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진산(鎭山)인 금강산에 위치한 금강산성이 몽고군의 침입시 백성들의 피난을 목적으로 축조한 고려시대 산성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해남군이 (재)고대문화재연구원을 통해 지난해부터 실시한 금강산성 정밀지표조사 및 시굴조사 결과 해남 금강산성은 축조양상 및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 대몽항쟁기 험한 산성에 들어가 지키기 위해 산성입보(山城入保)용으로 축조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남읍을 둘러싸고 있는 금강산(488m)에 위치한 금강산성은 정상부의 산정을 분기점으로 북동쪽과 남동쪽으로 뻗은 능선과 이들 능선사이에 형성된 골짜기를 막아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의 총 길이는 1087m로 남동-북서의 장방형에 가까운 평면 형태를 보인다.〈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대동지지〉〈증보문헌비고〉에‘옛성(古城)’으로 기술돼 있을 뿐 정확한 축조연도를 알 수 없이 현재는 잔존성벽만 남아 있다.
금강산 정상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요지로 성내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은폐돼 있으면서도 충분한 내부공간을 확보하고 있어 변란 시 은신처로 삼기위해 쌓은 성인 것으로 보고 있다.
조사결과 금강산성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일부구간은 성벽을 쌓지 않고 험준한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고, 지형조건에 따라 능선부는 내탁식으로, 계곡부는 협축식으로 축조하는 등 13세기 중반 몽고침입기 여러 고을 배성들의 피난을 목적으로 축조된 입보용(入保用)산성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같은 시기 대표적인 입보형 산성으로는 해도입보(海島入保)인 진도 용장산성을 비롯해 장흥 수인산성, 나주 금성산성, 장성 입암산성, 담양 금성산성 등이 있다.
또 동․서․남․북쪽의 성벽과 4개의 문지(門址), 치(雉), 용도(甬道), 집수지(集水址), 건물지(建物址), 봉수(烽燧)등도 확인돼 이같은 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강산성은 13세기 중반 진도 용장산성과 함께 축조돼 14세기 왜구 침입기를 거쳐 해남읍성이 축조되면서 세종 16년 폐지될 때까지 입보용 산성으로서 기능을 유지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와 관련해 해남군은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금강산성의 조사성과와 의의’학술세미나를 오는 18일 오후 2시 해남문화원 강의실에서 개최한다.
학술세미나에서는 조사를 진행한 고대문화재연구원 고용규․박덕재 연구원, 국민대학교 변남주 교수가 참여해 이번 금강산성 조사현황과 성과, 금강산성의 의의 및 향후 활용방안, 해남의 산성 등을 주제 발표할 계획이다.
더불어 해남군은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27호로 지정돼 있는 금강산성의 학술성과 역사성, 문화재 가치를 부각시켜 전라남도 문화재로 지정 신청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