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왼쪽)과 반다비.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1월 중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을 두 달 남짓 남기고 '평창 롱패딩'이 큰 화제였다. 거위털 80%와 오리털 20% 비율로 제작된 패딩 점퍼이면서도 14만 9천 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호평받으며 생산 물량 3만 벌이 5주 만에 품절됐다. 물건이 들어온다는 날에는 몇천 명이 밤새 백화점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롯데쇼핑이 기획한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상품 중 가장 크게 히트했을 뿐 아니라 관련 뉴스가 주간 경제뉴스 중 가장 많이 조회된 뉴스로 꼽힐 만큼 대중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평창 롱패딩 신드롬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한 것일까? 이번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흥행 결과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 현상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도 좋을까?
기자는 SNS와 경제적 현상의 관계를 살펴보는 기사를 준비하면서 평창 롱패딩 신드롬이 시작되고, 확산된 경로로 여겨지는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수많은 게시물과 댓글들을 들여다봤다. 그 결과 '평창 롱패딩' 신드롬은 평창 올림픽과는 별로 관계없는 '한정판 신드롬'에 더 가깝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평창 롱패딩 품절까지의 과정은 과거 하얀 국물 라면, 짬뽕 라면, 허니버터칩, 유자맛 소주 등이 인기를 끌었던 때와 많이 닮아 있었다.
따뜻한 롱패딩은 이미 몇 년째 겨울마다 유행하고 있었고, 연예인 중에서도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특히 많이 입고 다니면서 10대 청소년 및 20대 청년들 사이에서 꼭 가지고 싶은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올겨울 교복 위에 입고 다닐 한 벌의 방한복을 사야 한다면, 따뜻함은 기본이고 기왕이면 아이돌과 친구들이 입고 다니는 롱패딩을 사고 싶다는 학생층의 소비 욕구가 가장 크게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롱패딩 중 충분한 상품성을 갖춘 패딩은 모두 수십만 원대. 아이들이 용돈이나 알바비를 모아 사기에 부담스럽고, 학부모에게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11월 30일 서울 시내 한 롯데백화점 지점의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품 팝업매장에서 평창 롱패딩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럴 때, 평창 동계 올림픽이라는 이름을 달고 10만 원대 거위털 롱패딩이 나왔다. 미덥지 못할 만큼 저렴한 가격이지만 롯데쇼핑과 평창 올림픽이라는 브랜드가 품질에 대해 신뢰를 하게 해준다.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흡족할 만한 디자인은 아니라 해도 무난함이라는 미덕은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50만 원이 넘는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제품의 대안으로 더할 나위 없다.
3만 벌이나 팔렸는데, 밤 워 어렵게 구한 롱패딩 입고 올림픽 구경 가자는 구매 후기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2002년, 붉은 악마 티셔츠의 구매 이유가 월드컵 거리 응원에 입고 나가기 위해서였던 때와는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결국 '평창 롱패딩'에 대한 관심과, 이어진 폭발적인 소비는 완전하게 '의류 시장'이라는 영역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 안에서 끝이 났다. 그 열기가 다른 곳으로 옮아갈 여지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평창 롱패딩 신드롬으로 인해 평창 동계 올림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전보다 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롱패딩 소비가 올림픽 경기 티켓 소비로 이어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보려면 평창에 가야 한다. 평창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평창에 가서 숙박을 해야 할 상황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엄청나게 비싼 숙박비가 많은 이들의 경기 관람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각종 숙소 예약 전문 사이트 및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해 본 올림픽 기간 평창 일대 숙박시설 이용료는 비수기 요금보다 10배 이상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평창 한 모텔의 일반실은 비수기 5만 원에 불과하지만, 올림픽 기간에는 1박에 50만 원이 넘게 책정되어 있다. 4인실, 6인실 등을 보유하고 저렴한 요금을 내세워 젊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한 게스트하우스조차 이층침대 한 칸의 1박 요금이 8만 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 1만 5천 원 정도에 불과하던 곳이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과 주변 전경. (사진 = 연합뉴스)
바가지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평창지역 일부 숙박업소들은 숙박료를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선언하고, 다른 업소들의 동참을 권유하고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물들어올 때 노 젓듯 한 철 바짝 벌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업주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올림픽 티켓 판매는 올해 2월부터 시작됐으나 10월 말까지 판매율이 30% 정도에 불과했다. 11월 들어 예매가 급증해 50%를 넘겼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이는 각 지방자치단체, 공·사기업, 각급 학교가 단체 구매에 나선 덕분이다. 국내외 개인 관람객의 티켓 예매율이 높아졌다는 근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평창 롱패딩을 득템하는 데 성공한 3만 명의 승자 중 실제로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관람 인증샷을 찍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들 대다수는 초겨울 백화점 앞에서 줄을 선 채 열 몇 시간을 인내한 사람들이다. 그 인내의 가장 큰 이유는 평창 롱패딩의 뛰어난 가성비였다. 14만 9천 원짜리 롱패딩 한 벌을 사려고 그 고생을 한 사람들에게 1박 30만 원 숙박비가 가당키나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