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원하기
  •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 오탈자제보

[데스크칼럼] 아! 1987…‘민중 예수’는 어디갔나

  •  

cnbnews 도기천기자 |  2018.02.01 09:00:20

(CNB=도기천 편집국장) 어느덧 연말정산 시즌이다. 월급쟁이들은 각종 서류를 챙기며 한 푼이라도 더 환급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마트에서 컵라면 한 개를 사고도 현금영수증을 받기 위해 핸드폰번호를 누르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머릿속으로 ‘13월의 월급을 그려보며 희비가 교차하는 계절. 가난한 서민에겐 이 소박한 호사(好事)가 한파를 녹이는 온기가 된다. 

그런데 우울한 얘기가 있다. 종교인 과세 논란 50여년 만에 올해 첫 과세가 시행되지만 실상은 허탈하다. 

목사·신부·스님 등의 소득이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직장인에 비해 필요경비 공제 혜택이 훨씬 크다. 국세청의 간이세액표에 따르면 연소득 5000만원인 종교인(4인가구 기준)이 내는 세금(원천징수액 월 5만730원)은 근로소득자의 절반 수준(월 9만9560원)에 그친다. 

또 업무추진비(종교활동비)가 과세대상에서 제외됐다. 해당항목이 ‘종교활동에 사용할 목적으로 지급받은 금액 및 물품’으로 규정돼, 종교단체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 비과세 범위를 스스로 정하게 됐다. 매월 지급하는 종교인 급여를 활동비로 회계처리할 경우, 전액 비과세 된다는 얘기다. 

또 종교활동비를 구분해 기록·관리할 경우 세무조사를 면제받으며(시행령 222조2항), 설령 탈루가 발견되더라도 수정신고 할 수 있는 기회(시행령 222조3항)를 준다. 이는 사실상 ‘세무조사 열외’라는 의미로 읽힌다.

종교인 과세가 이처럼 누더기가 된 데는 기독교 교단의 책임이 크다. 카톨릭과 불교는 그나마 과세를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개신교는 그렇지 않았다. 

‘공평 과세’하라는 사회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종교인과세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이라며 반발해왔고, 이에 부담을 느낀 정치권이 있으나마나한 어정쩡한 세법을 만든 것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이런 특혜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 시위에서 최루탄에 피격당한 스물두살 이한열의 모습. 그는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당시 로이터통신 정태원 기자가 촬영, 이한열기념사업회 제공)


1987 속 교회는…

영화 ‘1987’이 혹한을 녹이고 있다. ‘꼭 봐야 될 영화’로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이 700만명을 넘어섰다. 영화 속 교회는 공평과세를 거부하고 있는 오늘날 교단의 모습과 대비된다.  

당시 기독교는 유신 이래 반독재 투쟁의 최전선에 있었다. 한국교회의 일치운동을 기치로 내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군부독재로 고통 받는 빈민·농민·노동자의 벗이었다.  

서울 종로의 기독교회관은 고통 받는 이들의 피난처였고, 노동단체와 재야인사,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구심이었다. 87년 6월 항쟁을 이끈 ‘민주헌법쟁취범국민운동본부’(국본)는 개신교 목사들이 주축을 이뤘다. 

기독교는 극심한 산업화로 인한 도시빈민 문제에도 적극 나섰다. 70~80년대 도시산업선교회는 노동자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대표적인 기독교 단체다. 이른바 ‘야학(夜學) 운동’을 통해 전국단위의 도시빈민·노동자 소모임을 결성해 군부정권과 맞섰다. 15~16살 어린 여공들이 하루 15시간 노동에 지쳐 학업을 포기했을 때 손을 잡아준 게 야학이다. 

주일학교 교사였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자결 했고 이 죽음은 한국 기독교가 반독재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기폭제가 됐다. 대학가에서는 예수의 십자가를 고통 받는 민중 속에서 실천하자는 해방신학이 들불처럼 번졌다.  

영화 속 김정남(설경구 분)의 피난처였던 향린교회는 당시 각종 시국성명이 발표된 민주화운동의 대표적인 공간이었으며,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박종철·이한열 등 민주열사들의 이름을 외치던 문익환 목사는 그 시절 기독교운동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문 목사 외에도 박형규 김상근 등 수많은 목사들이 전두환 정권에 맞서 항쟁을 이끌었다. 교회는 그야말로 억눌린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였고, 2000년전 ‘맨발의 예수’가 부활한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교회는 ‘욕심이 잉태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해 사망을 낳는(약1:15)’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형교회들의 세습과 과세 거부는 이런 모습의 대표적인 예다.
      
부디 한국교회가 다시 낮은 자리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청년들은 헬조선을 외치고,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N포세대(N가지를 포기)라는 신조어가 일상이 된 이 삭막한 시대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위로해주는 교회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필자는 아직도 “사회법 위에 영적 제사법 있다”며 3000억짜리 불법건축물을 지은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와, 군부정권에 항거하다 6차례에 걸쳐 11년 4개월간 옥고를 치른 고(故) 문익환 목사가 믿었던 예수가 다르지 않다고 믿고 있다.  
  
(CNB=도기천 편집국장)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