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 간 무역분쟁과 신흥국 금융불안, 환율·금리·국제유가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내년 경기 전망이 밝지 않다. 국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은 한국경제 및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낮춰 잡고 있다. 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내년 국내경제는 수출과 투자, 소비가 동시에 감소하는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CNB는 기업·산업별 실적 전망을 연재한다. 이번 편은 ‘유가급락’이라는 악재가 발생한 정유업계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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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급락에 정유 빅4 실적↓
비쌀 때 사둔 기름, 손실폭 커져
길게 보면 수입단가 내려가 호재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면서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빅4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올 3분기까지 호실적을 기록했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 합은 5조7095억원으로 사상최대인 영업이익 연 8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4분기 터진 악재가 발목을 잡은 상황이 됐다.
10일 종가 기준 WTI(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는 배럴당 51달러, 두바이유는 59.01달러, 브렌트유는 59.97달러로 60달러 선이 무너졌다. 10월 초 WTI 76.41달러, 두바이유 84.12달러, 브렌트유 86.29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기름값이 두 달 사이에 30% 정도 떨어졌다.
문제는 통상 2~3개월 전에 구입한 원유를 가공해 판매하는 정유사의 사업 구조상 국제유가의 급격한 하락은 재고평가손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 이를 정제해 만들어지는 휘발유, 경유 등의 판매금액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비싸게 산 원자재를 통해 만든 상품을 손해를 보면서 싸게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증권업계는 4분기 정유4사의 재고평가손실액이 1조원에 달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기 시작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4분기 재고손실 발생에다가, 정제마진까지 직전 분기대비 2달러 하락해 실적악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내년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국제유가는 상승한다’, ‘원유수요는 증가한다’, ‘정제마진은 상승한다’라는 명제는 과거가 돼 버렸다”며 “2019년부터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정유4사의 이익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내년 하향안정세 유지 ‘긍정적’
반면 정유4사 실적에 대한 좋은 전망도 존재한다. 유가하락이 눈앞의 악재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하락안정세가 수익을 올리는데 더 낫기 때문이다.
유가가 상승하면 비싼 가격에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해야 한다. 정제마진이 높아지더라도 수입단가 상승은 부담을 줄 수 있다.
통상 정유회사 수익성의 척도가 되는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4~5달러선에서 손익분기점이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유회사로서는 안정된 가격에 원유를 수입해 일정한 정제마진을 남기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다.
따라서 내년 국제유가가 큰 등락 없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지난 7일 OPEC(석유수출국기구) 12개국과 비OPEC 10개국이 내년 6월30일까지 120만 배럴 감산을 합의하면서 국제유가가 반등하고 있다. 다만 더 이상 유가상승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기조가 여전하기 때문에 그 상승폭과 속도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유회사로서는 안정된 가격에 원유를 수입에 일정한 정제마진을 남길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다는 얘기다. 또 장기적으로는 제품가격 하락에 따른 소비 증가로 정제마진이 좋은 흐름을 보이게 될 가능성도 높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한동안 국제유가가 급등락하면서 안정적인 펀더멘탈을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점차 하향안정화 되고 있는 추세”라며 “일시적으로 수익이 늘고 줄고 하는데 연연하기보다는 예측가능한 재무구조가 형성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석유제품의 순수출량이 1973년 통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원유 생산 가속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OPEC이 감산을 한다고 해도 유가가 박스권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비정유사업 실적 ‘청신호’
비(非)정유부문 사업이 솔솔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3분기 정유4사는 ‘파라자일렌(PX)’ 강세로 많은 이익을 봤다. PX는 PET, 폴리에스터 등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석유화학제품으로 올 1월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하면서 수요가 늘며 가격이 올랐다. PX 수요는 당분간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PX는 국내 최대, 세계 6위 규모의 연간 260만톤의 SK이노베이션을 필두로 에쓰오일 185만톤, GS칼텍스 135만톤, 현대오일뱅크 118만톤을 생산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CNB에 “정유사업에 비해 돌발 변수가 적은 비정유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 성과를 내고 있다”며 “사업다각화로 인해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