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원하기
  •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 오탈자제보

[뉴스텔링] 떠나는 회장님들, ‘재벌 시대’ 막 내리나

셀프 재벌해체? 70년 역사 뿌리 ‘흔들’

  •  

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7.27 11:57:44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헤이 아담스 호텔에서 열린 방미 경제인단과의 간담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오른쪽)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경제개혁이 속도를 내면서 오너일가가 지배해온 한국 재벌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편법증여, 일감몰아주기, 문어발식 확장 등 재벌의 고질적인 병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스스로 지분을 처분하거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총수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갑 횡포’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임한 오너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전문경영인들로 채워지고 있다. 70여년간 지속돼온 ‘재벌의 시대’는 저무는 걸까. (CNB=도기천 기자)  

‘재벌→전문경영인’ 트렌드 변화
文정부 ‘대기업→사람중심’ 선언 
총수일가, ‘회사는 내 것’ 버려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5월 10일 이후 불과 70여일 남짓한 기간 동안 한국 재벌은 엄청난 격랑을 맞았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70년간 유지돼 온 한국만의 재벌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재벌의 사전적 정의는 ‘재계(財界)에서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이다. 통상 ‘총수나 그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을 지칭하며, 오너 일가가 대주주이자 경영자인 곳이라고 보면 된다. 이는 KT나 포스코, 시중은행들처럼 이사회나 인사위원회가 CEO를 추천하고 경영을 주도하는 시스템과는 차이가 크다. 

최근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불거진 ‘갑의 횡포’로 논란의 중심에 선 기업들은 전부 재벌 체제에 속하는 기업들이다.  

지난해 경비원을 폭행한 혐의로 대국민 사과를 한지 9개월 만에 ‘보복 출점’과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최근 사임한 정우현 미스터피자(MP그룹) 회장은 자신이 창업주이자 대주주다. 정 회장은 탈퇴한 가맹점주들에게 보복을 가하고 150억원대의 횡령·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20대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 또한 자신이 최대지분을 갖고 회사를 창업해 경영하고 있다.  

기습적인 치킨가격 인상과 가맹점에 대한 불공정행위로 국민적 공분을 샀던 BBQ는 윤홍근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다. 윤 회장의 아들 혜웅씨가 BBQ의 지주회사인 제너시스의 지분 62.6%를, 딸 경원씨가 31.9%를 갖고 있다. 윤 회장은 아들에게 수천억원대의 지분을 넘기는 과정에서 편법증여를 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갑질 논란에 휩싸인 프랜차이즈업계 오너들이 줄줄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최근 사임한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왼쪽), 호식이두마리치킨 최호식 회장.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프랜차이즈 업계만이 아니다. 부영은 임대료 인상으로, 성주디앤디는 대리점주들과의 소송전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천호식품은 ‘촛불집회 비하발언’ 여파로 매출이 추락하면서 김영식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났다. 종근당 이장한 회장은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 이들 기업은 전부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재벌 집단이다. 

이런 일련의 ‘갑질’ 사건들은 재벌이 달라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 디지털기기의 발달로 ‘을’에 대한 횡포를 감추기가 어렵게 된데다, 과거에 비해 노동자의 권리가 크게 신장됐지만 자신들은 여전히 봉건적 지배의식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달라진 시대에 맞게 사고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재벌사>의 저자 이한구 명예교수(수원대 경제금융학과)는 CNB에 “수백년 된 주식회사의 역사를 가진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 경영주는 ‘회사가 내 것’이라는 사고가 강하다. 시대변화에 맞게 주식회사는 주주와 종사자들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중문화평론가 구병두 교수(서경대) 또한 “노조를 보느니 회사문을 닫겠다는 오너들이 여전한 현실이 계속되는 한, 그들의 사고와 사회적 기준의 차이로 계속 무슨 일이 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한 혁명’ 시작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은 이런 변화된 사회상에 정점을 찍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부→대기업→중소·벤처’ 순으로 내려가는 수직적 구조의 산업생태계를 ‘사람(노동자)’을 중심에 두는 쪽으로 재편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일자리 안정 등 삶의 질을 높여 경제를 선순환 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양질의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 최저임금제 보장,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보호,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 등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재벌에 대한 개혁은 ‘빛의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1961년 출범해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재계를 대표해 왔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기능은 중소·중견기업이 주축이 된 대한상의로 넘어갔다. 

정부는 기업들의 반대에도 최저임금을 사상최대폭인 16.4% 올린데 이어, 법인세 인상을 추진 중이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연매출 2000억원 이상의 기업에 대한 증세 필요성에 뜻을 모은 상태다.

또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크게 넓혔다. 종전 규제 대상은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이었지만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5조원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한국타이어, 코오롱, 교보생명보험, 동부, 한라, 동국제강, 한진중공업, 세아, 중흥건설, 이랜드, 한국GM, 태광, 태영, 아모레퍼시픽, 현대산업개발, 셀트리온, 하이트진로, 삼천리, 한솔, 금호석유화학, 카카오 등 20여 기업이 감시대상에 추가됐다. 

한국타이어의 경우,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가진 신양관광개발의 매출액이 전부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로 채워지고 있어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하림그룹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확대되자마자 공정위로부터 직권조사를 받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7년 세법개정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부와 민주당은 대기업 법인세 인상을 추진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여기에 더해 국회는 총수 일가 지분 요건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 오너 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비상장사는 20%)의 내부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상장사, 비상자사 모두 20% 이하로 낮추고 지분 산정 때 계열사를 통해 간접 보유한 지분까지 포함하겠다는 것. 개정안이 통과되면 롯데쇼핑(28.7%), GS건설(28.3%), 신세계(28.1%), 현대글로비스(29.9%) 등이 새로 규제를 받게 된다. 

문 대통령은 기업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새정부와 재계 간의 첫 청와대 간담회에 오뚜기를 내세운 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청와대는 27~28일 열린 간담회에 삼성·현대기아차·SK·LG·롯데·포스코·GS·한화·현대중공업·신세계·KT·두산·한진·CJ·오뚜기 등 15개 기업을 초청했는데, 오뚜기를 제외하면 모두 재계순위 10위권 안팎이다.

오뚜기는 전체 직원 3099명 중 비정규직은 36명(1.16%)에 불과하다. 2008년 이후로 10년 가까이 라면 가격을 한 번도 올리지 않았으며, 오너 일가가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부친으로부터 3500억원대의 주식을 물려받으면서 부과된 증여세 1700억원을 깨끗이 납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오뚜기를 통해 ‘사람중심 경제’의 메세지를 전하려 하고 있다.   

지난 20여년 간 재벌의 편법·불법상속, 지배구조, 내부거래 등의 문제를 제기해온 경제개혁연대 소장 출신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지난달 공정거래위원장에 취임한데 이어,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에 전국금융산업노조 위원장 출신인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선정된 점도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롯데그룹으로부터 ‘특별한 배려’를 받아온 서미경 씨. 그녀가 실소유주인 유기개발이 운영하는 식당들은 오랜 세월 롯데백화점 내에서 영업을 해왔지만 최근 롯데는 이 식당들을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규제 피하려 ‘셀프 해체’

이처럼 상황이 급변하자 총수 일가가 스스로 지분을 매각하거나, 심지어 경영에서 손을 떼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는 최근 계열사 유니컨버스 지분 100%를 모두 대한항공에 무상 증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니컨버스는 지난해 일감몰아주기 혐의로 6억1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비상장사 한화S&C의 지분 상당량을 외부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자 52.17%였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29.9%까지 낮췄던 현대자동차그룹 총수 일가는 향후 법개정에 대비해 지분을 더 낮추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롯데그룹은 최근 일감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받아온 이른바 ‘서미경 식당’들을 모두 정리했다.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8) 씨가 실소유주인 유기개발이 롯데백화점 내에서 운영해온 4개 업소를 내보내기로 한 것. 유기개발은 수년 전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롯데그룹의 위장계열사로 지목됐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사실을 숨긴 신 총괄회장을 최근 검찰에 고발했다. 

이밖에도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스스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거나, 자식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는 기업도 늘고 있는 추세다.  

수십년 간 한국 재벌을 연구해온 이한구 교수는 현 상황을 ‘소리 없는 혁명’에 비유했다. 

그는 “과거 정권들의 재벌손보기가 길들이기에 방점이 찍혔다면, 지금의 개혁은 일관된 정책과 철학 하에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며 “재벌 경영은 신속한 의사결정 등 장점도 분명히 있지만 오너 리스크, 내부거래·상호출자 등으로 인한 그룹 전체의 부실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만큼 길게 보면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기업들 스스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꿔 나가는 게 유일한 답”이라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