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삼성 총수 변동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 부회장이 작년 12월 27일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얼마전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가 총수로 지정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갈등을 빚은데 이어, 최근 공정위가 삼성과 롯데그룹의 총수를 바꾸겠다고 밝혀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삼성의 경우, 총수 지정 여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총수가 뭐길래 이리 소란스런 걸까. (CNB=도기천 기자)
삼성·롯데·네이버, ‘3인 3색’ 총수 논란
특검·공정위, ‘삼성총수’ 서로 해석 달라
네이버 이해진, 총수 자격 자체를 거부
공정거래법상 총수(동일인)는 기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을 의미한다. ‘사실상 지배 여부’는 지분율, 경영활동, 임원선임과 관련한 영향력을 고려해 판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총수=재벌’이라는 의미가 더해져 ‘재벌 총수’라는 단어가 정립됐다. 재벌의 사전적 정의는 ‘재계(財界)에서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 또는 오너 일가’다. 따라서 재벌 총수는 ‘오너 일가가 대주주이자 경영자인 기업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공정위는 오는 5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을 총수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내용이 담긴 2018년 공정위 업무계획을 지난달 26일 발표했다. 이는 국회에서 이건희·신격호 회장이 그룹의 실질지배자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총수는 ‘사실상 지배력’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공정위는 이건희 회장이 건강문제로 수년째 경영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 회장의 뒤를 이어 이재용 부회장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롯데 또한 신격호 회장이 작년 6월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배제됐고, 8월에는 롯데 계열사 중 마지막까지 등기임원 직위를 유지하던 롯데알미늄 이사에서도 물러나는 등 모든 이사직을 내려놨다는 점을 감안했다. 공정위는 해당 기업들에게 지배 구조를 확인하는 조사표를 보내는 등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이렇게 되면 삼성과 롯데그룹의 총수가 이건희·신격호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으로 바뀌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작년 연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국회청문회에 출석한 기업총수들. 오른쪽부터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회장, 조양호 한진그룹회장, 신동빈 롯데그룹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대표이사, 김승연 한화그룹회장, 구본무 LG 대표이사, 손경식 CJ 회장. (사진=연합뉴스)
특검 “경영권승계 청탁” VS 공정위 “이재용이 이미 총수”
하지만 이는 또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승계 작업을 청탁했다는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 총수 변동 여부가 재판의 변수가 될 수 있다.
특검은 삼성이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뤄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합병으로 인해 오너 일가의 삼성물산 지분율이 올라가게 돼 그룹 경영이 이전보다 쉬워진 된 반면 주주들은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같은 맥락에서 2016년 초에 있었던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 또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에 목적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삼성 측의 청탁이 있었다는 게 특검 주장이다.
그런데 이같은 특검의 논리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해서’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한마디로 삼성그룹의 총수가 되기 위해 청탁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공정위는 이번에 이건희 회장을 총수에서 제외했다. 이 의미는 이미 오래전에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이 승계됐음을 시사한다. 공정위 논리대로라면 청탁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은 작년 12월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특검이 말하는 경영권 승계라는 개념이 이해도 안가고 납득할 수도 없다”며 “본인은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이고, 후계 자리를 놓고 경쟁도 없다. 회장님 와병 전후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 없다. 왜 대통령에게 뇌물까지 줘가면서 승계를 청탁 하겠나. 인정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 또한 승계작업에 관한 내부 문건이나 자료가 전혀 발견된 적이 없고, 대통령 독대 이전에 이미 대내외적으로 삼성그룹 후계자로 인정된 점 등을 들어 청탁의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의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에 대한 총수 지정은 당시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이 창업자자(왼쪽)가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총수 의미 다시 세워야”
롯데는 총수가 바뀐다고 해서 삼성처럼 민감한 변수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신동빈 회장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해왔다는 점에서 총수가 바뀌더라도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 공정위에 의해 총수 자격을 잃게 된 신격호 회장이 과거 신동빈 회장과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 때 신동주 편에 섰다는 점에서 갈등의 불씨가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신동빈 회장이 그룹의 총수가 된다는 것은 형제간 분쟁이 사실상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신 전 부회장이 공정위의 총수 지정에 반발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앞서 있었던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의 총수 지정 논란은 삼성, 롯데의 경우와는 다른 차원이다. 이 창업주가 ‘총수’라는 자격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창업자는 지난해 8월 공정위가 자신을 총수로 지정하자 “총수로 지정되면 해외 경영활동에 지장이 있다”며 반발했다. 직접 공정위를 방문해 자신의 네이버 지분이 4%를 조금 넘는 수준인데다 순환출자도 없으며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어 다른 재벌체제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 창업주를 총수로 확정했다. 이 창업자가 경영과 임원선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향후 자사주를 이용한 우호지분을 10.9%까지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고 봤다.
재계에서는 이 창업자가 사내이사를 연임하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 총수 자격을 내려놓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이 창업자는 내달 19일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됨에도 현재까지 연임과 관련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회평론가 구병두 교수(서경대)는 CNB에 “삼성은 경영승계 문제가 청탁 혐의 재판까지 가게 됐고, 롯데는 총수자리를 둘러싼 분쟁을 겪었으며, 이해진 창업자는 이런 게 싫어서 아예 총수를 거부하고 있다”며 “각각 보면 다른 경우들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재벌 총수’라는 거대한 굴레에서 이런 논란이 비롯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련의 사안들을 거울삼아 기업들 스스로 총수에 대한 도덕적·사회적 의미를 다시 정립하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