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규기자 | 2018.11.29 10:57:40
마트 매대를 박차고 나온 ‘국민 간식’의 변신은 무죄를 넘어 환골탈태다. 올해 전문 매장을 연 오리온 초코파이 하우스는 고급화 전략, 동서식품 맥심플랜트는 ‘내 입에 딱 맞는 커피’ 서비스를 앞세워 신규 소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맛에 차별을 둔 것은 물론, 매장 분위기에도 공을 들여 젊은 층에게 특히 인기다. 출시 약 40년 만에 회사 이름을 걸고 단독 매장을 낸 두 먹거리에 2030이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CNB=선명규 기자)
장수제품들, 전문 매장에서 재탄생
‘올드’한 이미지 멋고 2030과 호흡
입맛·감성·분위기…고급화로 승부수
“SNS 보고 왔어요. 레드벨벳이 어떤 거예요?”
지난 26일 찾은 서울 강남구 초코파이 하우스 도곡 본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갈색 앞치마를 두르고 빨간 모자를 쓴 점원이 반갑게 맞았다. 매장 내 유리창 뒤에서는 하얀 모자와 마스크를 쓴 ‘숙련공’ 네댓이 초코파이를 제조하고 있었다. 공간 대부분을 차지한 은색 설비 사이에서 청결이 강조된 복장을 한 채 세심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대량생산을 위한 ‘라인’보다는 느리지만 하나씩 완성해가는 실험실에 가까워보였다. 이곳에서는 초코파이 제조부터 판매까지 논스톱으로 이뤄진다.
정성스레 완성된 초코파이는 인절미 등 맛에 따라 다른 모양의 포장지에 담겨 진열됐다. 점원으로부터 가장 인기 있다는 오리지널과 레드벨벳을 추천받아 포장지를 뜯어봤다.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 보다 조금 컸다. 맛은 카카오 버터를 써서 적당히 달았다. 겉면의 초코가 바스라지면서 안을 받치고 있던 ‘스노우 마시멜로’가 입안을 폭신하게 감돌았다. “프리미엄 재료로 기존 제품을 재해석해 만들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 프리미엄 디저트 매장을 지향하는 이곳서 판매하는 초코파이 개당 가격은 2500원으로 일반 제품보다 약 5배 비싸다.
초코파이 하우스는 특히 2~30대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매장 관계자에 따르면 SNS를 보고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젊은 손님들도 많다고 한다. 실제 인스타그램에 ‘초코파이 하우스’를 검색하면 6000개 이상의 포스팅이 쏟아진다. “포장지 완전 귀여움”이라며 사진을 올리거나, “제가 한 번 먹어봤습니다”라며 맛을 소개하는 등의 ‘평론가적’ 후기도 많다.
지난해 12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1호점을 연 초코파이 하우스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1년 새 서울, 대구, 광주 등에서 13곳이 오픈했다. 단독 매장부터 백화점 입점 등 다양한 형태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 명동역 ‘라인프렌즈플래그십 스토어’ 안에 매장을 열며, 외국인 관광객 잡기에도 나섰다. 해외서 인지도가 높은 라인프렌즈의 인기 캐릭터 ‘브라운’과 ‘코니’를 활용한 ‘디저트 초코파이 특별 패키지’를 내세워 홍보하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CNB에 “초코파이 하우스의 트렌디한 이미지를 강화해 젊은 층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 주문하자 어울리는 음악 추천
기다란 봉지의 절취선을 비틀어 뜯어낸다. 컵에 내용물을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뒤 휘휘 저어주면 끝. ‘커피믹스’의 오랜 인기 비결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이런 편리성도 한 몫 할 것이다.
지난 4월 동서식품이 서울 이태원로에 오픈한 브랜드 체험공간 맥심플랜트는 이와 상반되는 ‘번거로움’으로 요즘 힙스터(트렌드에 강한 사람) 사이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
비결은 각자의 취향 따라 완성해주는 공감각 커피(synesthesia coffee). 지난 26일, 3층 입구 옆에 놓인 태블릿PC의 안내에 따라 ‘나만의 커피’를 제조해 봤다. 먼저 스타트를 치자 향미, 산미의 정도, 원하는 로스팅이란 항목이 떴다. 여기서 취향에 따라 3~5개의 보기 중 하나씩을 고른 뒤 완료를 눌렀다.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블렌드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추천받은 커피는 'Vintage Wine'. 화면에 뜬 이미지와 똑같은 카드를 선반에서 뽑아 직원에게 전달하자 주문이 완료됐다.
음료와 함께 다시 돌려받은 카드 뒷면을 자세히 봤다. 사용된 원두에 대한 소개와 함께 같이 들으면 좋을 ‘추천곡’도 쓰여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시고, 끝 맛은 묵직한 이 커피에는 라나 델 레이의 ‘summer wine’이 어울린다는 설명이었다. 바로 인터넷에 검색해 들어봤다. 조근조근 읊조리는 창법이 커피의 산뜻한 풍미와 제법 잘 맞았다.
매장 구성도 ‘취향저격’을 거든다. 지하 2층에 있는 로스팅룸을 통해서는 맥심 커피 전문가들이 원두의 맛과 향 등을 연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9개의 원통형 저장소에서 로스터로 원두가 자동 투입되는 장면도 연출된다. 지하 1층은 라이브러리, 1층은 카페, 2층은 문화공간으로 꾸며 카페를 찾는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다.
근처에 작업실을 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디자이너 윤재웅 씨는 “‘힙’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이태원에서는 미팅을 하더라도 색다른 장소에서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며 “이곳은 인테리어나 메뉴 구성이 독특해 외부에서 온 손님들도 새로워한다”고 말했다.
‘친숙함’을 무기로 완벽 변신
단독 매장을 꾸린 ‘장수 간식’은 초코파이와 맥심뿐만 아니다.
롯데제과도 지난달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디저트카페 ‘몽쉘 생크림 케이크숍’을 오픈했다. 이 회사 대표 제품 몽쉘을 활용해 파티셰가 매장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테이크아웃 전용숍. 초코파이(1974년)나 맥심(1980년)보단 어리지만 몽쉘 역시 1991년 세상에 나와 올해 28살이 됐다.
이런 식음료 업체들의 행보에 대해 업계에서는 ‘올드’한 이미지를 벗기 위한 노력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오래된 만큼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한 브랜드들이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전달하기 위해 전문 매장을 여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름이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신선하면서도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