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지역 부호 100위권에 포함된 한국인들. (왼쪽부터) 김정주 넥슨 창업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사진=연합뉴스, CNB포토뱅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주가 상승 덕에 전세계 부호 40위권에 진입하고, 변호사를 폭행해 물의를 빚고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김동선(28)씨가 열손가락 안에 드는 ‘청년 주식부자’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새삼 재벌가 주식 부호들이 주목받고 있다. 올 초부터 계속된 코스피 급등으로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이 1천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이들의 자산도 크게 늘었다. ‘금수저’를 넘어선 ‘다이아몬드 수저’들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금수저도 명함 못 내미는 ‘그들 세상’
코스피 급등하며 자산가치 크게 늘어
부 쏠림 갈수록 심각, 제도개선 필요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자산 상위 10대 그룹(공정거래위원회의 올해 기업집단 지정 기준) 계열 상장사의 시가총액은 지난 10일 기준 약 1005조원으로, 작년 말 750조9천억원에 비해 33.9%나 증가했다. 이는 전체 시총(1905조원)의 53% 규모다.
작년 폐장 때(12월29일) 2026포인트였던 코스피 지수는 현재 2537(23일 종가기준)로 25.2% 증가했다. 코스피 상승폭 보다 10대 그룹 상장사들의 주식이 더 크게 오른 것이다.
그룹별로 보면 삼성그룹 시총은 작년 말 394조8천억원에서 현재(10일 종가기준) 561조8천억원으로 167조원(42.3%)이 늘었다. SK그룹(90조3천억원→130조9천억원)과 LG그룹(74조7천억원→106조2천억원)도 각각 40조6천억원(45.0%), 31조5천억원(42.2%) 증가했다. 증가율로만 따지면 현대중공업 그룹의 시총(12조4천억원→18조9천억원)이 무려 52.1%(6조5천억원)나 늘어 가장 높았다.
4차 산업혁명 바람을 타고 정보통신(IT) 관련주가 세계적으로 강세를 보인데다가 반도체 경기 호황을 맞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 덕분이다.
이건희 회장, 세계 부호지도 바꿔
이같은 활황에 힘입어 재벌가(家) 주식부호들의 자산도 크게 늘었다.
한국거래소의 지난 9월말 집계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주식 보유액 상위 100명의 주식 평가액은 110조2003억원으로 지난해 말 90조7721억원보다 21.4%나 증가했다. 이후 코스피가 계속 상승했다는 점을 감안하며 현재는 자산이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주식평가액과 상승분 모두에서 나란히 1·2위를 기록했다. 이 회장과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주가가 작년 말 대비 50% 가까이 급등하면서 보유주식 평가액이 8조원 넘게 늘었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전자 주식 498만여주(3.82%)를, 이 부회장은 84만여주(0.64%) 갖고 있다.
이들의 자산이 크게 늘면서 세계 부호 순위도 바뀌었다.
미국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이 회장의 순재산은 222억 달러(약 24조4천89억원)로, 전 세계 부호 가운데 37위를 기록했다. 작년 초 86위였던 이 회장은 올해 들어 60위권으로 뛰어올랐으며 지난 7월 50위권에 진입하는 등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외에도 삼성생명보험, 삼성물산 등의 주식을 갖고 있으며, 현금·기타자산도 8억5천만 달러(9257억)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 주가 급등 등으로 주식평가액과 상승분 모두에서 나란히 1·2위를 기록했다. 이 회장은 전 세계 부호 37위에 올랐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 회장 외에도 익숙한 이름이 여럿 나온다. 아태 지역 부호 100위권에 포함된 한국인은 모두 8명이다. 이들 모두 올해 보유지분 가치가 상승해 재산이 평균 10% 이상 증가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14억 달러(20.1%) 증가한 81억 달러로 아태 지역 52위를 기록했으며, 이 회장의 장남 이재용 부회장은 22억 달러(38.5%) 늘어난 79억 달러로 53위였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연초대비 무려 46억 달러(218.1%) 급증한 67억 달러로 65위를 기록했으며, 온라인 게임업체 스마일게이트홀딩스의 권혁빈 회장은 59위(72억 달러),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69위(64억 달러)를 차지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각각 96위(52억 달러)와 100위(51억 달러)였다.
청년 52명 ‘개인자산 2조원’ 육박
부모로부터 주식을 증여받은 청소년·어린이 주식부자들도 증시 활황으로 자산이 크게 늘었다.
한국거래소가 지난 9월29일 종가를 기준으로 보통주 보유분만 산출한 결과, 1억원 이상 보유한 미성년자 주식 부자는 110명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코스피 지수가 작년말 대비 25%가량 오른데 힘입어 보유주식 가치가 크게 증가했다.
1∼7위는 임성기 한미사이언스 회장의 손자녀들이 휩쓸었다. 이들은 한미사이언스가 지주회사로 전환한 2012년 주식을 증여받거나 이 회사의 무상 신주를 취득하면서 부자 반열에 올랐다.
임 회장의 손자 임모(14)군의 주식 보유액은 617억원에 달해 1위였고, 다른 손자녀 6명은 똑같이 602억원씩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GS 주식 548억원을 보유한 허모(16)군과 그 동생(217억원) 순이었다. 이들은 허창수 GS 회장의 친인척으로 알려졌다.
나이가 가장 어린 주식 부자는 2014년에 태어난 정모 군이다. 정연택 디씨엠 회장의 손자인 정군은 디씨엠 주식 8만주(약10억원)를 보유하고 있다.
▲어린 자녀와 친인척에게 수백억원대의 주식을 증여해준 재벌 회장들. 이들의 자식 등은 청년·미성년 주식부자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부터) 함영준 오뚜기 회장, 임성기 한미사이언스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CNB포토뱅크)
‘청년 부자’로 범위를 넓히면 더 많은 기업 이름이 등장한다.
재벌닷컴이 올해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장사 주식을 100억원 넘게 보유한 우리나라 30세 이하 ‘청년 금수저’는 52명이었다. 이들의 보유 주식을 다 합치면 1조7221억원에 이른다. 한 사람당 331억원씩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장녀 민정 씨가 3298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보유해 ‘청년 주식 부자’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염홍섭 서산 회장 손자인 염종학 씨가 928억원을 보유해 2위였으며, 구본준 LG 부회장의 장남 구형모 LG전자 과장은 693억원으로 3위를,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의 장남 구웅모 씨는 635억원으로 4위를 차지했다.
변호사들에게 막말과 폭행을 해 물의를 일으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동선 씨는 440억원대 주식을 보유해 8위에 올랐다.
‘착한 기업’으로 인정받아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만찬에 초대된 함영준 오뚜기 회장의 자녀들도 눈에 띈다. 아들 윤식 씨는 447억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함 회장의 딸로 뮤지컬 배우인 연지 씨도 255억원어치의 주식을 갖고 있다.
이밖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230억원, 담철곤 오리온 회장의 외아들 서원 씨는 207억원의 주식을 갖고 있다.
재벌닷컴이 이들의 보유 주식을 분석한 기준일이 지난 1월 25일인데, 당시 코스피 지수는 2066포인트였다. 현재 코스피가 2537(22.8% 증가, 23일 종가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자산가치는 평균 20%이상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성년자 주식보유액 현황. (단위:억원, 자료=한국거래소)
“주가 오를수록 부 쏠림 심화”
이들의 재산 증가분이 증시 활황에 따른 정당한 이익임에도,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현금배당, 양도소득 등에 있어 과세 형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박주현 의원이 지난달 국정감사 때 국세청에서 받은 ‘2012∼2015년 귀속분 배당소득 100분위 자료’를 보면, 2015년 배당소득 상위 1%가 신고한 총 배당소득은 10조5931억원이었는데, 점유율이 무려 71.7%였다. 한마디로 상위 1% 주식부자들이 증권시장 전체 배당액의 3분의 2 이상을 가져가고 있단 얘기다.
이처럼 양극화가 심해진 데는 박근혜 정부에서 실시한 배당소득 증대 세제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고배당 주식에 대한 원천징수세율을 낮추고 고배당 기업 주주 중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에 대해 25% 단일 분리과세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를 두고 대주주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 의원은 “배당소득의 94%를 상위 10%가 가져가는 상황에서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 혜택은 대주주에게 혜택을 주게 되고 부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 시킨다”며 “분리과세를 일반 과세원칙에 따라 종합과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요 대기업들의 본사 사옥 및 산업현장. (사진=CNB포토뱅크,연합뉴스)
주식의 매매차익에 대하여 세금을 징수하는 주식 양도소득세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행 세법상 양도소득세가 과세되는 대주주의 범위는 코스피는 지분율 1% 이상이거나 종목별 보유액이 25억원 이상일 경우, 코스닥은 지분율 2% 이상이거나 종목별 보유액이 20억원 이상이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국세청의 ‘세목별 과세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전체 주식 양도소득세 신고자는 총 27만1462명이었다. 이 중 21만3262명(78.6%)이 1억원 미만의 차익을 얻었다.
반면 1천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이들은 41명(0.02%)이었지만 이들의 수익금 총액은 전체주식소득의 14.2%에 해당하는 11조6914억원에 달했다.
이같은 ‘부의 편중’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서는 ‘부자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 의원은 “증시 수익률이 높아질수록 최상위층에만 부가 집중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거래세는 낮추고 양도소득세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대주주에게 매겨지는 주식양도소득세율을 20%에서 25%로 높이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구병두 교수(서경대)는 CNB에 “주가상승에 따른 부의 편중은 계층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자본주의 구조에서 부의 상승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지만,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사회적, 제도적 개선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