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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박원순發 한양도성 복원사업 ‘위기’…법원 “재개발 방해 말라”

‘재산권 우선’ 인정…파장 일파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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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8.01.04 11:20:56

▲CNB가 단독입수한 판결문.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15일 “서울시의 정비구역(재개발) 직권 해제를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서울시가 ‘한양도성 성곽 복원사업’을 이유로 중단시킨 ‘종로구 사직2구역 재개발’에 대해 최근 법원이 “서울시 조치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사직2구역 뿐 아니라 같은 이유로 중단된 옥인1·충신1구역 등 성곽 인근 재개발이 다시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반면 서울시는 ‘법리(法理)를 무시한 일방통행식 행정을 강행했다’는 비난을 면키 힘들게 됐다. (CNB=도기천 기자)

한양성곽 유네스코 등재로 개발 중단
法 “시의 개발사업 해제 무효” 판결 
손해배상청구·사업재추진 등 ‘후폭풍’

CNB가 단독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15일 사직2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이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정비구역해제고시 무효 확인의 소’에 대해 “정비구역 해제를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또 같은 취지로 종로구가 시행한 ‘조합설립인가 취소처분’에 대해서도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도시정비법상 문화재 유무는 조합설립인가나 사업시행인가의 요건이 아니다”며 “역사·문화적 가치 보전이라는 사유는 정비사업의 추진과 직접적인 법률상 관계에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시했다. 

관련법에 따르면 허가권자가 사업시행인가를 조정(변경)할 수 있는 경우는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정비구역 주변지역에 주택이 현저하게 부족할 경우 ▲주택시장의 불안정이 발생하는 경우 등이다. 또 정비사업이 당초의 사업시행계획이나 관리처분계획을 위반할 경우, 국토부장관이 인가권자 및 시행자에게 사업 취소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의 한양성곽 복원사업은 이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서울시의 사업시행인가 취소로 개발이 중단된 ‘종로구 사직2구역’ 모습. (사진=도기천 기자)


이번 재판은 서울시가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던 사직2구역에 대해 직권으로 사업을 해제하면서 비롯됐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작년 3월 성곽마을인 충신1, 경희궁과 한양도성 옆인 사직2, 서촌과 인왕산 근처인 옥인1구역에 대해 ‘역사문화가치 보전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개발을 중단시켰고, 이에 사직2구역 조합은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사직2구역 재개발은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311-10번지 일대 3만4268㎡의 대지에 5~15층 규모의 공동주택 12개동을 신축하는 사업이다. 2012년 종로구로부터 사업시행 인가를 받았으며, 이듬해 10월에는 신축건물의 세대수를 456세대에서 486세대로 늘려 사업시행 변경인가 공람 절차를 마쳤다. 시공은 롯데건설이 맡기로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2013년 11월 조합 측에 설계변경을 요구했고, 이후 사업은 지연됐다. 

당시 시가 개발에 제동을 건 데는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작업’이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2012년 11월 한양도성이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올랐고, 이에 고무된 서울시는 총 연장 18.627km의 성곽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복원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인가가 난 재개발사업이 중단된 것이다. 

이에 조합 측은 국민권익위원회와 감사원에 민원을 넣었고, 권익위는 2015년 3월 “개발사업이 성곽 복원사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며 사업시행을 조속히 결정하라고 허가권자인 종로구에 통보했다. 감사원도 비슷한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시와 종로구는 권익위와 감사원의 결정을 이행하지 않았다. 유네스코에 한양도성을 등재하는 일이 재개발 보다 급했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시는 개발사업 해제를 결정했고 이번 재판이 벌어진 것이다. 

▲종로구 사직2구역 전경. 50~60년 이상 된 노후한 주택들이 위태롭게 서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비슷한 사례 줄소송 가능성  

이런 곡절 끝에 시가 조합에 패소함에 따라, 우선 배상 문제가 불거질 전망이다. 

현재 조합은 시의 사업 해지로 해산 절차를 밟고 있는데 그동안 소요된 매몰비용이 선교사부지 매입비, 이자, 조합운영비 등 약 35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는 검증위원회를 통해 검증된 비용만 100%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라 갈등을 겪고 있다. 

더 나아가 조합 측은 이번 판결을 근거로 매몰비용 뿐 아니라 개발 중단에 따른 손실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조합원 정영미씨는 3일 CNB에 “시의 부당한 사업방해로 재개발이 중단됐다는 게 이번 판결로 밝혀진 만큼, 시와 종로구를 상대로 조만간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 하겠다”고 밝혔다. 

중단된 재개발이 다시 추진될 지도 관심사다. 사직2구역의 경우 다시 사업시행인가를 낼 계획이다. 옥인1·충신1구역 등도 사업 재개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최근 서울시 직권해제로 사업이 중단된 성북3구역 조합관계자는 “사직2구역이 승소한 만큼 우리도 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등재가 무산된 점도 재개발 추진에 힘을 싣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작년 3월 사전심사에서 한양도성에 ‘등재 불가’ 판정을 내렸다. 한양도성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다른 도시 성벽과 비교했을 때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성이 600년간 유지됐지만, 행정적으로만 관리돼 역사적 전통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문화를 내세운 도심 규제의 근거가 사라졌지만 서울시는 2019년에 한양도성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이라 개발이 순조로울 지는 의문이다. 

시 관계자는 CNB에 “유네스코 등재계획은 변함이 없으며, 이번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한 상태”라며 “재개발 보다는 주민 의견을 수렴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쪽으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발이 지연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이들은 해당 지역 주민들이다. 사직 2구역의 경우 50~60년 이상 된 노후한 주택들이 200여채에 이르는데 이중 절반 가량이 비어있는 상태다. 남은 주민들은 안전사고 위험 뿐 아니라 빈집들이 방치되면서 치안 사각지대에 놓였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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