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더위 속에서 유통업계 수장(首長)들은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내수경기 침체가 깊어지면서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유통대기업의 총수들 마음이 편치 않아 보인다. 대부분 국내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며 현안을 챙기고 하반기 사업 계획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CNB=도기천 기자)
여름성수기에 휴가는 딴나라 얘기
각종 현안 챙기며 위기 돌파 구상
新경영전략 수립, 하반기 출전 준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2007~2016년 유통기업 경영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유통업계(통계청 기업활동조사에 참여한 유통기업 1380곳)의 매출 증가율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연평균 12.1%에서 2012~2016년 연평균 1.8%로 7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순이익도 2012년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7.6%이던 순이익 증가율은 2012~2016년 연평균 -6.4%로 나타났다. 실질소득 감소와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경기불황이 겹쳐지면서 소비자들이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않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독서삼매경?
이에 유통업계 총수들은 휴가 기간임에도 마음이 급하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남매는 별도 휴가 일정 없이 현안을 점검하고 있다. 평소에도 정 부회장은 선진국 유통탐방이나 유통 박람회 등 해외 스터디 투어를 머리 식힐 겸 다녀오기 때문에 별도의 휴식 일정을 잡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괄사장도 여름 휴가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정 부회장은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부론의 핵심 내용을 발췌한 ‘한 권으로 읽는 국부론’과 건축과 삶에 대한 책인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두 권의 책 사진을 올렸다. 그는 평소에도 종종 SNS를 통해 인문학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왔다.
그의 이런 인문학적 소양은 새로운 도전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일본 펀스토어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삼아 국내최초 펀스토어로 문을 연 ‘삐에로쑈핑’이나, 신세계백화점 개점시간(본점·강남점 제외)을 오전 10시 30분에서 11시로 30분 늦춘 점 등이 최근의 대표적인 도전 사례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정지선 현대百 회장, 휴가 마케팅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도 이번 여름휴가를 하반기 경영전략을 세우는데 사용하고 있다.
오는 11월 문을 여는 면세점의 운영 계획을 점검하는 한편 침체된 백화점 사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구상하는 중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오는 11월 서울 강남 코엑스의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380여개 브랜드가 입점하는 면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특히 정 회장은 침체된 지역경기를 활성화 하자는 취지에서 다양한 국내휴가 프로그램을 내놔 주목된다.
현대백화점그룹에 따르면 최근 정 회장은 임원회의에서 “국내 소비가 살아날 수 있도록 임직원은 물론 고객들까지 국내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고, 이에 고객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휴가 아이템이 마련됐다.
우선 고객들의 국내 여행 활성화를 위해 현대백화점 모바일 앱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국내에 숨어 있는 관광 명소를 고객들에게 소개하고, 해당 지역의 전통식품을 연결시켜 할인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또 매년 고객 7000여 명을 대상으로 경북 경주, 충북 제천, 전북 임실 등 지역 명소를 찾아 전통식품을 체험하고 문화재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 정 회장은 물론 임직원들도 해외보다 국내에서 주로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CNB포토뱅크)
유통업계 서열 1위인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면세점 입찰비리 의혹으로 지난 2월 구속수감 돼 재판을 받고 있어, 핵심 경영진은 사실상 여름휴가를 반납한 상태다.
총수 부재에 따라 설립된 비상경영위원회의 위원들인 황각규 부회장, 민형기 롯데지주 컴플라이언스 위원장, 이원준 유통부문장, 송용덕 호텔서비스 부문장, 이재혁 식품부문장, 허수영 화학부문장 등 그룹 수뇌부는 별다른 휴가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계열사의 CEO들도 대부분 여름휴가를 미루고 경영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지난 2월 뇌물공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며 법정 구속된 상태다. 2심 판결은 오는 9월 말 또는 10월 초에 내려질 예정이다.
이재현 CJ 회장만 ‘가족 여행’
그나마 휴가다운 휴가를 다녀온 총수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다. 이 회장은 지난달 8일 10여명 안팎의 가족과 친지, 수행원 등과 함께 유럽을 다녀왔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진=CNB포토뱅크)
김포국제공항 비즈니스공항센터를 통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출국했는데 오스트리아에는 CJ그룹의 계열 사업장이 없는 데다 이번 휴가에 핵심 경영진이 수행하지 않은 것을 볼 때 이번 유럽행은 순수 휴가 차원이 아니겠느냐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 회장은 일주일 정도 현지에 머무르다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올해 들어 잇달아 해외를 찾아 광폭행보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이 회장이 중국, 미주, 동남아·호주에 이어 유럽에서의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휴가지를 유럽으로 잡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 3월에 CJ제일제당, CJ이앤엠, CJ대한통운 등 계열사가 진출해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CJ 미국 지역본부를 방문했으며, 6월에는 ‘제2의 중국시장’으로 점찍어둔 CJ 베트남 지역본부를 찾아 현황을 점검했다.
한 대형 유통사 관계자는 CNB에 “유통가에서는 여름휴가 시즌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다음으로 바쁜 성수기다보니 CEO들이 이 시기에 휴가계획을 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설령 휴가를 가더라도 업종 특성상 국내 소비경기와 밀접한 만큼 외국여행은 자제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