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주요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최태원 SK 회장(왼쪽)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당시 주된 화두는 ‘사회적기업’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 회장이 최근 청와대와 자주 접촉하면서 SK그룹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10만 사회적기업론’이 주목받고 있다.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경제’가 최 회장의 ‘사회적기업’과 교감을 이룬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CNB가 둘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봤다. (CNB=도기천 기자)
최태원표 ‘사회적기업’ 文정부와 교감
靑 접촉 배경에 SK의 사회기여 작용
문재인표 ‘사람 경제’와 시너지 예상
문재인 정부 들어 최태원 회장만큼 주목받는 재계 인사는 없다. 최 회장은 작년 연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랍에미리트(UAE)에 특사 자격으로 방문하기 직전에 임 실장을 만나 각종 경제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2일에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구본준 LG 부회장과 함께 청와대 신년인사회에 재계 대표격으로 참석했다.
특히 8일에는 방한 중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과 만찬 회동을 가져 큰 화제를 낳았다. 칼둔 청장은 우리 기업들이 진행 중인 UAE 사업의 키를 쥔 핵심인물이기 때문.
더구나 칼둔은 임종석 비서실장의 UAE 특사 방문을 두고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야3당이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때에 방한해 의혹을 해소할 핵심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최 회장이 그를 만난 과정에는 청와대와의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야권은 한술 더 떠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최 회장과 독대했을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최 회장이 뉴스의 초점이 된 데는 표면적으로는 SK그룹이 추진 중인 중동사업이 배경이 되고 있다.
SK그룹은 계열사별로 중동에서 건설, 에너지, 유통, 해운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예멘 등에서 석유개발과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SK건설은 터키 보스포러스해협 제3대교 건설·유라시아 해저 터널 공사와 함께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도 플랜트 공사를 하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3월 문종훈 당시 사장이 이란, 사우디, 두바이 등을 방문한 데 이어 같은해 말 상사 부문 내에 중동사업부를 신설했다. 자원 수송 전문 선사인 SK해운은 원유 및 석유제품 수송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오픈 마켓 11번가를 운영하고 있는 SK플래닛(SK텔레콤 자회사)도 중동에서 통신·유통 부문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SK그룹이 중동 사업 확장을 위해 현지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는데, 이 점이 청와대와의 연결고리가 됐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최태원 SK회장이 지난해 10월 이천 SKMS연구소에서 ‘함께하는 성장, New SK로 가는 길’을 주제로 열린 ‘2017년 SK CEO세미나’에서 사회적기업 가치 창출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사진=SK제공)
사회적기업 ‘일자리 창출’ 돌파구
하지만 청와대와의 관계에는 좀 더 깊은 사연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중심 경제가 최 회장의 사회적기업 이론과 접점을 찾았다는 점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수출대기업 지원 중심’의 성장 전략을 ‘사람 중심의 소득주도 성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정부→대기업→중소·벤처’ 순으로 내려가는 수직적 구조의 산업생태계를 ‘사람(노동자)’을 중심에 두는 쪽으로 급속히 재편하고 있다. 일자리 안정 등 삶의 질을 높여 경제를 선순환 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양질의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 최저임금제 보장,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보호,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유지돼온 노동시장 유연화 기조를 전면 수정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지난 정부에서 대기업들에게 법인세 인하 등 많은 혜택이 돌아간 만큼, 지금부터는 성장의 열매를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이 나눠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10만 사회적기업 창업’을 장기 비전으로 삼고 있다. 10년 안에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시장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5%,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은 1700여개에 불과하다.
최 회장은 ‘사회적기업 10만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회성과 인센티브’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지난 2014년 자신의 저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에서 이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사회성과 인센티브가 도입되면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사회적기업의 가장 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성과 인센티브를 제안하는 이유는 사회적기업이 경제적 자립을 위해 쓰는 노력을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는데 좀 더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데 있다. 사회적기업이 본래 목적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듦과 동시에 적자를 흑자로 전환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을 고민하다가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많이 하는 기업에게 상을 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만 된다면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딜레마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저서 125페이지)
‘사회성과 인센티브’는 한마디로 사회적기업이 만들어 낸 ‘착한 일’에 비례해 금전적인 보상을 주는 제도다.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사회적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재무적 부담을 덜어줘 보다 많은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데 매진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발상이다.
그가 여기에 집착 하는 데는 빈부격차와 실업 등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 사회적기업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2009년 연세대에서 열린 포럼에 우연히 참석해 사회적기업의 개념을 처음 접했다. 당시 포럼에서 최 회장은 무릎을 쳤다고 한다.
▲최태원 SK회장이 지난 2일 SK그룹 신년회에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더블 바텀 라인(Double Bottom Line)’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SK제공)
최태원式 ‘사회성과 인센티브’ 속도
SK그룹은 최 회장의 뜻에 따라 여러 분야에서 이 이론을 실천하고 있다.
작년 연말에는 SK그룹이 SK행복나눔재단과 KEB하나은행과 손잡고 사회적기업 투자를 위한 국내 최초 민간펀드인 ‘사회적기업 전문사로 투자신탁1호’를 개설했다. 이미 100억원대 시드머니(종잣돈)가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행복교복 실버천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는 경기도 이천시 중고교 및 행복교복센터 매장을 통해 무상 기증받은 교복을 수선해 새제품의 10% 가격으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교복 수거, 세탁, 수선, 판매 등 운영의 대부분은 65세 이상의 어르신을 통해 이뤄져 노년층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매년 해오던 ‘김장 나눔’에도 2015년부터는 ‘사회적 경제’의 의미를 부여했다. 작년 연말에는 8개 사회적기업이 생산한 김치 5만6000포기를 구매한 뒤, 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를 통해 전국 1000여개 사회복지기관과 취약계층에게 전달했다.
이밖에도 SK는 매년 100여개 안팎의 사회적기업을 선정해 ‘사회성과 인센티브’ 형태로 50억원 가량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해 이에 비례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 2일 신년회에서 “SK는 지난 20년간 200배 성장했지만 여전히 ‘올드 비즈니스’ 수준에 안주하고 있다”며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더블 바텀 라인(Double Bottom Line)’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이런 모습은 상생과 사람중심을 국정철학으로 갖고 있는 문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아 보인다.
실례로 최 회장은 지난해 7월 열린 청와대 주최 기업인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에게 사회적기업인 ‘전주빵카페’ 사례를 들었는데, 문 대통령은 이에 호응하며 SK의 사회적기업 성과에 대해 묻는 등 관심을 보였다.
최 회장이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부지원을 요청하자 문 대통령은 “지원 법안을 정부가 적극 추진하겠다”고 즉석에서 답하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다른 그룹 총수들과는 주로 경제현안에 대해 담소를 나눴지만 최 회장과는 이 사안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여러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최 회장이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이 문재인 정부에서 속도를 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본격화되면 일자리 창출과 상생의 새로운 모델이 될지 주목된다.
한국재벌사연구소 이한구 소장(수원대 명예교수)은 CNB에 “최태원 회장의 최근 행보를 중동 사업의 잣대로만 해석한다면 그의 그릇을 너무 작게 보는 것”이라며 “최 회장이 정체된 사회적기업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들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어떻게 해야 이윤을 창출하면서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가에 대한 더 심도 깊은 연구와 실천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