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면세점. (사진=연합뉴스)
남북(南北)정상회담과 북미(北美)정상회담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국내 화장품·유통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북미 간 긴장이 완화되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드 문제 또한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증권가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중국·한국·북한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드 실타래는 풀릴 수 있을까. 우리기업들이 ‘대륙’에서 다시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 (CNB=도기천 기자)
롯데, ‘한한령’에 ‘괘씸죄’ 더해져
북미관계 개선에 사드 해결 기대
“핵 동결 탐색전 그칠 것” 우려도
중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뷰티·유통 기업들이 한반도 정세에 가슴을 졸이는 이유는 북미 관계 개선이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및 단체관광 제한령) 철회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는 북미 간 해빙 무드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해소로 이어져 한중 관계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시나리오에서 비롯된다. 한마디로 ‘남북 화해→북미 간 평화정착→사드 철회→한중 해빙’으로 이어진다는 것.
이런 기대감은 중국 정부가 지난 2년간 계속된 사드 보복으로 한국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는 데서 비롯됐다.
한중 관계는 2016년 7월 박근혜 정부가 사드배치를 발표하면서 급속히 얼어붙었다. 중국 정부는 한국기업에 대한 제재에 나섰고, 급기야 작년 3월 15일에는 한국여행상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한한령’을 발동했다.
이후 한국을 찾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는 반 토막이 났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방한 중국인은 416만9353명으로 전년보다 48.3% 급감했다. 중국인 관광객 감소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약 5조원 감소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어 한산해진 명동 거리. (사진=연합뉴스)
유통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롯데는 자사 소유의 경북 성주골프장이 사드 부지로 최종 낙점되면서 중국의 표적이 됐다.
중국은 소방 점검 등을 이유로 롯데마트 중국 점포 99개 중 87곳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나마 겨우 명맥을 유지한 점포들도 중국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매출이 80% 이상 줄어 사실상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롯데마트는 결국 1조2천억원에 달하는 매출 피해를 견디지 못해 매각을 결정했지만 이 마저도 진전이 없다.
국내의 롯데 계열사들도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롯데호텔, 롯데백화점의 중국인 매출이 급감했으며, 롯데면세점은 중국 보따리상들에게 의존하는 신세가 됐다.
이 같은 직접적인 매출 하락 외에도 사업기회 손실 등 무형의 손해까지 고려하면 롯데그룹이 사드 보복으로 입은 피해 규모는 약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 뿐 아니라 화장품, 식품 등 중국에 진출한 다른 기업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오리온 중국 법인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에 비해 33.2% 감소했으며, 아모레퍼시픽은 전년 대비 10%가량 매출이 줄었다. LG생활건강은 다양한 사업군으로 전체 실적은 올랐지만 화장품(로드숍) 분야는 전년보다 매출이 12%이상 추락했다. 실적 만회를 위해 기업들은 대륙을 벗어나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상하이 빠바이반 백화점의 LG생활건강 ‘후’ 매장. (사진=LG생활건강)
북미 풀리면 ‘3不’ 자동 해결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2월 중국을 국빈 방문해 정상회담을 갖는 등 관계 개선에 나섰지만 아직 체감할만한 중국의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과 산둥성에 한해 단체관광을 허용했지만 롯데호텔 숙박이나 롯데면세점 쇼핑은 여전히 금지시켰다.
이처럼 보복 조치를 철회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정부가 사드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른바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불참) 정책’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그래야 한한령을 풀 수 있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정부는 ‘중국의 안보를 침해하지 않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중국 국영 CCTV가 작년 12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터뷰에서 ‘3불(不)’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지만 문 대통령은 즉답을 피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커지고 있는 때에 사실상 한미군사동맹의 탈퇴를 의미하는 요구를 받아들일 순 없기 때문이다.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물품을 분류중인 중국 보따리상. ‘유커’의 빈 자리를 보따리상들이 채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증권가 “앞날 장밋빛”
하지만 북한과 미국 간에 평화 무드가 조성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미 양국은 사드의 배치 이유가 “오직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항하는 용도”라고 천명한 바 있다. 따라서 북의 핵 위협이 사라지면 사드를 배치할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문 대통령이 작년 9월 사드 발사대(4기)를 경북 성주 기지에 배치하면서 ‘임시 배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면 철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오는 5월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의 주제가 북한의 핵 동결인 만큼 사드 문제가 해소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이렇게 될 경우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 증권가에서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NH투자증권은 화장품업종 투자의견을 ‘긍정적’으로 유지했으며, 아모레퍼시픽 등을 관심주로 꼽았다. 다른 증권사들도 저평가된 ‘사드 수혜주’에 관심을 두라고 조언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CNB에 “사드가 ‘북한용’인만큼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사드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며 “사드가 해결되면 중국 문제는 자동으로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북미 간 대화가 탐색전에 그칠 가능성이다.
정치평론가 구병두 교수(서경대)는 CNB와의 통화에서 “북미 관계가 해빙을 맞고 있는 것은 맞지만 과거 사례로 볼 때 핵사찰 과정이 상당히 길고 미국의 정권교체 등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너무 사드에만 얽매이지 말고 외교채널을 다양하게 하면서 주변국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을 가져갈 때 중국 문제는 저절로 풀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