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을 오마주한 것으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 속 장면
‘뜨겁거나 혹은 젖거나’. 올해 여름의 덩어리진 기억을 풀어보니 이 말들이 튀어 오른다. 변덕스러웠다. 비오는 날이 잦았고, 구름이 걷히
면 태양이 지표면을 달궜다. 오랜 가뭄 끝에 찾아온 해갈의 환희로 시작해 지금이 여름임을 각인케 하는 이글거림이 군데군데 자리했다. 처서(處暑·23일)를 앞두고 새삼 되짚어 보니 불과 물의 교차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습기와 열기로 점철된 지난 두 달 여간, CNB는 ‘천국’을 소개했다. 여기서 천국이란 ‘도서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지낸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란 비유를 감히 빌렸다. 생전 찬란한 문장을 쏟아낸 작가다운 환상적인 표현. 그런데 왜 하필 천국일까. 책을 탐독하다 50대에 눈이 먼 그의 극적인 운명을 생각해보면 이게 가능한가 싶다. 범인(凡人)은 이 비유를 완벽히 받아들일 길이 없다.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 속 문장들에서 짐작의 타당성을 높여줄 힌트를 찾아냈다.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 아니, 아마도 무한수로 구성되어 있다”(<픽션들> 97쪽_민음사). “좁은 복도에는 거울 하나가 있는데, 그 거울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복제한다. 사람들은 이 거울을 보고 ‘도서관’은 무한하지 않다고 추단하곤 한다.(만일 실제로 무한하다면 무엇 때문에 복제라는 눈속임이 필요하겠는가?)”(98쪽). 이 두 문장을 최선을 다해 오해하자면 도서관의 공간은 무한한 것이며, 거기서 비롯한 감정들의 한계 역시 정해진 바가 없을 것이다. 독서로써 무수히 변이하는 감정(표정)과 읽는 공간의 번식들이 보르헤스가 그린 천국은 아니었을까.
이 연재 기사가 종착지에 다다른 지금, 연료통에 기름 붓는 소식이 들린다. 알려지지 않은,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시민들과 공간을 공유하며 입소문 타고 있는 도서관이 많다는 기별이다. 여러 기업이 ‘독서의 여왕’ 가을을 맞기에 앞서 새로 만들고, 가꾸고, 풍요롭게 채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니 반길 일이다. 하늘은 높고 지성과 감성이 살찌는 계절, [기업 도서관 열전]을 이어간다. 천국의 관찰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