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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국가보안법 휴지통에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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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8.05.07 08:21:26

(CNB=도기천 편집국장) 

병무청에 문의: 통일될 것 같은데 군입대를 언제하면 좋을까요?

병무청의 답변: 지금 입대하세요. 지금은 가장 멀어도 강원도 정도에 자대 배치를 받습니다. 통일 후에는 개마고원, 백두산 등으로 자대 배치 받을 수 있습니다.

요즘 십말이초(10대 후반~20대 초반) 사이에 SNS를 통해 퍼지고 있는 유머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과 북미정상회담 기대감으로 한반도 전체가 들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53년 시작돼 65년간 계속돼온 휴전(休戰) 상황을 종전(終戰)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남과 북은 물론 북한과 미국 간 수교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와 상호 적대행위 중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동해선·경의선 철로와 도로연결, 비무장지대 병력철수 등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미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북측의 표준시간이 남측과 통일됐으며, 남북의 군대는 대남·대북 확성기 방송시설을 철거했다. 

과거에도 남북 정상이 만나 비핵화와 공동번영을 약속한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이번처럼 강력하고 구체적인 합의문이 발표되고 신속히 후속조치가 이뤄진 적은 없다.

재계도 이전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재개될 남북경협에 들떠 있다. 북한 내 도로·항만 등 기반시설(SOC) 건설, 개성공단 2단계 개발을 포함한 경제특구 개발, 2007년 10·4선언에 기반한 각종 경제교류 확대 등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통해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유라시아 횡단 철도, 북한 내 광물자원 공동개발, 비무장지대(DMZ)의 환경·관광벨트화, 동해안의 에너지·자원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런 구상을 USB에 담아 남북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 재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으며, 개성공단기업협회는 공단 재개를 위한 시설 점검 목적으로 이달 중 방북할 계획이다. 

북미 간 긴장이 완화되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드 문제 또한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평화 협정→사드 철회→한중 해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롯데쇼핑(롯데마트·백화점·호텔), 아모레퍼시픽, 오리온 등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한껏 고무돼 있다. 

평양에 트럼프타워와 맥도날드가 들어서고, 문재인·김정은·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바야흐로 한반도에 ‘완전한 봄’이 도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밤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마친 뒤 헤어지고 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사진=연합뉴스)


구시대 유물은 박물관 보내야

그런데 이런 화창한 날에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는 ‘물건’이 있다. 국가보안법이다. 

1948년 제정돼 70년간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제헌국회 이래 최장수법이다. “국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게 제정 취지다. 반국가단체의 구성, 잠입·탈출, 찬양·고무, 회합·통신, 편의제공, 불고지 등이 핵심내용이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는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뜻한다. 그동안 우리 법원은 일관되게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해 왔다.

법대로라면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월경(판문점 북측 지역으로 이동)한 행위, 문 대통령이 USB를 전달한 행위, 남측 기자들이 북측 지역을 오간 행위 등이 전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남북정상회담 직후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이를 문제 삼았으며, 이 부분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유력 언론들 간에 웃지못할 해프닝(보도행태를 두고 뉴시스와 미디어오늘이 공방을 벌임)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국가보안법 주요조항 앞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문 대통령의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지나친 ‘레드 콤플렉스(아니면 지방선거용)’가 불러온 해프닝 정도로 여겨진다.

▲세계인들은 북한 사람과 접촉만 해도 죄가 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을 뭐라 할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차림으로 꾸민 외국인들이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장 앞에서 악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고 안해도 죄? 아이들에게 부끄럽다

하지만 과거 사례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목적이었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법부의 주된 판단기준은 공안사건으로 엮을만한 값어치가 있느냐 없느냐, 정권유지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의 여부였다. 

세기의 사건으로 기록된 1989년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의 방북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목적이었을까? 

한평생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해온 문 목사는 국가보안법 등으로 6차례에 걸쳐 11년 4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당시 스물 한 살의 대학생 임수경은 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자유민주 질서를 위태롭게 한 자들은 이들이 아니라 당시 대통령 노태우(그는 12.12군사반란의 수괴(내란죄)로 17년형을 선고받음)였음에도 말이다.   

세계적인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독일 뮌스터대)를 북한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9개월간 고문·구금한 것이 국가보안법이었고, 국정원의 조작극으로 판명난 유우성씨 사건 또한 이 법으로 엮었다.  

수많은 민간인, 시민단체, 정치권 인사의 사찰 명분으로 사용한 도구가 이 법이다. ‘국가보안법 혐의가 있어서’라고 하면 인권침해가 허용됐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다.

물론 양심적인 판사들도 많았다. 국정원이 검찰을 통해 기소한 국가보안법 사건들의 상당수는 무죄로 판명났다. 2004년 참여정부 초기 때 국가보안법 파동을 겪고 난 뒤부터 법원의 이런 양상은 두드러졌다. 

그렇더라도 지뢰처럼 도사리는 이 법을 그냥 둔 채 봄을 맞을 수는 없다.   

스마트폰으로 전세계인과 페북 하는 시대지만 북한 사람과 SNS를 하면 회합통신? IS(테러단체 이슬람국가) 대장을 만나도 죄가 안 되는데 북한 사람을 접촉하면 중죄가 될 수도 있는 법, 알고도 고발하지 않으면 죄가 되는 불고지죄… 

이런 법을 세계인들은 뭐라 할까? 이런 게 있다는 걸 지금의 십말이초들이 알기나 할까?

19살짜리 내 아들에게 부끄럽다. 그만큼 했으면 됐다. 이제 휴지통에 버리자.

(CNB=도기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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