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상암산 중턱에서 바라본 박정희기념도서관. (사진=도기천 기자)
10여년 넘는 논란 끝에 문을 연 박정희기념·도서관이 개관 6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빈 도서관’ 상태라 빈축을 사고 있다. 주변에 다른 도서관이 없다보니 문 닫힌 이곳을 원망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청소년들은 시험 때마다 불과 100여 미터 남짓 떨어진 문화센터에서 자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어쩌다 이곳이 ‘그림의 떡’이 된 걸까. (CNB=도기천 기자)
완공된지 6년…아직도 “개관 준비 중”
혈세 208억 투입…인근 주민들 ‘분통’
바로 옆 공공독서실 학생들 자리전쟁
“도서관이라고 간판을 내건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문의하면 ‘개관 준비 중’이라는 말만 하고 있어요. 계속 속고 있는 기분이예요.”(주민 신성숙(48·여)씨)
“중간·기말고사 때면 ‘청소년문화의집’에 자리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난리예요. 그런데도 국민세금으로 지은 바로 옆의 박정희도서관은 문이 잠겨 있지요. 뭐가 그리 잘났다고 태극기는 집채만 하게 걸어놓고… 정말 화가 납니다.”(상암월드컵파크 전 입주자대표회장 A씨)
박정희기념·도서관(이하 도서관)을 바라보는 인근 주민들의 시선은 따가웠다. CNB취재진이 지난 5일 오후 이곳을 찾아 바로 옆 월드컵파크 아파트단지 주민 10여명을 만나본 결과 하나같이 분통을 터트렸다.
도서관은 연면적 5290m²(1603평)에 3층 규모로 2011년 12월 서울 상암동에 개관했다. 상암산 한쪽 면을 절개해서 만든 공간이라 마치 산 속에 있는 느낌을 준다. 도서관 앞쪽으로는 여의도 크기만 한 월드컵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월드컵공원은 옛 난지쓰레기매립장을 흙으로 덮어 만든 세계에서 유례를 보기 드문 실험적 성격의 친환경 공원이다. 공원의 좌측에 하늘공원이, 우측 편에는 노을공원이 위치해 있는데 기념도서관은 노을공원 쪽이다. 노을공원에서 한강으로 연결되는 브릿지(생태보도)를 이용하면 도서관에서 한강까지 도보로 20분이면 충분하다.
도서관 건너편에는 서울시가 15여년 전부터 국내 IT·미디어산업의 메카로 조성 중인 상암DMC(디지털미디어시티)가 자리 잡고 있다. MBC글로벌미디어센터, YTN, SBS프리즘타워, KBS미디어센터, 한국경제신문·TV, 중앙·조선·동아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국 등이 이곳에 들어섰으며, CJ E&M, LG CNS, LG U+, 팬택R&D센터, 누리꿈스퀘어, 한샘 등 대기업 수십여 곳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또 거주 시설로는 분양·공공임대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1만여 세대가 입주해했다.
▲당초 도서관과 전시실로 나눠서 설계된 건물에는 현재 전시관만 운영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 업적들이 나열돼 있는 전시관 내부. (사진=도기천 기자)
‘열람실’ 자리 ‘전시관’이 차지
도서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전시관이 눈에 들어온다. 올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보니 곳곳에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2층에는 1전시실, 1층에는 2,3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주로 박 대통령 집권 당시 업적들이 나열돼 있다. 고속도로 건설, 새마을 운동, 산업화 시절 공장과 여공들, 중화학 공업화 정책 등에 관한 모형물과 사진들이다. 전시실 전체를 대충 둘러보는 데만 30여분이 걸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실 3개층 정도와 맞먹는 규모로 느껴졌다.
예전 안내도에는 1층 기획전시 및 전시실, 2층 어린이열람실·일반열람실, 3층 특별자료열람실·전자자료 코너로 표기됐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도서관이 전체 사용면적의 절반 이상이어야 한다. 설립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는 “전시관(기념관)보다 도서관 면적이 더 넓어 본연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건물의 대부분을 전시실이 차지하고 있다.
‘도서관’ 간판을 보고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도서관 관계자는 CNB기자에게 “개관 준비 중”이라고 짧게 답했다. 주민들은 6년째 이 말을 듣고 있다.
▲올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건물 곳곳에 걸려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명칭·용도·예산·역사평가…20년 논란
이 거대한 도서관에 책 한권 없게 된 사연은 아주 길다. 논란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역사 화해’ 차원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공약했다. 김 대통령은 이후 1999년부터 3년간 국고보조금 208억원을 지원했다.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민간단체 등이 기념사업을 추진할 경우, 건립비의 30%를 국고에서 지원한다. 따라서 나머지 70%에 해당되는 500억원 가량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당시 박정희기념사업회)이 마련해야 한다.
재단은 국민모금운동을 벌였지만 모금 실적이 당초 계획의 20.6%인 103억원에 그쳤다.
그러자 노무현 정부는 ‘재단이 약속을 어겼다’며 지원금 회수에 나섰다. 2005년 행자부는 기존에 지원했던 기념관 건립 사업비의 회수를 결정했다.
이에 재단 측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4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은 2009년 4월 재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재단은 모금액 500억원을 채우는데 성공한다. 여기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역할이 컸다. 전경련이 기업들을 통해 거둔 금액이 270억원에 이른다. 공기업인 한전은 10억원을 기부했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로서 국고보조금 208억원을 포함해 총사업비 약700억원이 마련돼 첫 삽을 뜨게 된다.
▲박정희기념도서관은 명칭, 용도, 예산, 역사평가 등으로 20년간 논란이 계속돼 왔다. 2011년 4월 준공을 6개월여 앞둔 기념도서관과 시민단체 회원이 국회 앞에서 건립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도기천 기자)
이 과정에서 땅주인인 서울시와 마찰이 일었다. 애초 이 건물은 전시관을 주 용도로 하는 기념관으로 설계됐지만, 모금액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자 인근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서울시와 마포구에 ‘어린이도서관’으로 설계를 변경해 달라며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마포구는 공공도서관 면적 크기가 서울시 25개 구 가운데 23위에 불과하다. 관내 공공도서관이 단 두 곳뿐이라 도서관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이 크다.
결국 서울시는 공공도서관 성격의 기념도서관으로 지어 재단이 서울시에 기부하는 조건으로 상암동 부지를 무상(영구무상임대)으로 내줬다. ‘도서관을 짓자’는 시민들과 ‘기념관 부지를 달라’는 재단 사이에서 묘수를 찾은 것이다.
또 논란 끝에 ‘박정희 기념도서관’의 ‘기념’과 ‘도서관’ 사이에 가운뎃점(·)을 넣어 공공도서관의 의미를 강조했다. 가운뎃점이 빠질 경우 명실공히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도서관’이 되지만, 가운뎃점이 들어갈 경우 ‘기념관’과는 별개로 ‘도서관’이라는 의미가 부여된다.
▲이곳이 공공도서관 성격임을 알리는 취지에서 ‘박정희 기념도서관’의 ‘기념’과 ‘도서관’ 사이에 가운뎃점(·)이 들어있다. 하지만 건물이 완공된 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서관은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시-재단 간 허술한 협약 ‘부메랑’
하지만 이 ‘묘수’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서울시는 공공도서관 운영을 조건으로 부지를 무상으로 내줬지만 현행법상 재단의 운영방식 자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당시 협약서에 ‘건물의 일부분을 도서관 용도로 사용한다’는 전제만 들어있을 뿐 개관시기, 규모 등이 구체화되지 않은 점도 시가 개입할 여지를 좁혔다. 재단 입장에서는 “도서관을 준비 중”이라고만 답하면 된다는 얘기다.
서울시 택지개발팀 관계자는 CNB에 “당초 약속대로 도서관으로 이행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모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재단에게 시가 이래라저래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며 “협약서에도 도서관을 언제까지 개관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어,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정부는 관련 법규(전직대통령예우에관한법률)에 따라 일정 규모의 사업 경비를 지원할 뿐 운영에 관여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시의 신중치 못한 태도가 재단과의 관계를 더 악화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시는 2014년 도서관 부지를 기념재단에 매각하기로 결정해놓고 이를 뒤집었다. 시민단체들이 ‘특혜 불하’라며 반대하자 없던 일이 된 것이다.
재단이 부지 매입을 추진했던 것은 박정희기념사업의 정통성 때문이었다. 박지만 씨와 일부 보수단체들은 서울시로의 기부채납을 반대하며 “기념관은 육영재단의 것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사업추진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재단이 부지를 매입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일정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지 매입이 무산되면서 재단 측은 마음이 크게 상했다. 이로 인해 공공도서관 개관에 더 거리를 두게 됐다는 분석이다. 재단 측은 “시가 약속을 안 지켜서 이리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정희기념도서관은 박 전 대통령 일가가 겪은 영욕의 세월만큼이나 바람 잘 날이 없다. 사진은 1968년 9월 호주 캔버라 공항에 도착한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 가운데 소녀가 당시 성심여고 2학년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사진=연합뉴스)
박정희 일가 운명 닮은 도서관
서울시나 마포구청이 재정을 지원해 도서관 문을 여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 박정희기념·도서관에 공공예산을 지원한다는 건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최근 기업들의 모금액이 크게 줄어든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십수년 간 이런 과정을 지켜본 상암동 주민들의 심경은 착잡하다. 이 동네에는 하늘초, 상지초, 상암초, 상암중, 상암고 등 5개교가 밀집돼 있지만 도서관은 전무하며, 복지시설인 청소년문화의집 내에 있는 70여석 규모의 독서실이 유일한 자습실이다. 그러다보니 시험 때마다 자리잡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시와 재단 양측 모두를 원망하며 접점을 찾기를 고대하고 있다. 중고생 자녀 2명을 둔 주부 오모(47)씨는 “시민 세금으로 지은 건물이 흉물이 되고 있다. 도서관(자료실) 형태가 힘들다면 학생들이 독서실(자습실)로라도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오경환 서울시의원(마포구)은 CNB기자와 만나 “우선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기념재단에게 잘못이 있지만, 시의 해결 의지가 부족한 것도 문제”라며 “만약 끝까지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시민운동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도서관 개관을 관철 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명칭과 규모, 용도, 예산, 역사평가 등 여러 법적·정치적 논란 끝에 ‘박정희기념·도서관’이 겨우 문을 열었지만 현재도 갈등은 ‘진행형’이다. 박 대통령 일가가 겪은 영욕의 세월만큼이나 이 도서관도 바람 잘 날이 없는 듯하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