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규모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게 해당되던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5조원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한국타이어 오너일가가 지분 100%를 소유한 신양관광개발이 공정위의 칼날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지난달 18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불공정 행위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플랜이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개정된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의해 추가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된 기업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금호타이어가 중국기업에 인수될 위기에 처한 가운데, 업계 1위기업인 한국타이어가 오너일가가 지분 100%를 소유한 신양관광개발과의 내부거래로 논란의 한복판에 서면서 타이어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한국타이어는 계속된 비난에도 불구하고 왜 신양관광개발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는 걸까. (CNB=도기천 기자)
매출 20억원대 회사가 수백억 주식투자
총수일가 소유 회사들 간 이중내부거래
오너측근들 이사회 장악…브레이크 없어
수년전 가족 간 내부거래로 수백억원대 손실을 입었던 신양관광개발이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지난달 11일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부터다.
개정안 통과로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게 해당되던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5조원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에 해당되는 대기업집단에서 오너 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비상장사는 20%)는 내부거래가 금지된다.
이에 따라 한국타이어, 코오롱, 교보생명보험, 동부, 한라, 동국제강, 한진중공업, 세아, 중흥건설, 이랜드, 한국GM, 태광, 태영, 아모레퍼시픽, 현대산업개발, 셀트리온, 하이트진로, 삼천리, 한솔, 금호석유화학, 카카오 등 20여 기업이 새롭게 규제 대상에 추가됐다.
신양관광개발은 한국타이어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소유한 상태에서 매출의 100%가 한국타이어 계열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서영이앤티, 한화그룹의 한화S&C 등도 오너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지만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은 신양관광개발에 비해 낮은 편이다. 서영이앤티의 지난해 매출액 744억원 중 내부거래로 발생한 매출액은 210억원(28.2%) 가량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 3형제인 동관·동원·동선씨가 대주주인 한화S&C는 매출의 절반 가량을 내부거래에 의존해오다 최근 규제를 피하기 위해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다.
신양관광개발은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이 44.12%,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32.65%, 장녀 희경씨가 17.35%, 차녀 희원씨가 5.88% 지분을 갖고 있다. 조 회장의 네 자녀가 100% 지배하는 회사다.
건물 및 시설관리, 부동산임대업 등을 영위하고 있는데 2014년부터 현재까지 매출의 100%를 내부거래로 채우고 있다.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와 한국타이어의 건물을 관리해주고 작년에 2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중소·중견업체를 제외한 대기업 중에는 이렇게 대놓고 일감몰아주기를 하는 사례가 드물다.
하지만 매출로만 따지면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이 회사 재무제표를 보면 2014년 20억원, 2015년 22억원, 작년 23억원 가량의 수입을 올렸다.
직원이 53명(2016년 4월 기준)인데, 인건비(급여·퇴직금 등)가 한해 17~18억원 가량 지출되고 있으며, 사무경비·임대료 등을 제하면 매년 적자다. 2014년에는 2억3천만원, 2015년에는 2억6천만원, 작년에는 1억4천만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왼쪽)과 장남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 조현범 사장은 신양관광개발과 FWS 두 곳 모두를 경영지배하며 수백억원대의 선물 투자를 주도했다.
‘의문의 투자’로 재무구조 적신호
이처럼 규모가 작고 적자인 상태에서 일감몰아주기 논란이 계속돼 왔음에도 한국타이어 총수일가가 이 회사 지분을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이 회사가 조 회장 일가의 투자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주식회사는 매출과 영업이익에 의존하지만 이 회사는 그렇지 않다. 재무제표를 보면 영업외수익이 매출을 능가하고 있다. 영업외수익은 기업 본연의 영업활동 외에 의해 벌어들인 수익이다. 주가차익, 이자, 배당금 등이 대표적이다.
상장기업이 아니다보니 세부적인 내역이 공시돼 있진 않지만 2015년에 매출의 9.5배에 이르는 208억원의 영업외수익을 올렸다. 2014년에는 20억원, 작년에는 15억원 가량이 영업외수익으로 잡혀있다.
이중 배당금수익은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5억5000만원, 2016년에 5억1600만원이다. 이는 한국타이어와 지주회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주식 배당으로 얻는 수익으로 보인다. 지난 6월 공시에 따르면 신양관광개발은 한국타이어 주식 79만3522주(약500억원, 0.64%),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주식 1만9443주(약4억원, 0.03%)를 보유중이다. 배당수익 외 나머지 영업외수익의 세부내역은 공개돼 있지 않다.
당기순이익을 보면 의문은 더 커진다. 당기순이익은 일정기간 동안 각종 지출비용을 제하고 순수하게 이익으로 남은 몫을 말한다. 신양관광개발은 2014년에 무려 174억원의 순손실을 봤는데, 이듬해에는 101억원의 순이익이 발생했다. 한해 매출이 20억원대 초반인 회사가 수백억원의 손실과 수익을 번갈아 오간 것이다.
▲신양관광개발의 한해 매출은 20억원대 초반에 불과하다. 영업이익은 매년 1~2억원대 적자지만, 영업외수익에서는 2014년에 174억원의 순손실을 보다 이듬해에는 101억원의 순이익이 발생했다.
신양관광은 가족회사들 잇는 중간고리
이처럼 재무 상황이 널뛰기를 하게 된 이유는 이 회사가 한국타이어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주식을 담보로 금융 투자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양관광개발은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오너로 있는 에프더블유에스(FWS)투자자문과 투자일임계약을 맺고 있는데 2006년 12월 투자일임계약을 체결한 후 매년 계약을 연장해오고 있다. 조양래 회장의 차남인 조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사위로 FWS 지분 51%를 갖고 있다. 현재 운용자산 규모는 약 1200억원이다.
이런 가운데 2015년 4월에 눈에 띄는 공시가 있었다. 신양관광개발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타이어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주식이 각각 0.95%(117만4658주), 0.29%(26만8498주)에서 0.64%(79만3522주), 0.03%(1만9443주)로 줄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주가로 따지면 약22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
이유는 FWS가 신양관광개발이 보유 중이던 한국타이어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주식을 담보로 수백억원대 선물 투자를 단행했으나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담보 설정된 두 회사의 주식이 반대매매 처리됐다.
이처럼 신양관광개발은 본업인 건물관리·임대업 보다 금융투자에 더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로 인해 매출 20억원대의 회사의 재무제표가 수백억원대 손실과 수익을 오가게 된 것이다.
특히 조현범 사장은 신양관광개발과 FWS의 대주주로서 사실상 양사 모두를 경영지배하고 있다. 한국타이어그룹으로부터 일감을 수주 받는 것은 물론 자신이 실소유주인 두 회사끼리의 내부거래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타이어그룹→신양관광개발→FWS’로 연결된 고리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이중 일감몰아주기’라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타이어 재무팀 출신들이 신양관광개발의 요직을 맡아 왔다는 점에서 오너일가가 신양관광개발과 FWS를 통해 재산을 관리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2003년 김진모 한국타이어 회계팀장이 신양관광개발 이사를 맡았고 2007년 한국타이어의 재무팀장이었던 강창환 팀장이 이사로 등재된 바 있다. 박종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전무도 2013년 3월부터 감사로 1년간 재직했다. 이들은 모두 한국타이어그룹의 ‘재무통’들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그동안 걸림돌은 전혀 없었다. 이번에 공정거래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신양관광개발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등기이사에는 신동진 사장 한 사람만 이름을 올렸다.
FWS도 마찬가지다. 1000억원대 자금을 운용하지만 등기임원은 조 사장과 박상운 대표, 강창환씨 등 3명이 전부다. 2015년 7월 이사회 기록을 보면 조 사장과 박 대표, 두 사람이 이사회를 열어 결산보고서를 ‘셀프 승인’했다.
한국타이어그룹 측은 이와 관련, 신양관광개발과 FWS 간의 거래는 개별 회사 간 계약이라 그룹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신양관광개발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뀐 공정거래법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부거래 뿐 아니라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지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금산분리는 금융계열사가 재벌의 사금고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주주(산업자본)가 금융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다.
한 대형 회계법인의 회계사는 CNB에 “과거 SK그룹 최태원 회장 일가가 계열사 자금 450억원을 선물·옵션에 투자했다가 실패해 배임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적이 있다는 점을 한국타이어 총수 일가는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며 “자금흐름은 물론 총수 일가 간의 투자거래로 회사가 부실화될 우려가 없는지 등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대 신용평가사 한국기업데이터는 지난달 신양관광개발의 신용등급을 ‘재무안정성면에서 다소 불안한 요소가 있다’는 의미의 ‘BB+’ 등급으로 분류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