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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삼성 이재용 재판… 박영수 특검, 전쟁에서 이겼지만 전투에서 패하나

뇌물죄, ‘스모킹건’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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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6.29 14:07:42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지난 2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혐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말(馬)의 주인이 여전히 삼성이라는 증거자료가 쏟아지고 있는데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비롯한 주요증인들이 청와대와 삼성 간의 관계를 모른다거나 부인했기 때문이다. 최씨의 딸 정유라(21)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거듭 기각된 것도 수사의 흐름을 끊는 모양새다. 4월 7일 1차 공판이 진행된 후 80여일간 33차례에 걸쳐 진행된 희대의 재판을 중간점검 해봤다. (CNB=도기천 기자)  

증거 차고 넘친다던 檢, 결정적 한방 無
주요증인들 “VIP, 삼성에 관심 없었다” 
뇌물죄 못밝히면 정치적 논란 커질수도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현재 일주일에 세 차례씩 열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공판은 이튿날 새벽 2시까지 무려 16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처럼 재판부가 강행군에 나선 이유는 심리 내용이 방대한데다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가 입증이 돼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물죄는 ‘받은 사람과 준 사람’ 모두 처벌하는 쌍벌죄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뇌물공여’는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주도록 강요한 경우에 성립된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청탁을 들어주고, 삼성은 그 대가로 최씨에게 금품 등을 지급했을 가능성이다. 따라서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가 입증이 돼야 박 전 대통령의 양형 여부가 결정된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 혐의 외에도 직권남용·공무상비밀누설·강요미수 등 혐의가 13개에 이르지만, 핵심은 뇌물죄다.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이기 때문에 이 혐의가 빠지게 되면 나머지는 곁가지가 된다. 

만약 검찰이 뇌물 혐의를 입증 못하면 이는 새로운 정치적 논란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최순실-재벌로 이어진 ‘정경유착’이 대통령을 탄핵시킨 ‘촛불혁명’으로 번졌고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는 점에서다. 


말(馬) 진실공방…주장만 난무

이렇다보니 사법당국은 뇌물죄 입증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27일까지 열린 33차례의 공판 내용을 보면, 검찰이 고전하고 있다. 

일단 뇌물의 핵심 수단으로 지목된 ‘말(馬)’을 둘러싼 공방에서 밀리고 있다. 특검은 삼성이 승마 국가대표 출신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돕기 위해 최씨 측에 말과 차량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삼성 측은 논란이 된 그 말을 지난 19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여왔다. 삼성전자가 헬그스트란트와의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말 소유권을 되돌려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삼성이 정씨에게 주려고 고가의 말 3마리를 현지 중개업자인 헬그스트란트에게 파는 것처럼 허위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는 특검 주장과 배치된다.  

이 부회장 변호인은 지난 20일 재판에서 “삼성과 헬그스트란트 간의 매매계약이 허위이고 말의 실소유자가 최씨라면 매매계약을 해지했다고 해서 삼성이 말을 되돌려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변호인들은 말과 차량의 소유권이 삼성에 있음을 증명하는 매매계약서, 코어스포츠와의 용역계약서 및 소유권 확인서, 독일 차량등록소의 공문 등 관계 서류들을 재판부에 제출한 상태다. 반면 특검은 삼성이 말과 차량을 최씨 측에 줬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7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왼쪽)와 지난 23일 재판정에 들어서고 있는 최순실씨. (사진=연합뉴스)


지주사 전환, 청탁할 이유 없다?

삼성그룹의 지주사 전환 과정에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 주장도 지금까지 나온 증언들을 보면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특검은 삼성이 2016년 1월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주무부처인 금융위에 사전검토 의견을 구했고, 한 달 뒤인 2월 15일에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지주사 전환을 도와달라는 청탁이 오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같은 해 4월 지주사 전환 추진을 전면 보류했다. 금산분리 규제로 삼성생명의 비금융계열사 지분율을 5% 아래로 줄여야 하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게 삼성 측 주장이다. 당시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7.5% 가지고 있었는데 법과 금융위 유권해석에 따라 최대 7조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했다.  

삼성전자는 금융위에 법이 정한 기간을 모두 활용해 7년 내 처분하겠다는 계획을 냈고, 금융위는 2년 내 매각을 제시했다. 삼성은 이에 대한 의견차로 지주사 전환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특검은 삼성이 이 문제를 풀기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을 했다고 보고 있다. 특검은 지주사 전환의 목적이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은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을 시도한 것이며, 당시 이 일을 담당했던 금융위 사무관이 이런 취지로 증언했다”고 밝혔다. 

반면 삼성은 이미 금융사 지배력은 더 강화할 필요도 없이 확고하다는 입장이다. 삼성생명의 1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 등 오너일가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47.03%에 이른다. 경영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삼성 변호인단은 금융지주사를 세우게 되면 순환출자 고리가 끊어지게 돼 오히려 지배구조가 약화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수년 간 경제민주화 주요 과제로 지주사로의 전환을 적극 유도, 독려하고 있다. 지주사를 중심으로 계열사와의 자금거래, 출자, M&A(인수·합병) 등이 이뤄지므로, 지주사만 잘 들여다보면 그룹 전체 순환구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너일가는 지배력이 약해지는 효과가 있다. 

삼성 관계자는 “경영구조의 선진화 측면에서 지주사 전환을 추진한 것이지, 지배구조 강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청탁까지 하면서 굳이 지주사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삼성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삼성의 금융지주사 전환 건을 검토했던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6일 공판에서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 관련 보고는 금융시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이슈라 금융위 차원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당시 청와대) 안종범 수석에게 보고했는데 특별한 코멘트가 없었다”며 “삼성 관련 보고에 너무 관심이 없어 솔직히 서운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이들은 “청와대의 외압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물산 합병 비율 재판과 무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청탁이 있었다는 주장 역시 입증이 쉽지 않아 보인다. 특검은 양사의 합병으로 삼성물산 주주들은 손실을 입었지만 삼성 오너 일가는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봤다고 보고 있다. 삼성이 최씨 모녀를 지원한 대가로 청와대가 양사의 합병에 국민연금관리공단을 통해 도움을 줬다는 게 검찰 논리다.  

하지만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박영수 특검의 공언과 달리 지금까지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은 없었다.  

1심 법원은 양사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이들의 배후는 끝내 밝히지 못했다. 두 사람 다 ‘외압은 없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에 특검은 합병비율이 적절치 못했다는 주장으로 맞섰지만 지난 21일 공판에서 재판부는 “합병비율은 이 사건의 쟁점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합병의 적정성 여부가 아니라 청탁과 외압이 있었는지를 밝히라는 의미다. 

특검이 증인으로 세운 노홍인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선임행정관마저 23일 공판에서 “양사 합병에 당시 어떤 사람이, 어떤 관심들이 있었는지 모른다”고 증언했다.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도 “박 전 대통령은 삼성물산 합병에 관해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밝혔다. 

법원이 정유라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한 것도 특검에게는 악재다. 정씨의 신병을 확보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최씨 간 뇌물공여 혐의의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특검의 계획에 제동이 걸린 것. 법원은 전반적인 사건 구도와 수사 내용, 정씨의 그간 행위나 범행 가담 정도 등을 볼 때 구속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李-朴-崔 삼각고리 끝내 못찾아 

이처럼 80여 일에 걸친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이렇다 할 소득을 얻지 못했다. 

특검은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서로 대면하게 되면 새로운 사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초 최씨는 이 부회장의 28일 공판에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었지만 건강문제 등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예정대로라면 다음달 3일 증인석에 설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이 삼성과의 관계를 적극 부인하고 있어 재판의 향배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형사법상 피의자가 구속된 상태에서는 6개월 안에 1심선고가 내려져야 한다는 점도 재판부에게 부담이다. 이 부회장은 2월 28일 구속됐으므로 8월 27일전까지 판결이 나지 않으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CNB에 “박 전 대통령이 기업들에게 최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을 도와주라고 한 것까지는 윤곽이 나왔지만 이는 직권남용에 해당되는 부분”이라며 “뇌물죄는 대가·청탁성이 입증돼야하는 만큼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한 입증하기가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다. 만일 삼성이 스스로 알아서 최씨 측을 지원했다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의 뇌물공여는 적용하기가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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