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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삼성·LG·현대차·SK…평양 갔다 온 기업들, 어떤 액션 취할까

“역풍 맞을라” 속으로 주판알 튕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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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8.10.04 09:03:28

남북, 북미 간 관계가 빠르게 개선되면서 최근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을 다녀온 기업들이 대북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설지 주목된다. 과거 남북경협은 개성공단 사례에서 보듯 주로 중소기업 위주였다. 하지만 이번에 평양을 다녀온 경제인들 대부분이 대기업 총수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 경제지도를 어떻게 그릴까. (CNB=도기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등 기업인들이 지난달 19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북한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4대그룹, 北경제개발 논의 ‘속도’
철도·통신·광물…SOC사업 ‘눈독’
신중한 타산 분석 ‘정중동 모드’

2002년 북측이 개성공업지구법을 공포하면서 본격 시작된 남북경협은 주로 중소기업들의 참여로 이뤄져 왔다. 2004년 6월 18개 한국기업이 개성공단에 첫 입주한 것을 시작으로 2016년 2월 남북관계 경색으로 공단이 폐쇄될 때까지 124개 기업이 북한과 협력했다. 

이중 신원, 좋은사람들, 인디에프 등 몇 개 상장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중소·영세기업이다. 대기업은 금강산 관광 사업을 주도했던 현대그룹(현대아산·현대건설 등)이 유일했다. 삼성과 LG가 북한과 합작해 브라운관TV를 일부 생산하기도 했지만 기업 규모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밑그림을 크게 그리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올해 세 번 만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혔다. 3대 벨트(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 DMZ 환경·관광벨트)를 구축해 한반도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중국·러시아와 연계한 신(新)북방경제를 추진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달 평양정상회담에서는 ‘4.27 판문점 선언’을 구체화한 경제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정상화, 동서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 등이 평양공동선언에 담겼고, 이와 별도로 합의된 ‘남북군사합의서’에는 서해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 설정이 포함됐다.  

북한은 북한대로 총 27곳(중앙급 5곳·지방급 22곳)에서 경제특구를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선군정치’에서 ‘경제건설’로 기본노선을 수정한 만큼, UN과 미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하면 중국·베트남처럼 개방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이런 흐름에 편승해 평양정상회담 때 역대 정상회담 중 가장 많은 17명의 경제인을 특별수행원으로 참석시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 4대 그룹 대표들을 비롯,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신한용 개성공단기업 협회장, 이동걸 한국산업은행 총재,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등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이 문 대통령과 동행했다.  

재계는 북한 내 도로·항만·통신 등 기반시설(SOC) 건설, 광물자원 공동개발,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을 포함한 경제특구 개발, 2007년 10·4선언에 기반한 각종 교류 확대 등을 기대하고 있다. 

▲고 정몽헌 회장 추모식을 위해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8월 3일 강원 고성군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남북경협 터줏대감 현대

하지만 겉으로는 조심스런 모습이다. 아직 대북제재가 해제되지 않았기에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만 과거 대북사업의 터줏대감이었던 범(凡) 현대가(家)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적극적이다.
 
최초의 남북경협은 1998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시작됐다. 현대그룹이 2000년 ‘왕자의 난’을 거치며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해상, 현대백화점그룹 등으로 분리되긴 했지만, 여전히 대북사업의 기득권은 현대가 기업들이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현대그룹에 속해 있는 현대아산은 대북사업 재개를 강하게 희망하며 북한 진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현대아산은 과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 등을 도맡은 ‘경협의 상징’이었다. 2000년 8월 북한 노동당 외곽기구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개성공업지구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 체결 등을 통해 개성공단 개발 사업권과 북한 7대 SOC사업 개발 독점권을 갖고 있다. 

현대그룹은 향후 북한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 대기업과 공기업, 국제기금 등이 참여하는 ‘글로벌 컨소시엄’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달 20일 북한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직후 “남북경협의 상징으로 금강산관광이 여전히 기억되고, 남과 북이 모두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에 사업자로서 정말 감사했다”며 “현대그룹은 남북경협의 개척자로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담담한 마음으로 남북경제협력에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같은 현대가 기업인 현대차그룹도 여러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최근 현대차그룹 2인자에 오른 현대가 3세인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정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장남이자 정주영 창업주의 손자다.   

그는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관세 부과(최대 25%)를 고려하겠다고 밝히자,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단 참여를 포기하고 현지로 건너가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만나 관세 면제를 설득하는 등 적극적인 민간외교를 펼쳐 주목 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런 노력에 화답하듯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자동차 관세 면제를 요구했고, 이에 트럼프는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처럼 현대차 입장에서는 한·미 정부와 관세 문제를 놓고 긴밀히 공조해야만 하는 만큼, 우리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남북경협 논의에도 적극 나설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북한 입장에서도 철도·건설 등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이 분야 최대기업인 현대차의 참여가 절실하다. 현대차그룹에 속해 있는 현대제철의 경우 국내에서 유일하게 철도레일을 생산하고 있으며, 현대로템은 철도차량을 제작·보급하는 기업이다. 

▲(오른쪽부터) 최태원 SK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이 리용남 북한 내각부총리와 면담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SK·포스코, 北에서 ‘금맥’ 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남북경협의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다. 그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방북한 경험이 있다. 재계에서는 대북제재가 해제되면 전력·통신·에너지 등 인프라 구축에 SK텔레콤(통신망 구축), SK건설(도로항만 건설), SK하이닉스(생산기지 건설), SK이노베이션(천연자원 개발)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 회장은 북한을 다녀온 뒤 “양묘장과 학교 등 여러 가지를 봤는데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어떤 협력을 통해 한반도가 발전될 수 있을지 고민해보겠다”며 조만간 구체적인 투자안이 나올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최 회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기업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작년 연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랍에미리트(UAE)에 특사 자격으로 방문하기 직전에 임 실장을 만나 각종 경제 현안을 논의했으며, 연초에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구본준 LG 부회장과 함께 청와대 신년인사회에 재계 대표격으로 참석했다

또 지난해 7월 청와대 주최 기업인 간담회에서는 문 대통령에게 사회적기업인 ‘전주빵카페’ 사례를 들었는데, 문 대통령이 이에 호응하며 “지원 법안을 정부가 적극 추진하겠다”고 즉석에서 답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상생·사람중심’을 국정철학으로 갖고 있는 문 대통령과 ‘공유경제(사회적기업)’를 경영 모토로 삼고 있는 최 회장이 서로 간에 코드가 맞다는 해석이 나온다.
   

▲산림사업은 유엔의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1910년(왼쪽)과 2014년(오른쪽)의 임야분포도. 100여년 전에 비해 북한 지역의 산림이 크게 황폐화됐다. (사진=연합뉴스)

최 회장은 10년 안에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시장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장기 비전을 갖고 있다. SK는 매년 100여개 안팎의 사회적기업을 선정해 ‘사회성과 인센티브’ 형태로 50억원 가량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SK에너지의 전국 주유소 3600여곳을 물류기지로 활용해 청년들의 창업 지원, 실버 택배 등 일자리를 창출하는 플랜을 CJ대한통운과 함께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로 볼 때, 북한과도 어떤 식으로든 경제협력이 이뤄지지 않겠냐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당장은 북한의 산림녹화사업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방북 경제인들의 첫 현장방문 장소가 양묘장이었고, 산림사업은 유엔의 대북제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에서다. 화두에 오른 기업은  SK임업(대표이사 심우용)이다. 현재 이 회사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 경영림을 관리하고 있다. 

SK 출신의 한 재계관계자는 CNB에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인재보국’, ‘산림보국’이라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었다”며 “SK계열사들의 사회공헌이 주로 나무심기에 쏠려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으며, 이런 점에서 산림이 황폐화된 북한을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포스코도 북한 경제개발 참여에 적극적인 기업 중 하나다. 지난달 방북 길에 올랐던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북한을 다녀온 뒤 임원회의에서 “포스코뿐 아니라 우리 철강업계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며 “현재 가동 중인 태스크포스(TF)에서 남북미 관계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경협 재개에 대비하자”고 주문했다. 

포스코는 현재 포스코대우·포스코건설·포스코켐텍 등이 참여한 남북경협TF를 가동 중이다. 북한에는 포스코가 관심을 갖고 있는 마그네사이트, 흑연 등의 광물이 다수 매장돼 있다. 

▲(왼쪽부터)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0일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모난 돌 정 맞을라” 반면교사 된 현대그룹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겉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TF를 꾸려 대북제재 해제 이후를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에서는 삼성물산이 최근 임원 1명과 간부급 인원 3명 등 총 4명으로 구성된 남북경협TF를 구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주력 스마트폰인 갤럭시 시리즈의 북한 보급이 점쳐지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LG그룹은 LG상사를 중심으로 한 자원 개발과 인프라 구축 등이 예측된다. LG상사는 2000년대 초 대북 임가공사업 상담 센터를 운영하는 등 중소기업들의 대북진출 창구역할을 한 바 있다. LG유플러스는 북한 내 통신 네트워크 사업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고 구본무 회장의 타계로 지난 6월 취임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달 방북을 통해 경영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룹 차원의 남북경협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보수정권으로 바뀌면서 남북경협에서 큰 손실을 본 현대그룹의 과거 사례가 기업들에게 각인된 만큼, 대부분 기업들은 직접적인 행동은 자제하고 있다.  

지난달 방북한 기업의 한 관계자는 CNB에 “평양을 다녀왔다고 해서 북한 경제개발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며 “아직 대북제재가 해제되지 않았고 남북교류를 곱지 않게 보는 일부 국내여론도 고려해야한다. 너무 앞서가다간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거나 정권이 바뀔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북미, 남북관계의 흐름을 분석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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