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편집국장) 경기도 판교 지역에서 시작된 ‘10년공공임대 사태’가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다.
10년공공임대는 10년간 월임대료를 내고 거주한 뒤 분양전환 되는 제도인데, 이 기간 동안 판교의 집값이 3배 가까이 폭등해 세입자들이 쫓겨날 처지가 되면서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와 청원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난 18일 분양전환 가격이 5억원을 넘으면 초과분에 대해 최장 10년간 분할 납부토록 하고, 장기저리 대출을 지원하며, 분양전환을 포기하는 입주자들은 자격조건에 따라 임대기간을 연장해주는 내용의 지원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분양금액은 ‘감정평가액을 고수하겠다’고 밝혀 세입자들의 원성이 이전보다 오히려 커진 상황이다. 감정평가액은 통상 시세의 90% 안팎 수준으로 세입자들이 원해온 ‘분양가 상한제’나 건설원가에 적정이윤을 가산한 ‘확정분양가’ 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 대책이 발표된 직후인 22일, 전국의 10년공임 세입자 수천여명은 광화문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며 정부정책을 규탄했다.
국토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분양가를 낮춰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로 형평성 문제를 들고 있다. 당초 사업자(LH)와 임차인 간 계약체결 시 감정평가액으로 분양전환하기로 한 것을 이제 와서 법을 고쳐 적용하게 되면 앞서 분양전환 한 임차인들과의 균등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
민간 보다 비싼 LH, 그래놓고 무슨 형평성?
정말 그럴까? CNB는 지난 14일 단독보도([단독] LH의 이상한 계약서, 10년공공임대 사태 기폭제 되나)를 통해 기존에 분양전환 된 10년공임 단지들의 분양가를 따져본 바 있다.
국토부는 앞서 분양전환 한 세대들이 감정평가액으로 분양 받았기 때문에, 판교 세입자들도 감정평가액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공공주택특별법 시행규칙 제26조에는 “10년공공임대의 분양전환가격은 감정평가금액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부영건설 등 민간사업자들과 인천도시공사, 김포도시공사 등 일부 공기업은 이 시행규칙에 의거해 감정평가액보다 10~20%가량 낮은 선에서 분양을 진행했다. 세입자 단체인 전국LH중소형공공임대아파트연합회에 따르면, 10년공임제도가 도입된 이래 최근까지 약 2만 세대가 감정평가액보다 낮은 분양가를 적용받았다.
이런 사실이 있음에도 국토부가 ‘감정평가액 이하’가 아닌 ‘감정평가액’을 고집하며 형평성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이에 대해 LH 측은 지방과 수도권의 시장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익명의 LH관계자는 “지금까지 낮은 분양가를 적용받은 단지들은 대부분 미분양이 예상될 정도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지역이라 사업자들이 가격을 조정해준 것이며, 판교는 시장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이 말은 부동산이 폭등한 인기지역은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고, 미분양이 예상되는 곳은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물론 이는 LH의 공식입장은 아니지만, 서민의 주거안정을 목표로 하는 국내 최대 주택공기업이 할 소리는 아닌 듯하다.
이런 인식은 국토부의 이번 대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국토부는 “전용 85㎡ 이하 임차세대가 우선분양전환권을 포기하면 4년간 임대기간을 연장해 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공주택특별법 제50조에는 “분양전환을 목적으로 건설한 공공임대주택은 분양전환 당시까지 거주한 임차인에게 우선 분양전환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국민의 안정적인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다.
따라서 국토부가 ‘4년 연장’의 조건으로 ‘우선분양전환권 포기’를 들고 나온 것은 법 취지에 위배될 뿐 아니라, 4년 뒤 높은 가격에 일반에 분양해 수익을 올리겠다는 심산이 깔려있다. 결국 공공성보다 시장논리에 충실하겠다는 얘기다.
기획부동산 논리 버려야
CNB는 그간 수차례에 걸려 이 문제를 기획취재, 보도해왔다. 우리가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시장논리와 공공성이 정면충돌한 첫 사례인 데다,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100만호 공공주택 보급사업’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공주택정책의 근본 틀을 다시 세워야 한다.
분양전환제도가 공기업의 부채 탕감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수분양자들에게 막대한 시세차익을 안겨주거나, 반대로 거리로 내쫓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해 초기 입주 때부터 ‘내가 추후에 얼마에 분양받을 수 있다’는 상한액을 명시하고, 임대기간 동안 분양가를 분할납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분양 후 일정기간 전매를 제한하는 등 여러 공적 수단을 동원해 ‘고분양가’와 ‘로또분양’ 모두를 잡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인기지역이니 어쩔 수 없다” “분양포기하면 얼마 더 살게 해줄게” 등 부동산 업자들과 다름없는 천박한 생각으로는 주거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힘들다. 최근 발표된 3기신도시의 미래가 판교처럼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CNB=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