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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도서관 찬가(讚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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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17.06.29 13:46:35

▲지난달 31일 신세계가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오픈한 '별마당 도서관'. (사진=선명규 기자)


‘유희’ ‘사랑’ ‘피난처’ ‘덕질’ ‘돈가스’ 

도서관을 떠올리면 이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엉긴다.

청년 실업률 상승의 주범, 눙쳐 백수시절에는 ‘피난처’였다. 산란기 연어처럼 쇄도하는 출근길 인파를 헤치고 도서관에 들어서면 이내 마음이 놓였다. 책에 눈을 고정하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됐다.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안식처기도 했다.

청년 백수의 하루는 5000원이면 풍족했다. 구내식당에서 4000원짜리 ‘돈가스’를 먹고, 후식으로 자판기 밀크커피를 털어 넣으면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이 건물엔 수십만권의 성찬이 있으니 그만하면 만족했다. 백수든 윤똑똑이든 지성인이든, 읽음으로써 평등해지는 공간이 도서관이다.

언젠가 돈가스를 담아주시던 식당 아주머니가 물었다. “학생은 아닌 거 같고, 뭐하시는 분이에요?”. “뭐라도 했으면 좋겠네요”라는 말을 삼킨 채 “공부하는 사람이요”라며 이상한 직업(?)을 말해버렸다. 황급히 돌아서는 내 접시에 아주머니는 손바닥만 한 고깃덩이를 하나 더 올렸다. 튀김옷이 목구멍에서 까끌거린 탓인지 왈칵 눈물이 날 뻔 했다. ‘사랑’이 넘치는 도서관이다.

서가를 유랑하다 보면 문득 문장 하나하나가 소중한 책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러면 작가 이름을 검색해보고 SNS나 기사를 뒤적여본다. 그리고 작가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책상에 앉을 것이다. 몇 시간 키보드를 두들기다 낮잠도 좀 잘 것이다. 커서가 멈추면 문장을 밀고 나갈 힘을 얻기 위해 술도 조금 마실 것이다. 그래도 속도가 나지 않으면 만사 제치고 산책이나 훌쩍 여행을 떠날 것이다.” 작가의 삶을 추체험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 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떠다니게 된다. 이게 ‘덕질’이다.

책의 질감은 꽤 중독성 있다. 책끼리 비비적거리며 뿜어내는 눅진함이 그렇다. 세월에 해어진 하드커버가 속살을 드러내는 순간의 체크무늬는 영국 B브랜드 못지않은 완벽한 디자인이다. 책장을 넘길 때 손맛은 또 어떤가. 다음 장의 궁금함을 머금은 찰나의 촉감은 저장해두고 싶을 정도다. ‘유희’의 절정이다.

최근 몇 년 새 기존 틀을 벗어던진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이 늘고있다. 세계적 추세가 그렇다. 지난 2013년 일본 다케오시에서 ‘열린 도서관’으로 재개관한 ‘다케오 시립도서관’은 시끄럽다는 점에서 파격적이었다. 조용함이 미덕인 상식을 깼다. 그 대가로 연 1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로 발돋움했다.

지난달 신세계가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문을 연 ‘별마당 도서관’은 ‘다케오 시립도서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왁자지껄한 쇼핑몰 한 가운데에 13미터 서가를 세우고 도서 5만권을 채웠다. 소문만 무성할 때 “엥?”이란 반응을 샀던 이 도서관 역시 ‘개봉’ 첫 날부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국내에 등장한 이색 도서관은 기업들이 주로 주도했다. 현대카드가 요리·여행 등 특정 주제 아래 운영하는 라이브러리가 시초격. 이 회사는 2013년 2월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시작으로 2014년 5월 ‘트래블 라이브러리’, 2015년 5월 ‘뮤직 라이브러리’, 지난 4월 ‘쿠킹 라이브러리’을 차례로 개관해 운영 중이다. 얼마 전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SNS에 “라이브러리 하나의 구상은 통상 3년 정도 걸리고 전 세계 100개 이상 장소의 자료를 모으고 상당수를 직접 방문한다”라고 적으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여정을 밝힌 바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자동차 전문 도서관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 영화 관련 전문 서적과 시나리오 등을 갖춘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는 문 연지 2~3년 만에 마니아를 넘어 대중들 사이로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최근에는 사내 공간을 할애해 서가를 마련하고, 직원뿐 아니라 일반에 공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문자 그대로 ‘기업 라이브러리’ 붐이다.

이 같은 도서관의 진화, 그리고 번식이 반갑다. 책을 베이스로 콘셉트가 다양해져 즐겁다. 자본력을 갖춘 기업들이 도서관에 관심을 갖는 것은 비단 ‘도서관 덕후’들에게만 희소식은 아닐 것이다.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소설가는 “도서관은 사회적 안정망”이라고 했다. 시민이 시민으로서 보장 받을 수 있는 공간이란 뜻이었을 게다.

찬가(讚歌)를 마치며 시민으로서 적는 사족(이자 바람) 하나. 특색 있는 도서관이 계속 늘어, 누런 돈가스를 꼭꼭 씹으며 까만 글자를 읽는 호사를 자주 누리고 싶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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