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내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정책으로 인해 인천공항공사, 한전산업개발 등 관련 공기업과 협력업체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왼쪽부터)한전산업개발 본사 전경과 여름 휴가철 인천국제공항 모습. (사진=손강훈 기자)
문재인 정부가 국정화두로 ‘일자리’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밀어붙이기식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인해 기존 정규직이 밀려나는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이로 인한 정규-비정규직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는 상황. 정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CNB=손강훈 기자)
공기업 정규직 전환 강행…곳곳 갈등
파견·용역업체 관리직원들 실직 위기
‘속도 조절’로 역차별 부작용 줄여야
현 정부는 국정과제 중 하나로 ‘불평등 완화와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 경제’를 내세우고 일자리 수와 질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는 이달 중 852개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손길이 미치기 힘든 사기업보다는 공기업을 중심으로 정규직화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공공기관부터 정규직 전환 정책을 시행한 후 그 분위기를 민간 기업에 확산시키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 같은 ‘속도전’에 기존의 정규직이 피해를 보는 부작용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국제공항공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틀 후인 지난 5월12일 인천국제공항을 직접 찾아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강조하며 직업의 질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연내에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파견·용역업체와의 계약해지가 진통을 겪으면서 연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불투명한 상태다. 비정규직들이 전부 파견·용역업체에 소속돼 있으므로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해당 파견·용역업체와의 계약해지가 불가피하다. 이에 생존권 위기에 처한 협력업체들은 공항공사의 계약해지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전산업개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전산업은 1990년 한국전력공사가 전액 출자한 공기업으로 출발해 2003년 민영화를 거친 기업이다. 현재 한국자유총연맹이 31%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 있다. 발전사업(발전·석탄연료·회처리·배연 탈황·폐수처리·원자력 발전 수처리 등)과 전기계기 검침 사업, 스마트그리드 보급지원사업, 신재생에너지 사업(RPS, ESCO 포함) 등을 주로 한다.
이 사업들은 보통 공기업에서 수주를 받아 이뤄진다. 발전부문은 발전 5개사(한국중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동서발전)로부터, 검침사업은 한국전력으로부터 3년마다 입찰을 진행한다.
한전산업의 사업구조는 발전 50%, 검침 40%, 기타 10%다. 전체 3800명 직원 중 발전 2300여명, 검침 1070여명, 본사직원 및 관리직 43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수익을 책임지고 있는 사업은 모두 수주(용역)를 통해 이뤄진다는 얘기다.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발전·검침 직원들이 발전 5개사와 한전으로 직접 고용될 경우, 용역업체인 한전산업은 90%에 달하는 사업영역과 2370명의 직원이 빠져나가게 돼 사실상 없어질 위기에 처한다. 이 경우 본사직원 및 관리직 430명은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이들은 ‘한전산업개발 간접인력노동조합’을 결성, 자신들과 같은 파견·용역업체 직원들의 고용 안정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10일 성명서 발표를 통해 “정부의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파견·용역업체 직원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며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852개 공공기관에 용역서비스를 제공하는 파견·용역업체는 기관 당 최소 2개 이상이 존재한다. 만약 정부의 정규직 가이드라인이 적용될 경우 약 1700여개 이상의 파견업체가 도산할 가능성이 있다. 각 파견업체에 10명의 간접인력(관리)이 근무한다고 계산하면 1만7000여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는 셈이다.
▲한전산업개발 본사직원 및 관리직원은 '한전산업개발 간접인력노동조합을 결성, 고용 안정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김인섭 한전산업 간접인력 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10일 성명서를 통해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호소했다. (사진=손강훈 기자)
직원 갈등·협력사 도산 등 우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존 파견업체 정직원과 파견업체 소속 비정규직 등 직원들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정규직 전환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장직원(파견업체 소속 비정규직)의 경우, 정부의 정책을 적극 찬성하고 있다. 파견(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근로조건이 달라질 수 있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을 관리하는 파견업체 정직원들은 직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 논란’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11일 교육부는 ‘교육분야 비정규직 개선 방안’을 통해 기간제 교원의 정규직화 불가 방침을 밝혔다. 공정성의 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 논란은 지난 6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안에 ‘기간제 교사 500명을 기존 교과 교사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촉발됐다.
기간제 교원에 대한 처우개선과 임용고시 합격한 정규직 교원 간의 형평성 문제가 부딪히며 찬반여론이 맞붙었다. 여기에 임용 문턱이 좁아질 교대생들의 불만까지 더해지며 갈등은 커져갔다.
게다가 교육부가 불가 결론을 낸 상황에도 갈등은 사라지고 있지 않다. 지난 12일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은 교육부 결정에 불만의 목소리를 냈고, 같은 날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교육부를 비판했다. 논의과정이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섣부른 발표가 사회 혼란만 가중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정규직 전환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 속도조절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장 드러나는 성과를 위해 정책을 강행하는 것이 아니라 역차별을 받는 사람이 없이 노동여건 전반이 상승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가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전산업개발 간접인력노동조합 관계자는 CNB에 “파견·용역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에는 적극 동의하지만 이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안된다”며 “현장직·관리직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