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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객기 '갑질' 승객을 입다물게 할 비용 계산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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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지원기자 |  2018.05.31 16:29:19

▲이스타항공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음료수를 서비스하고 있다. (사진 = 이스타항공)

최근 조양호 일가의 갑질 논란과 함께 항공사 직원들의 근무 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 특히 객실 승무원의 감정노동과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감정노동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배경이 바로 미국 델타항공 객실 승무원의 업무 실태였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A. R. Hochschild)는 항공기에 탑승한 고객이 우호적이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승무원의 외모와 표정을 유지하고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제하거나 실제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출하는 등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을 두고 '감정노동'이라 지칭했다.

이른바 '라면 상무' 사건과 '땅콩 회항' 사건을 계기로 2015년 5월 국회에서 승무원 노동 인권 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당시 토론회에서 '항공사 승무원 감정노동,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서 국내 항공사 객실 승무원의 감정노동 실태에 관해 얘기했다.

당시 토론회 자료에 실린 승무원 면접 조사 내용을 보면 객실 승무원들은 다양한 '고객 갑질'에 시달리고 있었다. 

▲'땅콩 회항'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5월 24일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 채용 혐의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관계 당국에 출석해 포토라인에 섰다. (사진 = 연합뉴스)


"OO도 풍년"이라더니 갑질 천태만상

사례 하나. 하루는 비행기에 한 회사의 임직원들이 탔다. 1등석에 탄 임원에게 사기 그릇에 담긴 라면이 제공됐다. 임원은 자기네 직원들이 이코노미석에 있다며, 그들에게도 이것(사기 그릇에 담긴 라면)을 가져다 줄 것을 요구했다. 객실 승무원은 "회사 규정상 안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큰 소리를 치고 난리가 났다. "타 항공사에서는 해주던데 여긴 왜 안 된다고 하느냐, 나는 너희들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둥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을 우긴 것이다. 

사례 둘. 하루는 1등석 승객이 기내 식사 서비스 시간에 자고 있었다. 식사 시간이 지난 후 잠에서 깬 승객은 식사를 요구했다. 객실 승무원은 제공 가능한 메뉴가 한식, 양식 등이 있다고 설명하고 그 중 하나를 제공했다. 그런데 승객은 승무원이 설명한 모든 메뉴가 제공되는 줄 알고, 왜 나는 이것 하나만 주냐고 큰 소리 치고 소란을 피웠다. 이 소란은 내릴 때까지 2~3시간이나 계속 되었다. 심지어 옆에 있는 다른 승객들까지 "오늘 여기 정신병자 탔냐"고 불평할 정도였다.

사례 셋. 면세품으로 담배를 팔던 시절 이야기다. 담배를 찾는 승객에게 다 팔려서 없다고 안내를 했는데, 바로 반대편 카트에서 담배가 왔다. 그러자 손님은 그 담배를 받아들고 처음의 승무원을 담배로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사실 이런 거창한 토론회의 자료집을 통하지 않아도, 다른 승객의 어거지 갑질 때문에 여행이 불쾌했다는 경험은 주변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다. 나 또한 비행기에서 직접 이런 갑질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이코노미석에서의 갑질이었다.

이 승객은 음료수를 받을 때 자기가 서두르는 탓에 잔을 엎었다. 그런데도 30분 넘게 해당 승무원을 붙잡고 "축축해 죽겠다, 이거 어쩔 거냐"고 짜증을 냈고, 팀 리더쯤 되는 사람이 왔을 때도 "승무원 교육 이렇게밖에 못 시키냐"며 훈계를 해댔다. 

많은 승객들이 이 상황을 불쾌해 했고, 나와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작은 소리로 그 승객을 한참동안 욕했다. 특히 그 승객이 자기 일행에게 "내가 낸 돈이 얼마인데, 이건 내 권리다"라고 말한 것이 들려 더욱 어이가 없었다. 

▲한 외국 저가항공사의 이코노미석 객실. (사진 = pixabay)


생각보다 싼 항공료…서비스 요금은 얼마?

과연 그는 승무원에게 짜증을 낼 권리를 사기 위해 얼마를 지불했던 것일까?

당시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에는 약 300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고, 승무원은 7~8명이었다. 1인당 35~40명 정도를 담당하는 셈이다. 항공료는 왕복 70만 원, 편도 35만 원 정도였다. 여기엔 약 4000km를 이동하는 교통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대한 비용과 공항 시설을 이용하는 비용, 그리고 비행 중 제공받은 식사와 땅콩과 음료수 비용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400km를 가는 고속버스 요금은 편도 3만 6850원이고, 시간은 5시간 40분 이 소요된다. 비행기로 그 10배의 거리를 가는 데는 6시간이 걸린다. 날개가 없는 인간이 고속버스의 10배 속도로 그 거리를 날아가는 데 35만 원이면 비싼 게 아니다. 게다가 비행기에선 밥도 주고 영화도 보여주며 화장실도 쓸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그중 '접객 비용'으로 승무원에게 지불한 비용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객실 승무원의 월 기본급을 180만 원이라 하고 이를 월 평균 비행시간(90시간)으로 나눈다면 2만 원이 된다. 그리고 비행을 할 때 받는 수당이 시간당 약 1만 원 정도라고 하니 이를 추가한다. 이 계산대로라면 당시 6시간의 비행에서 해당 승무원이 받은 돈은 18만 원 정도다. 

백 보 양보해서, 그 18만 원이 전부 승객 35~40명에 대한 접객 업무에 책정된 수당이라고 가정하면, 승객 1인이 해당 승무원에게 지불한 서비스 비용은 4500~5143원 정도, 대략 짜장면 한 그릇이될까 말까하는 값이다.

▲대한항공 1등석. 1등석과 비즈니스석은 이코노미석에 비해 객실 승무원 1명이 담당하는 승객 수가 훨씬 적다. (사진 = 대한항공)


당신만 돈 내고 탄 손님 아니다

심지어 본래 승무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객실 서비스가 아니다. 김종진 부소장은 노동 문제 연구자의 관점에서 객실 승무원의 핵심 업무는 중요도 순으로 ①비상탈출(emergency evacuation) > ②안전보안업무(in-flight safety and security) > ③승객지원(assist passengers) > ④기내서비스(hospitality and in-flight service)라고 밝혔다. 따라서 승객 1인이 지불한 4500원 중 ③, ④번에 해당되는 비용은 후하게 쳐도 2000원 정도겠다.

1등석 승객이나 조씨 일가는 승무원에게 갑질을 해도 괜찮다는 얘기가 아니다. 세상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인격을 깎아내리고 고함치고 짜증 낼 권리를 돈 주고 살 수 없다. 2000만 원을 내더라도 해선 안 되는 짓이다. 하물며 2000원을 내는 승객이 당당히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느 나라 법도에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과 동일한 금액을 지불한 다른 승객 39명의 평화로운 휴식을 방해할 권리는 더더욱 없다.

다음에 이코노미석에서 승무원과 다른 승객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갑질 승객을 보게 된다면, 환한 미소와 함께 2000원을 쥐어주며 그 입 좀 다물어 달라고 해볼까 싶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있어야겠고, 꾹 참아서 그 돈을 아끼는 것이 이득이므로 실천에 옮길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정도만 마음먹는다. 정 화를 못 참을 일을 당한다면, 그때 딱 2000원어치만 갑질을 한다는 생각으로 맥주 한 캔을 더 요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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