변곡점에 와 있으며, 올해도 영업환경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고객가치를 강화하면서, 디지털 변화에 주력해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대표는 “다양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 분석체계를 갖추면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며 “디지털을 활용한 차별화된 고객경험과 이를 뒷받침하는 IT 인프라가 경쟁사와 차이를 이루는 핵심요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KB증권은 신규 비즈 육성, 디지털 혁신을 새해 목표로 꼽았다. 박정림, 김성현 공동대표는 “기업과 관련된 IB영업의 성과를 확대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S&T(Sales & Trading)부문의 구조화 신상품 개발, 발행어음 사업 추진 등 신규사업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디지털혁신본부가 전사의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를 정립하고, 데이터 분석을 통한 실질적인 비즈니스 활용과 영업점 업무의 디지털 창구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대표는 “IB 사업영역을 확장해 자산운용 수익률을 제고할 것”이라며 “전통사업의 성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기술 등 융복합으로 비즈니스를 고도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통적인 사업영역인 브로커리지 부문은 플랫폼 혁신을 통해 새롭게 재정비하고, 홀세일(기관영업)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얘기다.
미래 먹을거리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사업 수익성 향상, 조직의 디지털화 가속, 신한금융그룹과의 협업체계 강화도 강조했다.
KB증권 이남석 연구원은 CNB에 “올해 경기도 여전히 증권사에 우호적이지 못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증권업계에서도 IB와 해외사업 확대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계속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공매도 사태로 어려움을 겪었던 삼성증권과 메리츠종금증권, 하나금융투자, 하이투자증권, SK증권 등은 별도의 대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각 회사별로 처한 상황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요란한 신년사 대신에 조용히 내실을 다지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