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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추석에 차례상 안 차리고 해외여행 가는 간단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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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지원기자 |  2018.09.17 17:45:49

17일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한옥마을 하동 정씨 고가에서 연꽃어린이집 원생들이 할머니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송편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이런 이벤트에서조차 남자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 = 함양군)

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즐거운 한가위라고 하지만, 주변에는 스트레스 받는 사람 투성이다. 고향 가는 길 차편을 구하는 것도 스트레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에게 결혼해라, 취업해라 소릴 듣는 것도 스트레스, 조카들이 컴퓨터 망가뜨리는 것도 스트레스, 술주정이나 정치 얘기로 드잡이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명절을 둘러싼 최대의 화두는 사실 '스트레스'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20년 지기인 A씨와 B씨는 지난해 6개월 간격을 두고 차례로 결혼했다. 둘 다 자기 집의 장손이었는데, 명절에 “결혼해라” 잔소리와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것은 분명 다행이었다. 하지만 부부로 함께 맞는 명절을 보내는 것은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서 둘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관광객이 홍콩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 = Pixabay)

차례 준비보다 여행이 더 좋은 건 인지상정

 

부부가 모두 직장인인 A씨 부부는 이번 추석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난다. A씨의 어머니, 즉 A씨 집안의 맏며느리이자 A씨 아내의 시어머니는 46년 동안 대가족 살림은 물론 제사와 명절 준비를 책임져 왔다. A씨 어머니는 몇 년 전 남편 즉 A씨 아버지의 칠순을 기념해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다. 그 여행이 얼마나 좋았던지, 노부부는 그 뒤로 매년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오고 있고, 그 외에도 틈이 나는 대로 대만, 일본 등지를 다녀오는 해외여행 애호가가 되었다.

 

노부부는 직장에 다니는 아들과 며느리가 제대로 된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A씨는 지난해 신혼여행을 다녀오기 전 해외여행이라고는 15년 전 도쿄 출장 당시 겸사겸사 며칠 머물다 온 것이 전부였다. A씨 어머니는 “직장인들이 오랫동안 쉬면서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시기가 그나마 명절 연휴 정도이니, 앞으로는 그 때를 이용해 여행을 다녀와도 좋고, 하고 싶은 것을 해도 좋다”라며 흔쾌히 아들 부부를 명절에서 해방시켜주기로 했다.

 

B씨네 사정은 A씨와 달랐다. B씨의 어머니는 새로 시집 온 며느리가 시댁 명절 준비를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었고, 시부모 생일에도 며느리가 직접 차려주는 생일상을 받기를 바랐다. 첫 명절을 보내기 전에 생일상 얘기가 먼저 나왔다. B씨의 아내는 당차게 거절했고, 결혼 초기에 한바탕 고부갈등이 불거졌다. B씨와 아내 사이에도 말다툼이 잦았다.

 

B씨가 가부장적 입장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B씨는 아내의 입장과 의지를 이해했고, 아내 역시 B씨가 자기 편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했고,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얼마나 설득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변치 않을 사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내는 시어머니가 강요하는 불평등한 관습에 굴복할 마음이 없다는 것.

 

이번 추석 명절에 B씨는 부모님 댁을 찾고, 아내 혼자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아내를 향할 부모와 친척들의 화살을 온전히 B씨가 감당하면서 차근차근 설득할 생각인데,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것 같다고 한다.

 

보통의 대한민국 직장인이 해외여행을 계획할 수 있을 정도의 긴 휴일은 1년에 명절 연휴를 포함해 몇 번 되지 않는다. (사진 = Pixabay)

참을 수 없는 '제사 명분'의 가벼움

 

지난 추석 이후 명절마다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글이 있다. ‘제사가 없어지는 간단한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지난해 모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판에 올라온 글인데 올해 추석이 다가오면서 네티즌들이 여기 저기 퍼다 나르고 있다.

 

글쓴이는 여자고, 글쓴이의 아빠는 6남매 중 장손이다. 글쓴이는 “우리 집은 추석, 설날 차례랑 제사 합쳐서 1년에 제사만 9번인 집안”이었다. 글쓴이의 엄마와 작은엄마 둘이서 한 달에 한번 꼴로 제사를 준비했고, 글쓴이는 어릴 때 제사 음식 먹는 것을 질색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작은아빠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됐고, 이후 글쓴이 엄마가 혼자 제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글쓴이의 부모도 이혼을 하게 됐다. 아빠가 다혈질이라 홧김에 집어던진 물건에 엄마 다리가 부러졌고, 외갓집에서 난리가 났다고. 엄마와 언니는 나가서 살게 되고 글쓴이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빠와 살기로 했다. 그리고 “이혼 준비 할 때도 그놈의 제사는 지냈었다”고 한다.

 

이 집에는 이제 며느리가 남지 않았다. 부모님 이혼 후 처음 맞는 제사 날이었다. 작은아빠가 글쓴이에게 전화를 해 “제사 준비 했냐? 몇 시까지 갈까?”라고 물었다. 당시 고2였던 글쓴이가 아무 준비도 안했다고 하니 작은아빠는 글쓴이 아빠에게 전화해서 따졌다. 형제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글쓴이의 아빠는 “너나 나나 다 이혼당해서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제사냐, 누구 손 빌려서 제사를 지내냐”며 화를 냈다.

 

이제껏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에만 가끔 얼굴을 비추던 고모들도 자신들이 제사를 도와주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글쓴이는 “그 길로 우리 집은 1년에 9번이나 있던 제사가 싹 사라졌다”며 “집안에 음식 할 사람이 없으면 자동으로 제사 같은 건 없어지는구나”라고 깨달았다고 밝혔다.

 

아빠와 작은아빠는 엄마와 작은 엄마가 차린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 하나하나 다 트집을 잡았지만, 자기들 손으로 상을 차리기는 싫었는지 제사를 없애버렸다. “그 잘난 장손 소리 듣는 건 좋아도, 장손 노릇 하는 건 귀찮아하는” 글쓴이의 아빠에게 제사의 명분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글쓴이는 “그렇게나 조상 덕 보겠다고 제사를 1년에 9번 씩 지냈는데, 왜 다 이혼 당했을까? 진짜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명절에) 제사 안 지내고 해외여행 간다는데 그 말이 딱 맞다”고 꼬집으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16일 강원 춘천시 성원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춘천지역 북한 이탈 주민들이 합동 차례를 지내고 있다. 한국자유총연맹 강원도지부 강원북부 하나센터는 해마다 이 행사를 열고 있다. (사진 = 한국자유총연맹)

불공평한 노동 강요가 통하는 세상 아닙니다

 

정성껏 음식을 차려 조상을 섬기는 것만으로는 분명 나쁘지 않은 풍습이다. 하지만 그것이 남자 집안의 조상에 국한되어 있고, 심지어 며느리들의 노동만을 담보로 하여 유지되는 것은 매우 불공평하고 시대착오적이다. 결혼은 두 사람이 인생을 공유하기로 결정하는 것이지, 남편 부모에 대한 효도를 아내에게 떠넘기는 계약이 아니지 않은가.

 

명절 무렵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이런 주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십 수 년은 된 것 같다. ‘공감 토크’라고 해서 많은 남녀노소 연예인들이 모여 남편 욕, 시댁 욕을 하며 명절 풍습의 부조리함을 부르짖는다. 남자들은 TV를 보고, 여자들만 전을 부치는 풍경이 잘못됐다는 것은 온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며느리의 본분’, ‘뼈대 있는 가문’을 강요하며 뒷짐 지고 호통 치는 가부장적인 어른들의 사례는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런 분들에게는 앞에 예시한 ‘제사가 없어지는 간단한 방법’이라는 글과, 국일미디어에서 펴낸 ‘명절밥상 & 차례상 자연을 가득 담은 대한민국 명절음식’이라는 책을 함께 소개해보자. 그랬다간 제사 준비 문제로 이혼까지 운운하는 게 너무 극단적이고, 경솔하다고 하실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혼이 얼마나 흔한 일인지, 또 얼마나 쉽고 간단한 일인지 몰라서 하시는 소리다. 제발 정신 차리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 좀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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