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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영화배우 최은희, 지병으로 별세…향년 92세

두 번의 이혼-납북-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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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성민기자 |  2018.04.17 09:42:20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의 최은희. (사진 =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

영화배우 최은희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의 장남인 신정균 감독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후 병원에 신장투석을 받으러 갔다가 임종했다.

고인은 1926년 경기도 광주 출생으로,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한 뒤 1950~60년대에는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원조 트로이카를 형성, 한국영화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촬영감독 최학성과의 짧은 결혼생활 뒤 1953년 이혼한 고인은 1954년에는 영화감독 故 신상옥 감독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감독과 주연 배우로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 '백사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의 영화를 함께 하며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견인했다.

고인은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에서는 감독 겸 주인공으로 출연,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북한의 신년 달력에 실린 최은희(오른쪽), 신상옥 감독 부부. (사진 = 연합뉴스)


고인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으로도 유명했다.

신 감독과 이혼한 고인은 1978년 1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된다. 이후 그해 7월, 신 감독은 홍콩에서 사라진 그녀를 찾으러 출국했다가 마찬가지로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1985년 작 '소금'으로는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이는 한국인이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한 최초의 기록이다.

두 사람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에서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했다. 이후 미국에서 10년 넘게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에 영구 귀국했다.


귀국 후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한 고인은 2002년에는 뮤지컬 '크레이즈 포 유'를 기획·제작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내기도 했다.

2006년 신 감독이 80세를 일기로 별세한 뒤 고인은 건강이 악화됐고, 말년에는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는 등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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