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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홍대 소녀상’ 파동 그 후…보도 행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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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8.03.28 09:00:35

(CNB=도기천 편집국장) 젊음의 거리인 홍익대 앞에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끌려간 어린 여성들의 넋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다는 소식은 지난달 6일 CNB의 단독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관련기사: [단독] 핫플레이스 홍대 거리에 ‘평화의 소녀상’ 세워진다)

기사가 나간 뒤 반향은 뜨거웠다. 홍익대 총학생회, 홍대 걷고싶은거리 상인회 등에서 다양한 의견을 보내왔으며, 여러 언론들의 후속보도가 이어졌다. 

우리는 이 사안을 세 차례에 걸쳐 심층보도 했다. 소녀상이 오기까지의 의미와 배경, 1년간 계속돼온 청소년들의 모금운동 등 과정을 자세히 다뤘다.   

하지만 지난 3.1절을 기해 홍익대 정문 앞 작은 공원에 세우려했던 소녀상은 결국 학교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언론의 선긋기식 기사가 마음을 더 상하게 했다. 인근 상인회는 ‘일본인 손님이 줄어든다’며, 홍익대는 ‘일본과의 학술교류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동의가 없어’ 반대했다는 식의 보도였다.

CNB가 당사자들을 만나보니 온도차가 있었다. 

우선 총학생회는 소녀상 건립을 찬성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학생들은 “일본에도 양심적이고 객관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학교 측이 무조건 일본인이 소녀상을 싫어할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역사인식의 부재”라며 학교 측을 비판했다. 다만 소녀상의 설치 장소는 설문조사를 통해 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홍대 상인회의 태도도 보도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상인회장 이모 씨는 “역사적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유흥이 넘치는 거리에 소녀상을 두는 것은 모양새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인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장소가 틀렸다는 얘기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기사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총학생회 한 간부는 “언론이 앞뒤를 자르고 보도하는 바람에 학우들로부터 어용 총학으로 몰렸다”고 말했다.

언론사들의 후속보도가 없는 점도 유감이다. 3.1절 홍대에서 물러난 소녀상은 서강대교 밑 콘테이너 창고 앞에 방치됐다. CNB가 이 사실을 단독공개 한 지난 8일 기사가 소녀상에 관한 마지막 보도다. (관련기사: [단독공개] ‘박정희’와 ‘소녀상’…마포에서 길잃은 두개의 동상)

지금 소녀상은 어찌됐을까. 홍대 총학생회는 소녀상의 위치를 묻는 여론조사를 5일간 실시했는데 1800여명이 설문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중 63%가 원래 장소인 정문 앞 소공원을 택했다.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는 이 결과를 토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일인 4월 13일을 기해 다시 소녀상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이 기사화되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실검 순위에까지 올랐던 ‘홍대 소녀상’이 기자들 눈에는 3.1절 반짝 이벤트로 비쳐진 걸까.
     

▲지난달 28일 저녁 홍대 앞 거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서있는 청동 소녀상’. 비를 맞으며 트럭 위에 서있다. 결국 땅을 딛지 못했다. (사진=도기천 기자)


그날 일은 ‘3.1절 이벤트’가 아니다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기레기가 ‘사이비 기자’를 지칭하는 용어였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왜곡․편파보도를 일삼는 언론을 뜻하는 의미로 확대됐다.

세월호 보도 때 보여준 보도행태는 참담했다. ‘전원 구조’라는 희대의 오보를 내고도 사과하는 이가 없었다. 넋이 나간 유가족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기본이었고, 박근혜 정권이 댓글부대로 만든 여론을 여과 없이 전했다. 유족들을 보상금을 노린 ‘생떼’ 집단으로 만들었으며, ‘이제 그만하자’는 류의 기사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특조위 방해 등 은폐 시도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이번 소녀상 보도에서 보여준 언론사들의 행태를 세월호에 빗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지 모른다. ‘누워서 침 뱉기’라는 생각도 든다. 기자들이 매일 마감시간에 쫓기다보니 깊은 면을 못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욕(汚辱)의 역사 앞에선 좀 더 진중했으면 좋겠다. 그날 있었던 일은 ‘3.1절 이벤트’가 아니라 일제 만행의 진실을 밝히려는 지금의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CNB=도기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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