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무거운 표정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재판과 관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검찰이 모두 항소하면서 앞으로 진행될 양측의 법정공방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신 회장은 최근 최순실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가 일부 인정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최씨와 연관된 그간의 다른 재판들을 들여다보면 최종판결을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 회장과 롯데의 운명은 어찌될까. (CNB=도기천 기자)
삼성재판·헌재판단 “기업은 피해자”
롯데 출연금도 큰 틀에서 같은 맥락
부당하게 면세점 탈락된 점 참작해야
신동빈 회장의 뇌물혐의 재판은 상당히 복잡한 양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슷한 사례임에도 항소심에서 상당부분 무죄가 선고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등이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2016년 5월 서울 잠실 월드타워점 면세점사업권 재승인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70억원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은 박 전 대통령과 경제공동체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실소유주다. 따라서 최씨를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당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총 53곳으로 출연금 규모는 774억원에 달한다. 삼성 204억, 현대차 128억, SK 111억, LG 78억, 포스코 49억, 롯데 45억, GS 42억, 한화 25억, KT 18억, LS 16억, CJ 13억, 두산 11억, 한진 10억, 금호아시아나 7억, 대림 6억, 신세계 5억, 아모레퍼시픽 3억, 부영 3억 등이다.
하지만 롯데 외의 다른 기업들은 뇌물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통해 일괄 모금됐고 대가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다.
검찰은 롯데의 추가출연금에만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최씨 재단에 추가 출연을 약속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약속만 있었고 실제 돈이 오가지 않았다는 점을 참작해 무혐의 처분했다.
이와 별개로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을 기소하면서 출연금 204억원 전액을 뇌물로 간주했지만, 1,2심 재판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의 성격을 “최고 권력자(박근혜)와 측근(최순실)이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해 사익을 추구한 행위”로 규정했다. 삼성을 사실상 피해자로 본 것이다.
▲서울 소공동 롯데 호텔 전경. (사진=연합뉴스)
삼성 판례 “묵시적 청탁 인정 안돼”
이런 과정과 판례는 롯데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낸 70억원이 삼성 재판의 경우와 마찬가지 논리로 ‘강압에 의한 출연금’으로 규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판결)하면서 그 행위를 ‘직권남용’으로 명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피청구인(박근혜)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였을 뿐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서 특검이 주장했던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점도 롯데에게 유리한 포인트다. 특검팀은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범주에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검찰이 비자금 조성이나 회계장부 조작, 내부자 증언 등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내놓지 못한다면 롯데 재판 또한 삼성 경우처럼 뇌물공여죄 적용이 힘들 수 있다. 삼성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던 ‘안종범 수첩’이 롯데의 1심 재판에서는 증거가 됐다는 점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열려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CNB에 “뇌물공여는 뇌물을 준 쪽과 받은 쪽 모두 대가성을 인지하고 있어야 성립되는데, 관련자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라 결정적 증거가 없다면 2심의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열린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는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삼성 재판에서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던 ‘안종범 수첩’이 이날 함께 열린 신동빈 롯데 회장의 재판에서는 증거로 채택돼 의문을 낳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상회복 요구가 ‘특혜’ 둔갑?
한편 재계에서는 롯데가 이렇게 된 상황 자체가 억울하다는 동정론도 나온다. 이번 재판의 불씨가 관세청의 면세점 심사표 조작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다.
관세청은 2015년 면세점 특허 심사 과정에서 계량 항목 평가 점수를 잘못 산정했고, 이로 인해 호텔롯데(롯데면세점)에 불리한 점수가 매겨졌다.
감사원의 지난해 감사결과에 따르면, 관세청은 2015년 7월 서울 시내 3개의 신규 면세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일부 계량항목의 점수를 부당하게 적용해 호텔롯데의 총점은 정당한 점수보다 190점 적게,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240점 많게 계산됐다.
2015년 11월 후속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도 롯데월드타워점 특허심사에서 2개 계량항목의 점수를 잘못 산정해 호텔롯데는 정당한 점수보다 191점을 적게 받아 두산(두타면세점)이 선정됐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시 관세청 실무자들이 해임 등 중징계를 받았지만, 관세청이 무슨 목적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는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롯데가 청탁혐의를 받게 된 결정적 원인(原因)이 됐다. 만약 당시 심사가 정당하게 진행됐으면 롯데가 탈락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후 재승인과 관련해 청탁혐의를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한 법무법인의 변호사는 CNB에 “롯데가 특혜를 바란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에 대해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70억 추가 출연)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며 “목적성의 원인이 부당한 심사 때문이었다면 이 부분이 재판의 키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국정농단 재판들을 종합해보면, 박 전 대통령이 최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해 기업들로부터 강제로 자금을 거뒀다는 게 핵심”이라며 “롯데 사건 또한 대가와 청탁이 아닌 국정농단이라는 범주에서 해석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