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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삼성·현대차·LG…‘남북평화시대’ 시험대 오른 젊은 회장들

대전환 맞은 한반도…3·4세 재벌총수들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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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8.10.01 09:07:29

▲(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구광모 LG 회장이 지난달 19일 평양 대동강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은 최태원 SK 회장이다. 이들에게서 권위적인 재벌가의 이미지를 찾기 힘들다. (사진=연합뉴스)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주요그룹의 재벌 3~4세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동행하면서 이들의 추후 행보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들은 언론 노출을 꺼렸던 부모 세대와 달리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며, 직접 현장에서 경영 현안을 챙기고 직원들과의 소통채널을 열어두는 등 과감한 행보를 펼치고 있다. CNB가 젊은 총수들의 앞날을 예측해봤다. (CNB=도기천 기자)

이재용, 한반도 경제지도 핵심인물로 부상
구광모·정의선, 트럼프發 무역전쟁 ‘시험대’  
개방·소탈·과감…노출 꺼렸던 前세대와 달라  

지난달 18~20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눈길을 끈 대목 중 하나는 4대그룹의 젊은 수장들이 수행원 없이 문재인 대통령과 동행했다는 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광모 LG 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투병 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고 있는데, 삼성 총수로는 첫 북한 방문이었다. 

고 구본무 회장의 타계로 지난 6월 취임한 구 회장은 올해 40세로 재계 총수 중 가장 젊다. 그동안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방북을 공식 무대 데뷔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자동차 관세 문제로 미국을 방문하느라 평양 길에 동행하지 못했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 또한 최근 승진해 그룹의 2인자가 된 3세 기업인이다. 48세의 정 수석부회장은 2009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이달 초 9년 만에 전 계열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이들은 한반도가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이 시기에 어떤 역할을 할까?

▲(왼쪽 두번째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회장, 최태원 SK회장이 18일 오후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 참석해 있다. 맨 왼쪽은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사진=연합뉴스)


삼성 이재용, 전통적 재벌에서 탈피

우선 삼성의 경우, 밖으로는 북한을 포함한 해외시장 확대를, 안으로는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경영투명화에 주력하고 있다. 

아직 대북사업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이 부회장은 지난달 18일 리용남 북한 내각부총리와의 면담 자리에서 “삼성의 기본경영 철학인 ‘기술중심 인재중심’이 북한이 추구하는 ‘과학중심 인재중심’과 닮았다”며 호감을 나타내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매출액만 239조원이었던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남북경협에 나설 경우, 한반도 경제지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에 거는 정부·재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북측도 삼성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리 내각부총리는 이 부회장에게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유명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며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과거 북한에서 TV를 만든 경험이 있다. 2000년부터 브라운관 TV를 생산해오다 2010년 즈음 중단 했는데 당시 생산량이 연간 2~3만대였다. 평양의 ‘대동강 TV’에 부품을 공급해 조립한 후 이를 다시 국내로 들여오는 방식이었다.

이 부회장은 평양을 다녀오자마자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주요 경영진에게 방북 성과를 설명하고 남북경협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사업을 다변화해야 하는 과제도 급하다. 삼성전자의 그룹 내 영업이익 비중이 여전히 90%를 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반도체 사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큰 상황은 반드시 극복해야할 숙제다. ‘반도체 굴기(屈起)’를 선언한 중국 정부를 비롯, 퀄컴과 브로드컴,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기업들의 추격세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  

이에 삼성은 인공지능(AI), 전장(전자장비), 바이오 등을 내세워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인공지능 관련 현안을 직접 점검하기 위해 조만간 캐나다 출장길에 오를 예정이다. 

안으로는 경영투명성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기와 삼성화재는 지난달 20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보유중인 삼성물산 주식을 전량 매각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마지막 남은 순환출자 고리(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전자·삼성전기 간 상호출자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순환출자란 한 그룹 안에서 계열사들끼리 돌려가며 출자규모를 늘리는 것을 이른다. A계열사가 B계열사에, B계열사가 C계열사, C계열사는 다시 A계열사에 출자하는 식으로 상호 지배하는 구조다. 대부분 재벌기업들은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순환출자를 선호해 왔다.    

하지만 삼성은 계열사 간 출자 고리를 완전히 끊어 각자도생(各自圖生) 체제가 됐다. 이는 이 부회장에게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재벌사>의 저자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는 CNB에 “삼성은 오너일가가 지주사와 순환출자를 활용해 그룹을 지배하는 전통적인 재벌 방식에서 벗어났다”며 “이 부회장은 중심부가 사라진 상황에서 계열사들 간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힘든 과제를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재용·구광모·정의선 등 4대그룹의 젊은 총수들은 남북경협과 미국의 보호무역 등 국가경제와 직결된 과제를 안고 있다. 울산 현대자동차 수출선적부두의 지난 3월 모습. (사진=연합뉴스)


LG 구광모, 4차산업혁명에 사활 

구광모 LG 회장은 ICT분야에 그룹의 사활을 걸고 있다. 그는 LG그룹의 3세 경영인이었던 구본무 회장이 갑작스레 타계하면서 지난 6월말 상무에서 총수로 올라섰다.  

그는 회장 취임 후 첫 현장 행보로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택했는데 이는 4차산업을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졔계에서는 이미 LG전자, LG유플러스, LG CNS 등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5G 등에 치중하고 있는 만큼, 향후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사업을 확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 내부에서는 11월 말로 예정된 임원 인사에서 4차산업혁명에 방점을 둔 대대적인 재배치와 승진이 이뤄질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구 회장이 IT전문가 출신이라는 점은 이런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는 미국 로체스터 공대에서 IT 분야를 전공했으며,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밟다가 인근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으로 옮겨 실무를 익혔다. 

그룹 차원에서 밀어붙이고 있는 전장사업도 주목된다. LG전자는 지난 4월 오스트리아의 차량용 헤드램프 업체 ZKW를 1조4440억원에 인수했으며, 네덜란드의 히어, 미국의 헬라 등 글로벌 업체들과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안팎으로 여건이 녹록치 않다. 미국의 보호무역 장벽과 원·달러환율 급등, 중국·일본 기업과의 경쟁 심화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져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취임이후 조용히 움직여왔던 그가 적극적으로 방북에 나선 것을 두고 정부와의 공조를 통해 무역 문제를 풀겠다는 포석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미국이 수입승용차에 대한 관세를 높이려 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현대자동차는 물론이고 자동차 전장사업에 뛰어든 LG전자가 함께 불똥을 맞게 된다”며 “구 회장은 무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정부와 협력하며 외교 수완을 발휘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승진해 그룹 경영의 전면에 등장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 현대家 3세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 정의선, 관세장벽 뚫을까

최근 현대차그룹 2인자에 오른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도 주목받는 인물이다. 

현대그룹은 2000년 3월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경영권 승계 다툼으로 인해 여러 갈래로 나눠졌다.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장남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 등 10개사를 이끌고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했으며, 나머지는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해상, 현대백화점그룹 등으로 분리됐다. 정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장남이자 정주영 창업주의 손자다.  

이재용 부회장과 구광모 회장이 수십년 간 계속돼온 부친 시대를 마감하고 경영 일선에 등장한데 비해, 정 부회장은 경우가 조금 다르다. 

그는 2009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다른 직함은 맡아오지 않다가, 최근 현대차는 물론 기아차와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현대차증권, 현대라이프, 현대글로비스, 현대로템, 이노션, 해비치호텔&리조트 등 전 계열사 경영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활동 반경이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이긴 하지만 정몽구 회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에서, 부친을 보좌하며 그룹의 굵직한 사안들을 점검·관리하는 포지션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부회장은 평소 자율주행차와 모빌리티(이동성) 서비스 쪽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CES에서 인텔, 모빌아이, 엔비디아 등 자율주행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잇달아 만났고 최근 인도에서 개최된 ‘무브(MOVE)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는 기조연설자로 나서 현대차를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그룹 내에서 정 부회장의 입지가 강화된 만큼 미래차 관련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당장 그에게 닥친 첫 번째 미션은 국가경제와 직결된 매머드급 사안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분쟁 와중에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최대 25%)를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정 부회장은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단 참여를 포기하고 지난달 미국으로 가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조니 아이잭스 조지아주 상원의원 등을 만나 관세 면제를 요청했다. 

다행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관세 면제 요구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고 밝힌 상태다. 

현대차 사정에 밝은 한 재계관계자는 CNB에 “수출 중심의 자동차 산업은 수십만 명의 생존권이 달린 한국경제 최후의 보루”라며 “정몽구 회장이 아들(정 부회장)에게 이 문제를 맡긴 것은 그룹의 미래를 맡긴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만큼 정 부회장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한국 재계는 이재용·구광모·정의선 등 젊은 3·4세들이 경영 전면에서 도전과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하필 시기가 남북이 70년 분단 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때라는 점에서 이들의 행보가 더 주목받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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