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저녁 처음 모습을 드러낸 ‘서있는 청동 소녀상’. 비를 맞으며 트럭 위에 서있다. 결국 땅을 딛지 못했다. (사진=도기천 기자)
3.1절을 기해 홍익대 앞에 설치하려던 ‘평화의 소녀상’이 학교 측의 방해로 결국 무산되면서, 이 문제가 새국면을 맞고 있다. 홍익대학교 총학생회는 여론수렴을 위한 설문조사에 들어갔으며, 소녀상건립추진위는 오는 4월 13일 상해임시정부수립일로 제막을 연기했다. 홍익재단과 마포구청, 인근상인들과 학생들 입장이 제각각이다. 소녀상이 표류하게 된 이유가 뭘까. CNB가 2월28일~3월1일 간 1박2일 동행취재를 통해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홍대재단․상인․학생회 입장 제각각
학교측, 교직원 차량 동원해 방어
‘상암동→홍대거리’ 소녀상 떠돌아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끌려간 어린 여성들의 넋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은 1년전 마포구 중고생들의 모금운동으로 시작됐다.
상암고, 서울디자인고, 광성중고, 신수중, 창천중 등 11개 학교 학생들이 거리서명, 기금마련 콘서트, 일일찻집 등을 통해 3천여만원의 기금을 모았다. 직장인, 가정주부 등 마포구 주민들로 구성된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대표 차경숙)’가 이들과 함께했다. 또 마포구의회는 작년 3월 이봉수 마포구의원(서강·합정동)의 제안으로 소녀상 설립 결의안을 냈다.
마포구에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이 지역에 일본 관련 시설물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포구 상암동에는 1930년대 일본군 경성사단이 위관급 장교들을 위해 지은 ‘옛 일본군관사’ 2개동이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원돼 있다. 그 맞은편에는 학생수 400여명 규모의 일본인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마포와 맞닿은 수색역 일대는 경의선을 통해 전쟁 물자를 수송하던 대규모 병참기지가 있던 자리였다. 또 인접한 용산에는 아시아 침략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던 일본군 부대가 있었다.
▲CNB가 단독입수한 홍익대 재단 측이 마포구청에 낸 의견서. 일본과의 교류에 방해가 되니 소녀상 설치를 허가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다. (사진=도기천 기자)
일본군관사→홍대 거리→홍대 정문
소녀상이 홍대 앞으로 오게 된 사연은 기구하다.
당초 소녀상은 마포구 상암동에 복원된 ‘옛 일본군 장교관사’ 앞에 세워질 예정이었다. 상암동은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침략전쟁을 수행하던 일본군이 병력과 군수물자를 수송했던 경의선 수색역과 맞닿은 곳이다.
그래서 일본군 고급장교들은 부대 인근(상암동)의 장교관사에서 거주했다. 10여년전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가 상암지구 택지개발을 진행하면서 이 장교관사 단지의 일부를 이축 복원했다. 당시 문화재 지정여부를 놓고 주민들과 문화재청, SH 간에 큰 충돌이 있었고 결국 문화재 지정은 철회된 채 흉물스런 모습으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소녀상추진위는 장교관사 앞이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 ‘이곳에 소녀상이 세워지면 장교관사 또한 영원히 보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결국 백지화 됐다.
다음 후보지가 홍대 ‘걷고 싶은 거리’였다. 이곳은 하루 유동인구가 수만명에 달하는 ‘핫플레이스’다.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방문코스인데다 10~20대 젊은층이 주를 이루는 곳이라 ‘소녀상’이 청소년교육과 역사문화관광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합지로 추천됐다. 우리처럼 일본 침략의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인들이 이 거리를 많이 찾는다는 점도 작용했다. ‘유커’들에게 ‘홍대 거리’는 빠질 수 없는 관광코스다.
▲지난달 28일 밤 ‘소녀상’이 홍익대 재단 관계자들의 방해로 트럭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하지만 인근 상인들이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들 수 있다’고 반발하면서 무산됐다.
이우명 홍대 상인회장은 1일 CNB에 “상인회 월례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결과 대부분이 반대 입장이었다”며 “아픈 역사를 기리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유흥의 메카가 된 거리에 소녀상을 세우는 것은 정서적으로 맞지 않다”고 밝혔다.
결국 최종후보지로 낙점된 곳이 국유지인 홍익대 정문 앞 공원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홍익대 재단 측이 반대하고 나섰다. 홍익대는 표면적으로는 ‘소녀상이 지자체로부터 허가받지 않은 불법조형물’이라는 점을 들어 반발했지만, 진짜 이유는 달랐다.
CNB가 단독입수한 홍익대가 마포구청에 보낸 의견서에는 “일본과의 광범위한 학술교류가 이뤄지고 있으며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일본이 거부감을 드러내는 조형물을 대학 정문에 설치하고 일본에 교류를 제안하는 것은 우리 대학의 양식와 신뢰성에 대한 자해 행위”라고 적혀있다. 한마디로 일본과의 교류에 방해가 된다는 얘기다.
학교 측은 3.1절에 소녀상을 세우려는 추진위에 맞서 전날부터 대형화분과 교직원의 승용차, 수십여명의 인력을 동원해 국유지인 학교 앞 공원(소녀상 예정지)을 완전 점거했다. 양측은 28일과 1일 이틀에 걸쳐 몇차례 충돌했고, 결국 소녀상은 발길을 돌려야했다.
▲총학생회 집행부 학생들이 3.1절 오후 홍익대 홍문관 앞에서 소녀상 설치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학생들 “학교측 역사인식 부재”
이에 학생들은 학교 측을 비난하고 나섰다. 신민준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학생회집행부는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에도 양심적이고 객관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무조건 일본인이 소녀상을 싫어할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역사인식의 부재”라며 학교 측을 비판했다.
다만 총학 측은 소녀상 설립위치는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학교 앞 공원과 교내, 걷고 싶은 거리, 마포구의회 앞 등 4곳을 후보지로 정해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CNB는 학생들과 좀 더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들과 밤늦게까지 실내포차에서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소녀상을 세우자는 전제에는 공감하면서도 장소와 절차 등의 문제를 고민했다.
이상현 총학 인권연대국장(23․컴퓨터공학과)은 “일베 조형물(2016년 홍대 정문 앞에 한 작가 설치한 전시물)로 큰 진통을 겪으며 가뜩이나 학교 위상이 크게 실추된 상태인데, 소녀상을 반대하는 학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해졌다”며 “(소녀상 반대가) 홍대 학생들의 입장이 아니라 홍익재단의 입장 임을 언론에서 분명히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민준 총학생회장은 “학생회가 학교편이다. 친일 학생회다라는 오해가 가장 무섭다”며 “홍대는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학교이며 3기졸업생들이 김구 선생의 운구를 운반한 역사가 있다. 학생회는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 소녀상을 설치하기 위해 여론을 수렴하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이것이 마치 학교편을 드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어 억울하다”고 말했다.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은 결국 무산됐다. 3.1절 오후 소녀상이 제막식 간이무대 옆에 외롭게 서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80년전 모습처럼 안타까워
설치 이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신창우 총학 집행위원장(경영학과)은 “소녀상이 친일세력의 반대집회를 유발할 수 있으며, 반달리즘(문화재파괴행위)도 크게 염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소녀상 훼손과 집회 등으로 인한 학습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것.
주제를 조금 벗어난 얘기도 나왔다. 이상현 국장은 “홍대는 재단적립금이 7000억원인 우리나라 1위의 부자학교이지만, 청소노동자를 구조조정하고 학생들 복지예산을 전혀 늘리지 않고 있다”며 “이같은 상업적인 사고가 소녀상 반대로 이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주무기관인 마포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위안부피해자법 11조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기념사업(소녀상 등)을 수행할 수 있다. 당초 소녀상 설립에 적극적이었던 마포구는 여기저기서 논란이 일자 추진위에 주민 동의를 받으라고 한 상태다.
이처럼 소녀상 문제는 역사기억의 차원을 넘어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빗줄기가 쏟아지던 지난달 28일 밤 기자가 목격한 트럭위에 실린 청동 소녀상은 고향을 그리며 이국만리에서 숨져간 80여년전 그 모습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있었다. 차가운 봄비가 무척 야속했다. “옷이라도 제대로 입혀주지…”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