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서울 국회 정문 앞에서 참여연대 회원들이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와 지출내역 공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5일, 참여연대가 국회로부터 받은 과거 3년(2011~2013)의 국회 특수활동비 내역을 분석해 발표했다. 국회는 이 기간 동안 약 240억 원의 특활비를 사용했는데, 지급 이유가 분명치 않은 내역, 사용처가 분명치 않은 내역이 수두룩해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기획재정부에서 정의한 '특수활동비'란 정보 및 사건 수사와 그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하며, 은밀하거나 긴급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자금 사용의 용처를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
국회의원의 특수 활동이 대체 무엇?
참여연대 발표에 따르면 이 기간 교섭단체 대표는 매월 6000만 원씩을 수령했다. 상임위원장과 특별위원장도 매월 600만 원씩 타갔다. 윤리특위의 경우 1년에 회의를 2~3차례밖에 열지 않았지만 특활비는 매달 600만 원씩 받아갔다. 국회 교섭단체나 윤리특위는 과연 무슨 정보를 그토록 많이 수집하고 무슨 사건을 열심히 수사하고 다니기에 은밀하고 특수하게 쓸 돈이 1년에 7억 원씩 필요했을까?
국회의장은 국제회의 참석 등의 이유로 외국에 나갈 때마다 매번 수만 달러의 특활비를 지급받았다. 숙소, 교통, 식사가 모두 마련된 공식 스케줄을 수행하는 단 며칠의 해외 출장에서 특수한 활동 할 일이 얼마나 되며, 있다고 한들 그게 매번 수천만 원이나 되는 돈이 필요한 일인지 알 수 없다.
또한, 국회는 의원 연구단체들을 지원한다면서 매년 약 5억여 원을 특활비에서 책정해 지급했다. 자기들끼리 매년 최우수 연구단체와 우수 연구단체를 선정해 상금으로 나눠줬다고 한다. 대체 그걸 왜 특활비에서 지급했을까? 의원이 무슨 은밀한 연구를 하기에 지원금을 특활비로 받아야 하는지 궁금하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를 마치고 국회 특수활동비(특활비)에 관련해 브리핑했다. (사진 = 연합뉴스)
국회 특활비에 관한 일부 국민들의 대화
뉴스가 나온 이후, 서울 모처 한 술집에 40대 직장인 넷이 모였다. 모두 고만고만한 국내 기업의 월급쟁이로 15년 넘게 버티면서 이제 막 부장급 지위에 턱걸이한 아저씨들이었다.
애들 교육 얘기와 건강 얘기에 이어 국회 특활비가 화제에 올랐다. 네 아저씨의 공통된 반응은 분개 반, 부러움 반이었다. 분개의 이유는 뻔하다. 나라에 봉사하라고 뽑아주니, 의정 활동은 제쳐두고 잇속만 챙긴다는 것이다.
아저씨들 입에서 공통적으로 "부끄럽지만 솔직히 부럽다"는 말이 나온 이유도 뻔하다. 국회의원이 되면 연봉과 수당, 연금도 많이 받는데, 그 외에 수억 원대 돈을 추가로 챙길 기회(?)가 이렇게나 많은데, 심지어 문제가 생겨도 눈도 꿈쩍 않는 게 대단하다는 이유다.
이번 특활비 이슈에 대해서도 국회는 끄떡없을 것 같아 보이나보다. 혹시나 분노한 국민이 촛불을 들고 여의도공원에 모인다 해도 이미 수십 년 동안 지급된 돈을 투명하게 밝혀 모두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평소 서로 삿대질만 하다가도 자기네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매번 놀랍도록 일치단결해서 지켜오지 않았던가?
술자리 아저씨들은 모두 1990년대 초~중반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운동권에서 활동한 경험들이 있다. 특히 두 명은 총학생회 간부였다. 다시 그 중 한 명은 대학 때 친하게 지냈던 운동권 선배가 19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며, 자신도 어릴 때 조금만 마음을 굳게 먹었다면 지금 적어도 시의원은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시의회나 구의회에도 그런 '특활비' 항목으로 지급되는 돈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특활비라는 이름은 아니라도, 살펴보면 눈 먼 돈이나 다름없는 지급 항목이 분명히 산재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3일 오후 경남 진주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8대 진주시의회 개원식에서 전체 시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원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국회만 유독 더 부패했을까?
이런 주장의 근거도 대학 시절 총학생회 경험이었다. 대학교에는 총학생회를 비롯해 학생회비로 운영되는 조직이 여럿 있는데, 지출 내역이 불투명해도 문제되지 않는 돈이 조직마다 매년 수백만 원씩 존재했지만, 감시 및 견제 기능이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그가 다닌 대학의 한 학생위원회는 단과대학별로 1명씩의 위원들이 모여 매달 관련 회의를 진행했다. 총학생회는 이 위원들에게는 학기별로 수십만 원의 활동비를 지급했지만, 이들은 위임장만 제출하면 모든 월간 회의에 불참해도 아무 불이익이 없었고, 해당 활동비의 사용 내역을 제출할 의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 위원회가 맡은 임무는 바로 총학생회가 사업 및 예산 운용을 바르고 투명하게 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것이었고, 해당 위원들은 대부분 총학생회장 및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 맡는 것이 매년 관행처럼 이어졌다고 한다.
국회라는 가장 큰 민주주의 조직도 그렇고, 민주적으로 가장 순수할 것이라 생각한 학생회 조직조차 이럴진대 그 사이의 조직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하물며 동네 노인들의 계 조직에서도, 여러 사람의 공적인 돈이 이처럼 '업무상 편의'라는 이름으로 눈 먼 돈으로 남용되는 비일비재 하다.
청렴하고 도덕적인 사람은 물론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을 맡는 '자리'가 반드시 그런 믿음직한 사람에게 맡겨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돈만 보면 욕심을 내고, 맡겨진 돈은 공금조차 내 돈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를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은 오직 철저한 감시 뿐이다. 돈을 맡겼다면, 믿어선 안 되고, 내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 필수다.
국회 특활비 문제 역시 사회적 감시 시스템의 오작동 혹은 부재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법부-행정부-입법부가 서로에 대한 견제 기능을 올바로 하고, 언론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해 왔다면 저 240억 원에 관한 지금의 논란은 없었을 것이며, 그 돈은 사회적으로 훨씬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곳에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검찰, 대법원, 언론사 등등 모두들 자기네 발등에 떨어진 각종 비리 문제를 수습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현실이다.
이날 술자리 대화는 이처럼 "결국, 기자 아저씨의 어깨가 무겁다"는 말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날 술값은 중견기업 부장 아저씨가 법인카드로 계산했고, 기자는 대학 다닐 때 정치에 좀 더 욕심을 낼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