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 박계희 여사의 타계 20주기를 추모하는 전시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5일까지 워커힐미술관 전신인 워커힐 호텔 아트홀에서 열렸다. (사진=선명규 기자)
워커힐미술관을 설립한 고(故) 박계희 관장 20주기 기념전이 열렸다. 젊은 작가 발굴, 제3세계 미술 소개 등 국내 메세나 운동 선구자로 꼽히는 박 여사의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 이 전시를 개최한 아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억(Memory)’이란 이름을 내걸고 그를 추억했다. 지난 5일까지 그랜드워커힐 서울 호텔 아트홀(워커힐미술관 전신)에서 진행된 현장에 CNB가 다녀왔다. (CNB=선명규 기자)
‘앤디 워홀’ 국내 처음 소개
14년 동안 138회 전시 열어
젊은 작가 발굴·육성 발판 마련
‘기억’展은 우란(友蘭) 박계희 여사와 그의 예술사(史)를 되짚는 여정이다. 예술로 점철된 박 여사의 생애 중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워커힐미술관과 동행한 시기(1984~1997년)를 안내하며, 찬찬히 시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고조시킨다. 걸음걸음에는 예술 전반과 예술인에 미친 그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전시 공간은 크게 네 개로 이뤄졌다. 대주제로 나누면 특징적 ‘시기’와 생애 중 인상적 ‘장면’으로 다시 갈린다.
워커힐미술관 개관 전시인 ‘60년대 한국 현대미술-앵포르멜과 그주변’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 ‘1980년을 만나다’, 본격적으로 국내 젊은 작가 육성에 발걸음을 내디딘 ‘1990년을 만나다’는 연대기로 재구성한 섹션. 동양 미술에 관심 갖게 된 배경과 미술관 개관 이후 활동 모습이 담긴 ‘우란 박계희 여사, 동양 정신을 만나다’, ‘박계희 여사를 그리다’는 포착 지점이다.
▲총 4개 주제로 꾸며진 전시 중 '1980년을 만나다' 전경(사진 위)과 박계희 여사와 워커힐미술관의 역사가 담긴 사진들(아래). 가운데 아래 부분에 있는 1984년 당시 '앤디 워홀'전의 브로슈어가 눈에 띈다. (사진=선명규 기자)
전시를 통해 백남준, 이우환, 박서보,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그가 소장했던 대가들의 작품 90여점이 관객과 만났다. 일부 공간에서는 워커힐미술관을 거쳐 간 앤디 워홀을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전시 당시 브로슈어도 엿볼 수 있어 색다른 재미를 더했다.
박계희 여사를 추억하는 자리인 ‘기억전’은 그의 얼굴로 시작해 얼굴에서 머물렀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초상화에서 처연한 표정으로 맞이하다 막바지에 흉상으로 재등장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예술사에 오롯한 흔적을 남긴 박계희 여사의 여정은 옛 워커힐미술관 터에서 다시 한 번 아로새겨졌다.
예술계 代母 ‘메세나를 깨우다’
박 여사는 1953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 베네트 칼리지, 미시건 칼라마주대학교에서 수학했다.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과 결혼 후에도 미술사, 동양사 등을 공부해오다 1984년 워커힐미술관을 설립했다. 한국 사설미술관 1세대로 불리며 14년 동안 138회 전시를 열 정도로 활발히 활동했다.
국내 메세나(Mecenat.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운동의 시작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지금은 활발해졌지만, 용어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에 그룹전에서 개인전이란 획기적 전환으로 가능성 있는 작가 발굴과 육성에 물꼬를 텄다. 박길웅을 시작으로 황규태, 우제길, 정영렬, 한규남, 박철, 심영철, 이정희 등이 거쳐 갔으며, 이들이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시장을 돌아나오는 막바지에 마련된 박계희 여사 흉상(사진=선명규 기자)
세계 미술의 다양한 조류도 소개했다. 국제적인 미술가들의 개인전을 통해서다. 1984년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을 국내 관객에 처음 소개한 것이 대표적. 이후 아르망, 베티 골드, 피에르 알레친스키, 데니스 오펜하임, 안토니 카로, 케테 콜비츠, 루이스 부르주아 등 한국에서 보기 힘들던 작가들을 만나는 자리를 주선했다.
1980년대 당시 접하기 어려웠던 국가와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인 공적도 있다. 비교적 익숙했던 미국과 서유럽에서 벗어나 콜롬비아, 헝가리, 폴란드 등 제3세계 예술을 들여와 소개했다.
‘기억’전을 개최한 최태원 회장은 “워커힐미술관과 박계희 관장을 추억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전시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문화 인재를 키우고 육성하고자 한 어머님의 생전 모습을 되돌아보고 그 뜻을 우리 세대에서 잘 이어갈 수 있도록 다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