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격동의 한해였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시작된 부조리의 단면이 정경유착과 헌정유린으로 본 모습을 드러내면서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이게 나라냐”며 들어 올린 촛불이 천만 개가 넘었고, 촛불은 마침내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사상초유의 무혈혁명이었다. 이 혁명은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지금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CNB가 위기와 도전의 교차로에 선 2017년을 ‘CNB의 기획보도’를 중심으로 다시 돌아봤다. (CNB=도기천 기자)
‘천경자 미인도’ 신군부 조작 의혹 단독 제기
CNB가 7개월에 걸쳐 취재·보도한 ‘미인도의 실체’가 올해 벽두(1월 21일)에 SBS ‘그것이 알고싶다’(1061회-암살범의 압수리스트, 미인도와 김재규)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CNB는 미인도가 5공 신군부에 의해 가공됐을 가능성을 언론최초로 제기하는 등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사건의 실체를 심층 보도한 바 있다.
CNB 보도를 통해 미인도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10.26사건)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부정축재자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탄생했음이 밝혀졌고, 김재규가 역사적으로 재평가 받는 계기가 됐다.
미인도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그들이 왜곡한 역사의 한 쪽을 바로잡는 일이자, 각기 다른 영역에서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두 사람(김재규·천경자)을 복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인도 앞에 놓인 벽은 높고 두껍지만 반드시 무너뜨려야하는 벽이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면세점 고시 개정 의혹’ 단독보도
헌법재판소는 올해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을 내렸다. 탄핵심판을 통해 현직 대통령이 탄핵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CNB는 대통령을 탄핵에까지 이르게 한 불행한 사태의 본질이 재벌과 권력 간의 유착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K·미르스포츠재단과 대기업들 간의 연결고리를 집중 보도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이 설립되던 시기에 관세청의 면세점 고시가 개정된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법원의 구속 연장에 반발해 재판을 ‘보이콧’ 하고 있다. 사선 변호인도 총사퇴했다. 법원은 국선 변호인 5명을 지정해 궐석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박정희 동상’ 논란의 숨겨진 진실 심층취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지난 11월 서울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려다 주민들과 큰 갈등을 빚었다.
CNB는 사건의 전개과정 뿐 아니라 동상 파문을 계기로 불거진 시와 재단 간의 해묵은 갈등, 박정희기념·도서관이 문을 연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념관 용도로만 쓰이고 있는 이유 등을 수차례에 걸쳐 심층보도 했다.
이를 통해 동상 논란의 본질이 역사평가 논쟁을 넘어 서울시의 우유부단한 행정적 태도, 재단의 절차를 무시한 일방적인 행동에 원인이 있음을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주거복지로드맵’ 허점 수차례 기획보도
정부가 ‘공기업 경영정상화’와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다 실기(失機)한 부분을 여러 차례 보도했다.
특히 대통령 공약사항이기도한 ‘공공임대 분양전환 제도’의 개선이 LH공사의 반대로 끝내 지켜지지 못한 이유를 깊이 있게 들여다봤다. 부채덩어리인 LH공사의 경영정상화와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명제를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정부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게 됐고 결국 LH공사의 손을 들어주게 된 것이다.
CNB는 5년공공임대와 10년공공임대, 신혼희망타운, 공공지원 민간임대 등 각기 다른 유형의 임대주택에 일관된 기준을 정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발표한 ‘주택 100만호 건립’이 서민들에게 공수표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연중기획-문화가 경제> 80회 돌파…기업문화에 경종
CNB가 작년 가을부터 기획보도한 <연중기획-문화가 경제>가 80회를 돌파했다. 80회를 넘긴 연재물은 언론사(史)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CNB는 전통적인 ‘사회봉사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문화를 매개체로 사회공헌을 실천하는 ‘메세나(Mecenat)’ 활동을 비롯, 사업 특성별로 다채로운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을 매주 선정해 취재·보도했다. 이를 통해 여러 기업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소중한 가치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자” <연중기획-정치와 기업> 연재
70년 정당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정치는 대기업과의 각종 스캔들로 얼룩져 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도해온 일해재단이 전두환 정권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고, 1995년에는 전두환·노태우의 대선 비자금 사건에 휘말려 총수들이 줄줄이 법정에 섰다. 1997년 대선 때는 23개 대기업이 166억원의 정치자금을 냈다가 적발됐으며, 2002년 대선 때는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터졌다.
이 같은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역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촛불민심은 재벌개혁을 적폐 청산의 1순위로 꼽고 있다.
이에 CNB는 문재인 정부 출범에 즈음해 새 연재물 <연중기획-정치와 기업>을 시작해 현재 27번째를 맞았다. 그동안 금피아(금융+마피아) 문제를 비롯, 낙하산 인사, 금산분리, 주주권강화 등 재벌과 금융권의 적폐를 지적하고 정치권이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을 호소해왔다.
3년 만에 모습 드러낸 세월호…언론 기능 다시 정립한 계기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맹골수도에서 침몰한 세월호가 침몰 해역에서 끌어 올려져 3년 만인 지난 4월 11일 목포신항으로 옮겨졌다. 이후 7개월간 이 배를 수색한 결과, 단원고 조은화·허다윤 양, 고창석 교사, 이영숙 씨의 유해를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단원고 박영인·남현철 군, 양승진 교사, 부자지간인 권재근 씨와 혁규 군의 유해는 꿑내 찾지 못했고, 가족들은 ‘유해 없는 장례’를 치렀다.
국회는 조만간 ‘제2기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박근혜 정권의 방해로 중단된 조사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세월호 사건은 ‘가치·생명·인간’을 뒤로 한, 관피아(관료+마피아)와 안전불감증, 상업주의 언론이 낳은 총체적 대참사였다. CNB 또한 기성언론으로서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못했던 점을 깊이 반성하며, 사회적 약자·억눌린 자의 편으로 방향타를 새로 설정하게 된 계기가 됐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 적폐청산 ‘속도’
지난해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올해 5월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장미가 만개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장미 대선’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대선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5파전으로 치러졌으며 문재인 후보가 41.08%의 득표율로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가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했으며, 혁명은 현재진행형”이라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 7월부터 5개월 넘게 전 정권을 겨냥해 숨 돌릴 틈 없는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CNB는 이 과정과 배경 등을 낱낱이 보도하고 있다.
중국發 사드 후폭풍…겨우 ‘반쪽 봉합’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한중 양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갈등을 거듭했다. 양국 갈등은 지난 3월 사드 발사대 2기가 오산 기지로 들어오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중국 정부는 3월 15일부로 한국 단체 관광을 불허하고 자국 내 한국상품 판매를 제한하는 등 한한령(限韓令·한류 및 단체관광 제한령)을 발동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롯데·신라면세점, 한국콜마, 아모레, LG생활건강, 롯데쇼핑 등 항공·유통사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한 롯데마트는 결국 지난 9월 중국 롯데마트 전면 철수를 결정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될 즈음인 지난 10월, 물밑 교섭을 통해 출구 모색에 나선 끝에 중국으로부터 “한중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12월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한중정상회담을 가지며 중국을 달랬다.
중국은 베이징(北京)과 산둥(山東) 지역 여행사들에 한해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하기로 했지만, 롯데호텔 숙박이나 롯데면세점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해 한국기업의 피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우리 정부가 언급한 ‘3불’(사드 추가배치 불허-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한미일 군사동맹 부정)의 ‘이행’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북핵 위기 고조…北·美 사이에 낀 한반도
북한은 올들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을 이어가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올해에만 총 15회, 20발의 탄도미사일 도발을 강행했다. 특히 9월 3일에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코리안 패싱’이 현실로 나타나는 등 사태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앞세우고 있지만 본토를 겨냥한 북한의 위협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대북 군사옵션을 거론하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감은 계속되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